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책임? 무슨 일?”
케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그로서는 사춘기의 여자애들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뭐 그 모양이야!”
[ 까마귀의 고해 ]
2부 3장 검고 푸른 말
“이에엑!”
케이의 비명이 동굴에 메아리친다.
그는 튕겨 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나 싸울 자세를 취한다.
피곤함에 절어 시력이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시야가 흐리다.
시트로 몸을 감싼 케이만 보인다.
“뭐지?”
“여자애가…”
“여자애?”
“응.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었어.”
“여자애가?”
“응.”
“여자애는 너잖아.”
“아냐. 좀 더 어린 애였는데.”
그는 동굴을 살폈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봤지만 막혀있다.
“잘못 봤겠지. 꿈이라도 꾼 거 아냐?”
“그런가. 꿈이었나. 얼굴이 생생한데. 하얀 피부에 금발 머리였는데. 교복 같은 걸 입고 있었어.”
그는 듣고 있지 않았다.
동굴 밖을 노려본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터벅터벅 다가온다.
검은 말이다.
갈기와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
나머지 부분은 칠흑같이 검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처럼.
그림자 인간의 입 속처럼.
케이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파란 말을 바라본다.
말은 동굴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림자의 왕이여
낮은 목소리가 동굴을 때린다.
그는 움직이지 못한다.
입을 열지 못한다.
그의 키보다 우뚝 솟은 말의 위압감에, 갈기를 타고 흘러다니는 푸른 빛에 압도당해 있다.
말이 다시 소리를 낸다.
턱이 열리지 않는데 목소리는 들린다.
말은 몸을 돌린다.
터벅거리며 동굴을 나간다.
안갯속으로 사라져간다.
여전히 그들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입을 열어 물어보고 싶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칭의 세계에서 날 찾으라
마지막 문장이 잔잔하게 파란빛의 잔상과 함께 사라진다.
그제서야 뻣뻣했던 몸이 풀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침대에 주저앉는다.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더니 역시 케이가 먼저 입을 놀린다.
“와. 봤어? 말이 말을 했어.”
“…”
“오빠 보고 왕이라는데?”
오빠라는 호칭도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부터는 확실하게 반말을 굳히기로 한 모양이다.
투툭- 하는 소리가 나더니 금세 비가 퍼붓는다.
고개가 번쩍 들린다.
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그는 동굴 밖으로 뛰어 나가 두 손을 모아 고인 빗물을 조금 빨아 마셔 본다.
냄새는 특이할 것이 없고, 맛에도 금속성이 약간 느껴지는 것 말고는 괜찮다.
케이에게 동굴에서 나와 마시라고 부르려는데 이미 밖으로 나와서 깡총깡총 뛰며 빗물을 입으로 받아먹는 중이다.
“그새를 못 참고. 독이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어차피 오빠 죽으면 나 혼자 못 살 텐데, 뭐.”
“오빠는 뭐고 반말은 뭐냐?”
빗물이 몸 안을 적시자 안도감이 살짝 들어 드디어 궁금했던 걸 물어본다.
“남자가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책임? 무슨 일?”
케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그로서는 사춘기의 여자애들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뭐 그 모양이야!”
그녀는 총총 걷더니 멀찍이 사라져간다.
그는 그녀를 쫓는다.
안개 때문에 놓쳤나 싶었는데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장난하는 건가? 생각하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비 때문에 그림자를 읽을 수가 없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 세 명이 손에 막대기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몸이 비쩍 마르고 눈빛이 차갑다.
둘은 막대기를 꼬나쥐고 그의 양 옆 쪽으로 돌아가 그를 둘러싼다.
“경찰 패거리냐?”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사내가 묻는다.
입가에 콧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여기서 경찰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경찰?”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나?”
“삼 일째인 거 같소.”
“지랄. 여기서 삼일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겨우 세 시간이나 버티면 다행이지.”
콧수염 남자가 냉소를 날린다.
“네놈도 그림자에 먹혀서 이곳에 왔지?”
“먹혔다고?”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다.
콧수염이 오른쪽의 사내에게 눈짓을 하니 허벅지에 막대가 내리 꽂힌다.
타는 듯 아팠다.
먹은 게 없어서 무릎이 탁 꺾여 주저앉는다.
‘아!’ 하는 소리가 낮게 들린다.
‘케이가 근처에 있군. 이들을 보고 모습을 감춘 거였어.’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이렇게 본능이 앞서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는 순순히 팔을 뒤로 한 채 묶인다.
그림자를 쓰지 않아도 주먹다짐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물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이들은 뭔가를 먹고 있을 텐데.
그도, 케이도 그걸 먹을 필요가 있다.
남자 넷은 언덕 위로 올라 해안가 쪽으로 걸어간다.
그 뒤를 보이지 않는 여자가 따르고 있다.
▶ [세계관] 까마귀의 고해 2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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