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과 함께 짙은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그는 그 그림자들을 톡 톡 튕겨 올린다.
조그만 콩알들을 가지고 놀듯이,
상대를 향한 거대한 분노가 흘러넘치지 않도록.
[ 까마귀의 고해 ]
1부 1장 고해 (2)
기어를 뒤로 넣고 액셀을 밟으려는 순간 갑자기 땅이 흔들린다.
한 달 전부터 지진을 동반해서 그림자들이 꾸물꾸물 출현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림자 능력자인 그가 힘을 쓰지 않아도 그림자가 꿀렁거리는 건 그에게 기분 나쁜 일이다.
‘내 능력과 관계가 있는 걸까?’
그는 잠시 생각해 본다.
뉴스에서 그림자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소식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
지상에 나타난 그림자들은 M을 대표로 하는 통제 능력자들이 붙잡아 놓은 공왕류들을 이용해서 소탕하거나, 불과 바람 같은 자연계 능력자들이 청소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회사가 제대로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혹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림자 능력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내가 의심스럽다면 그들도 의심스럽겠지.‘
회사로부터의 추적이 더 심해지는 건 곤란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성당을 나선다.
차가 낡아 삐걱거리는 데다 땅까지 흔들려 핸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인도에서 갑자기 돌아들어 오는 롤스로이스를 피하지 못한다.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려서 보니 바퀴 위쪽의 프레임이 살짝 접히는 가벼운 접촉사고다.
운전자는 기사로 보이는 50대의 백인이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침을 튀기며 속사포처럼 거친 욕을 쏟아낸다.
그는 늘 그렇듯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공격을 피한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어 운전사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물방울과 함께 짙은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그는 그 그림자들을 톡 톡 튕겨 올린다.
조그만 콩알들을 가지고 놀듯이, 상대를 향한 거대한 분노가 흘러넘치지 않도록.
한참 동안 욕을 지껄이던 운전사는 제풀에 지쳐 롤스로이스 뒷좌석을 향해 굽신대더니 차를 몰아 성당 안쪽으로 들어간다.
롤스로이스는 사고 현장를 떠났지만 그는 조금 더 자신의 그림자를 조율하며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늘렸다가 줄였다가 둥글게 만들었다가 뾰족하게 만들었다가.
한참을 그렇게 서서 그림자를 바라보다 자신의 낡은 비틀을 타고 달리면서 생각한다.
‘나는 또 분노했어. 벌써 고해를 해야 하겠군.’
성당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신의 가게로 향한다.
어번-5 에서 출발해서 어번-2 까지 차를 몰고 진입한다.
도심은 어번.
곽지역은 서브어번.
그 안에서의 구역은 순서대로 번호가 붙는다.
블록 내 빌딩들은 주기율표의 배치를 사용한다.
그게 건물 이름이자 주소이자 회사 이름이 된다.
그의 가게가 있는 건물은 어번-2의 크롬, 그가 오늘 털어야 할 곳은 어번-7의 플루오르.
도시를 구획하는 방식에 창의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게 다 아폴로 주식회사의 능력자들을 이용해 공포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쇼만 보게 만들고,
책을 멀리하게 만들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거두게 만들고.
생각을 억누른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은 탐지 능력자가 찾아 제거한다.
문제가 될 만한 행위를 할 예비 범죄자들은 범죄 대비법이라는 법령 이후 예지 능력자나 정신감응 능력자들을 통해 싹 색출해 버렸다.
심각한 수준이라 해도 그것을 상상하면 투옥하는 법이 통과되다니,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주황색에서 빨간색 사이의 저녁노을이 떨어진다.
아주 정확하고 가장 유려한 배열이다.
하지만 매일 저렇게 똑같다.
가장 좋은 걸로 매일 돌려.-
회사에서 환경을 담당하는 누군가가 말했겠지.
나무는 완벽하게 둥그스름하고 - 자연계 능력자가 일을 좀 했으리라 -
공기와 바람과 온도는 365일 정해진 궤도에 따라 움직인다.
유일하게 이곳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가끔 빌딩에 머리를 때려 박는 공왕류들 뿐이라 할 수 있다.
그마저도 M들이 장악하고 있다.
정신 지배자들.
미친 것들.
회사로부터 사용이 허락된 자동차 사이로 고르곤들이 느리게 발을 옮긴다.
M들에게 지배당한 공왕류들은 날개를 뽑힌 채 바닥을 기어 다니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들의 동족들과 싸우는 운명의 피조체들이다.
그래서 평소에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스스로는 그런 권한조차 모르겠지만.
계획된 교통의 흐름 아래 그나마 재밌는 게 고르곤들의 다리 사이를 피해서 달리는 일이다.
주여, 이 생명들에게 감사하나니.
▶ [세계관] 까마귀의 고해 1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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