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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증명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5) '마리가 마저 하지 못한 말이 뭐였을까… 줄리아가 한 말대로 난 밝은 하루의 해를 받으며 살아갈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겠지.' 그녀가 잠시 어둠속에 고개를 내밀었던 것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총알과 술 대신 커피와 연애를 즐기는 평온한 일상으로 살고 싶었다. 집 앞 직장인들처럼. [ 인간의 증명 ] 15장 "술은 그만 마셔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마리가 말했다. "오늘만 좀 마시자. 어제는 너무 힘든 날이었잖아." "그래도 몸도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여가지고…" "괜찮아 괜찮아. 너는 미성년자니까 콜라 마셔 콜라."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그녀와 마주앉아 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반대로 그녀는 전과는 다르게 웃음기도 없이 긴장해서 저 미성년자 아닌데요 라고 중얼거렸다. "저기… 아저씨…" 그녀는 주저..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4) "그러니까 자슥아.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기다. 오늘 보니까 날라다니더만. 그런 재능을 가지고 니 애비랑 똑같이 죽나. 신은 공평하다니께. 선물만 주는 게 아니라 폭탄도 앵겨준겨. 어-어- 움직이면 이년 목 딴다 알제?" [ 인간의 증명 ] 14장 아직 저녁 6시인데 구름이 잔뜩 껴서 벌써 어둑어둑하다. 지나가는 차들은 하나 둘 불을 쳐들었다. 가로등이 뿌옇게 조명을 깔아 준다. 맥은 지프를 클럽에서 반 블록 떨어진 곳에 세웠다. 가슴이 뻐근하고 다리가 땡겼다. 걸음이 불편해서 다리의 붕대를 풀어보니 상처가 심했다. 근육을 관통했다. 더 움직이면 뼈가 상할 수도 있겠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까짓 다리 하나 걱정할 때가 아니다. 붕대를 강하게 압박하니까 걸음에 신경이 덜 쓰였다. 머리가 핑 ..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3) 늘씬한 여자가 소총을 들고 파파팍 걸어갔다. 경찰을 흘깃 보더니 뚱한 표정으로 차를 몰고 가버렸다. '뭐지, 저 여자는?' [ 인간의 증명 ] 13장 경찰은 이틀째 대학교 주변을 배회했다. 배지를 조사해서 이 학교라는 것까지 알았는데 전공도 이름을 모르니 얼굴이 보일 때까지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번 찍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붙잡고 협박도 하고 물어도 봤지만 자신이 얼굴을 잘 묘사하지 못한다는 것만 깨달았다. 학교 보안요원과 실랑이하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런데 다른 방법이 뭐가 있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 잡으면 죽기 전까지 두들겨 줘야 화가 풀리겠어. 남자 놈이고 여자 놈이고. 아니 여자 년인가. 에이 ** 그게 무슨 상..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2) 이런. 마지막에 방아쇠를 당긴 게 그것 때문이었군. 돌격소총의 총알을 다 세면서 싸우다니. "돌려줘 내 총. 비싼 거야." 그는 총을 던졌다. "다시 올 거야?" "아니. 넌 수익성이 없어. 게다가 내가 죽을 위험도 크고. 포기할래." [ 인간의 증명 ] 12장 팔이 따끔해서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그때 그 녀석이다. 이름이 필이었던가. 경찰에게 맞은 쪽 눈이 멍들어 있었다. 주사기가 팔에서 툭 떨어졌다. "마리는 어딨지?" 멍한 머리로 말했다. "넌 이제 끝이야. 마리는 내가 데려갈 거야." "뭐…""마리는 너 같은 쓰레기가 넘볼 여자가 아냐. 내 거라고. 다시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겠어." 급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구토가 밀려왔다. "이게…" "마취제 같은 걸 좀 찔러 넣었지. 경찰에도 신고했어..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1) "정신 차려요. 경찰이 오고 있어요!" 눈을 떠보니 그녀가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서 따스한 숨결이 얼굴에 느껴졌다. 소원이 이루어졌어. 가만히 얼굴을 보며 웃었다. [ 인간의 증명 ] 11장 그가 아는 모두가 커다란 원반 위에 서 있다. 귀가 하나 없는 털보, 그리고 토라.어, 토라는 죽었는데? 얼굴이 먹구름이 낀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도 원반 끝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 저 모습이었어.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나는군. 가슴에 구멍이 뚫린 키즈가 소리쳤다. 내가 최고의 명사수다! 원반은 엄청난 속도로 빙빙 돌고 있었다. 마리가 바짝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니가 내 아빠를 죽였어! 마리가 그의 얼굴을 붙잡고 말했다. "정신 차려요. 