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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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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의 고해 ]


1부 2장 둥지 (2)


사람의 움직임은 없다.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떠오르는 어구를 중얼거리며 백팩을 들어 등에 멘다. 

몸을 일으키면서 원인을 찾아낸다. 

진열대의 그림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왜곡되어 있다.


‘지진과 함께 나오는 그 그림자 괴물들일까?’ 


고민한다. 


‘여기서 그림자들과 시끄럽게 싸울 수는 없지.’ 


그게 뭐든 일단 피하기로 결심한다.

 
창으로 가지 않고 옆쪽 레인을 통해 빙 돌아가는데 ‘딱’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이 멈춘다. 


생각한다. 

발소리는 아니다. 

그보다 더 작다. 


벌레? 

어디서 많이 들었던 소린데. 


껌이다. 껌 씹는 소리. 

동시에 달큰한 과일 향이 살랑 코로 들어온다.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냄새다.


케이.” 


그는 작게 속삭인다. 


“나와.”
“에이. 침이 말라서 딱 한번 씹었는데. 귀신같네요.”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타난다. 

진열대 뒤에서 톡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문 밖에서 들어온 것도 아닌 그냥 공간에서 튀어나온다. 


하늘색 재킷 끝이 짧은 바지를 가려 하의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긴 검은 머리는 그대로 내려뜨렸고 베이지색 페도라를 쓰고 있다. 

양손에 들고 있는 빨간 구두를 앙증맞게 흔든다. 


“능력자였나. 공간이동 쪽?”


그녀는 히히 웃으며 사라진다. 


“아니에요.” 


허공에서 목소리만 들려온다. 

껌 냄새가 다가오더니 다시 그의 눈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이런 거예요.”


입술이 너무 가깝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니 낮에는 못 봤던 눈 화장도 하고 있다. 

고개를 뒤로 빼며 묻는다. 


“은신 능력이구나. 등록 안 했지?”  


등록을 했으면 그가 모를 리가 없다. 

회사 보안망이 까마귀의 사냥터가 된 지 오래다. 


“네에, 네에.”
“잡히면 고생 좀 할 텐데.” 


능력자가 등록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범죄자로 간주, 회사 지하 벙커에서 최소 몇 년은 썩어야 한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에게 반복적으로 나간 메시지였다.


“잡아 보라고 하죠. 
이렇게 돌아다니면 재미있는 걸 얼마나 많이 구경할 수 있는데요.”

남몰래 올가미를 치려고 모의하며 누가 우리를 보랴하고 큰소리를 치더라.
“에고, 또 또 성경. 
나쁜 짓은 하지 않아요.” 


그녀가 코를 찡긋거렸다. 


“그보다 말이에요. 사장님이야말로 이게 무슨 도둑질이에요?”


그는 그가 하는 일에 대해서 되도록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약이 뭔지. 

왜 지금 약을 훔치는지, 이 전에 했던 일들. 

회사는 나쁜 놈들이야. 


“로빈훗 같은 거네요. 압하스나 프로메테우스의 손 같은 저항조직도 있잖아요. 그쪽에서 일하면 더 좋을 텐데.”
“뉴스는 좀 보는구나.”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여자애다. 


“내가 위험인물이거든. 날 받으면 바로 초특급 테러 단체로 승격될 거야. 회사 에이스들이 총출동해서 때려 부술 거다.” 


그는 하미레즈와 일렉트로 콤비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떠올린다.


“사장님이 뭐가 위험하다고 난리에요.” 


그녀가 히히거린다.


“지금은 위험하지 않은데.”
“그럼요?”
“내 능력을 나쁘게 쓰면 악귀가 돼.”
“그림자 조물조물하는 그거요?”
“그건 나쁜 건 아닌데. 역시 봤구나?”
“그럼요. 수상해서 퇴근도 안 하고 화장실에 있다가 몰래 따라온 건데요?”
“몇 년 전 어번-3 광장 대량 학살 사건 알지?”
“나 아마 중학생? 그랬던 거 같아요. 그 미친 여자랑 같은 계열이에요? 으악!”
“S야. 착한 여자였어. 수녀보다도 더.” 


그는 알약 상자를 하나 더 뜯으며 말했다. 


“이제 나가는 게 좋겠다. 모자 벗어 봐.”
“아잉, 머리 망가지는데.”
“이거 일곱 알이면 아이 하나를 구할 수 있어. 바지에 주머니 없나?”
“더 주세요. 재킷에 안주머니 있어요.” 


그녀는 삐친 척하면서도 알약을 잘 받아 챙겼다. 


“사장님, 생각보다 겁쟁이 아니네요.”
“껌 좀 그만 씹어라. 턱 두꺼워지면 남자들이 안 데려간다.”
“그거 성희롱 맞죠?”
“나 먼저 간다.” 


그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연다. 
그림자의 계단이 없다. 
맞은편 건물의 창에서 빛이 모두 사라졌다. 

등화관제라도 하는 건가. 


서둘러 다른 쪽 벽면들을 봤지만 미리 조사해뒀던 대로 그쪽은 드리울 그림자가 없다. 

얼굴에 낭패를 드러낸 채 그녀에게 말한다. 


“넌 어떻게 들어왔니?”
“말투가 좀 부드러워 지셨네요오?” 


실실 웃는다. 


“못 내려가시나 봐. 저야 이렇게 들어왔죠.” 


그녀의 몸이 한번 점멸한다. 


“경비원들은 없든?”
“없을 리가요오오. 가득하지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경비원이 근무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는 망연히 그녀를 바라본다. 


“도와주세요.” 


그녀가 말한다. 


“뭐?” 
“도와주세요- 라고 말할 타이밍이에요, 사장님.”
“무슨 수라도 있나?”
“저 혼자 갑니다아.”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도와줘.”


이미 가버렸나 생각하는데 케이의 조그만 얼굴이 불쑥 나타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 번은 봐줄게요.” 


그리고 그의 손을 잡는다. 

창고 안이 흑백이 되더니 그림자들이 더 진해져 보인다.


“나도 안 보이게 되는 거냐?”
“네. 제 몸에 닿으면요. 손 놓치면 들키니까 꼭 잡아요.” 


타입2의 능력자다. 

대부분의 은신 능력자들은 타입1 들이고 주로 스파이 활동에 사용되는데, 능력을 쓰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회사가 이 애를 찾아내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이 작고 부드럽다. 


5층 계단을 내려가다가 경비원과 마주친다. 

그는 벽에 바짝 붙는다. 

그녀가 그를 안다시피 밀착한다. 


2층 계단에서도 뚱뚱한 경비원과 마주쳤는데 이번에는 벽에 붙은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 다리로 그의 머리를 감싼다. 

그는 몇십 년 만에 사람과의 접촉과 향기에 취해 어지럽다. 

그녀의 애꿎은 손만 잡아끌며 복도를 소리 없이 걷는다. 


“아유. 그만 좀 잡아당겨요. 여긴 괜찮으니까.” 


분명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옷이 좀 작아 보여요. 사장님, 라인이 작살인데요? 만져봐도 돼요?”


아무리 해도 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를 잠재울 수가 없다.


주여 용서하소서… 이것은 세속적이고 육욕적이고 악마적인 것입니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내내 중얼거린다.


“자꾸 뭐라 중얼거리는 거예요. 크게 좀 말해봐요. 행려병자 같아.”
“쉿.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아무튼 말이에요.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에요. 사장님.” 


케이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그를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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