경찰이 오고 있어요!" 눈을 떠보니 그녀가 있었다. 호흡이 거..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0) 평소처럼 팔을 앞으로 쭉 내밀면 늦어. 힙샷이야. 기억해 힙샷. 몸을 기울여 낮추고 엉덩이께에서 바로 쏘는 거야. 먼저 쏘기만 하면 맞은 상대는 몸이 비틀려서 너한테 날아오는 총알은 빗나가는 거야. [ 인간의 증명 ] 10장 병원 앞에 대기하고 있는 빨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왔다. 비가 툭툭 떨어진다. 그 새 싸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의 무게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어느새 흠뻑 젖는다. 잘됐어. 길바닥의 핏방울은 놔둬도 되겠군.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아디다스 백에 리볼버와 탄창 박스, 금고 안의 현금다발을 쓸어 담았다. 사무실에서도 슬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있는 토라의 사진만 챙겼다. 가방을 보조석에 던져 넣고 지프를 몰아 마리의 원룸으로 향했다...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9) "아저씨는 괜찮아요? 저도 같이 가요. 도움이 될 텐데." "필요 없어." 그 말을 뒤로하고 나왔다. 마리는 힘이 부쳤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 인간의 증명 ] 9장 맥은 쏘지 못했다. 팔을 떨어뜨리고 의자를 끌어당겨 옆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당신이었네요."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을 건다. 옆구리에서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붕대." "네?" "붕대 있나?" "네. 욕실 앞에 꺼내 놨는데." 몸을 일으키려 해서 제지하고 붕대를 찾아 돌아왔다. 여자의 허리에 단단히 감았다. 가슴이 팔을 스쳤다. 옷장에서 옷을 대충 집어서 던져줬다. "옷도 좀 입어." "조직에서 나왔군요. 집에 들이닥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녀는 반바지에 다리를 힘겹게 꿰어 넣으면서 물었다. "왜 안 쏴요?" "이제 그만 하..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8) 단골이라면 집이 이 근처거나 회사가 이 근처이거나. 왜 안 보이는지 조바심이 났다. 자신을 엿먹인 놈은 철저히 되갚아준다. 다시는 덤빌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그게 이 사회의 정의다. [ 인간의 증명 ] 8장 경찰은 하루 종일 온 시내를 들쑤셨지만 소득이 없었다. 어제 그 새끼를 찾아서 죽여놔야 잠이 오겠는데 말야. 발포 건은 총기사고로 처리해서 정직은 면했지만 총을 압수당했다. 그래도 이게 있으니까. 경찰봉을 구둣발에 툭 툭 치며 생각했다. 찾기만 하면 요걸로 곤죽을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그 다음엔 무릎을 꿇리고 빌게 해야지. 다른 녀석들이 그랬던 것처럼.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술집들을 죄다 기웃거려 봐도 코빼기도 안 보였다. 어제 그 바에 가서 바텐더를 족쳤지만 자주 오는 손님이라는 거 말고는 더 나..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7) 평소 하던 대로 탄알 셋을 저 몸에 밀어 넣고, 흔적을 지우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아파서인지, 체념해서인지. 약한 미소다. 그 순간 모든 게 변했다. [ 인간의 증명 ] 7장 띵-띵 핸드폰 알림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무리 피곤해도 조건 반사처럼 몸이 반응한다. 전당포. 헤라클레스. 빨리! 문자를 확인하고 총을 집어들고 집을 우당탕 나섰다. 그 와중에도 리볼버 장탄수를 확인하고 실린더도 한번 돌리고 현관문 손잡이 각도도 맞췄다.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한밤중이었다.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외투라도 하나 걸치고 나올 걸. 돌아갈 시간은 없다. 이 시간에는 골목에 차가 많아서 뛰어가는 게 더 빨랐다. 네 블록을 미친 듯이 뛰어 조직의 돈이 쌓여 있는.. 더보기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6) 의사는 말없이 담배를 비벼 끄고 붕대를 돌돌 말았다. "내가 열 번 넘게 치료한 놈은 없어. 왠지 알지?" 말 안 해도 알아요. 아줌마. 다행히 더 이상 잔소리는 없었다. [ 인간의 증명 ] 6장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의사는 조직에서 고용한 아줌마였는데 병원에서 약을 빼돌리다 감방에서 좀 살았다 했다. 애가 다섯인데 첫째는 학교에서 사고치고 셋째가 아프고 넷째는 놀이터에서 없어져서 찾아다녔고 뭐 그런 변명들을 하면서 오후 늦게서야 출근했다. 환자는 총상을 입고 아프건 말건, 기다리면서 불만을 터트릴 간호사조차 한 명 없었다. 의사는 담배를 하나 물더니 대뜸 임시로 감아둔 붕대를 풀고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상처가 불타는 것같이 아팠다. 의사 자격증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으아 마취도 안 합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