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저 새도 나를 버리고 떠나가리,
나의 희망들이 그렇게 날아갔듯이
- 애드거 앨런 포
[ 까마귀의 고해 ]
1부 3장 발각 (1)
“아이, 간지러요오-”
그는 서점으로 돌아와 그녀의 재킷 안주머니와 모자챙에 숨겨 둔 알약을 하나하나 찾아 꺼낸다.
“직접 꺼내라고 할 때 모두 꺼냈어야지. 얘기했잖아, 이거 여섯 알이…”
“한 사람 살린다구요. 아깐 일곱 알이라더니. 와, 성자 나셨네.”
더 이상 남은 약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는 그녀에게 당부한다.
“아무에게도 내 얘길 하면 안 돼.”
“말하면요?”
여자애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받아친다.
“널 죽여야지.”
그는 진심으로 말한다.
분위기가 일변한다.
그는 여자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의 눈동자의 흰 자가 조금 검어진다.
“알았어요.”
기가 죽어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한다.
‘주여, 용서하소서. 살의를 느꼈습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좀 심한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이 정도 해 놓았으니 서점에서도 그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좀 편해지겠습니다. 주님.’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낮 시간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케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가 있다.
업무 시간 내내 그의 옆에 앉아서 껌을 찍찍 씹어대며 종알거린다.
그의 능력이나 어제의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내 불안하다.
그가 미처 회수하지 못한 알약을 두어 개 꺼내 공기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건 어디에 넣었던 거냐.
분명 어제 다 꺼냈는데.
그가 커피를 뽑으러 가면서 지나치듯 속삭이자 ‘맞춰보쎄요오’ 라고 말한다.
생각과는 달리 전혀 겁먹지 않는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쉰다.
‘큰일이야. 저런 날라리 여고생한테 들켜 버렸으니.’
오늘 오후는 이렇게 저렇게 불안해하다 시간이 모두 지나가 버린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신경이 쓰여 서점을 나올 수도 없다.
피오나가 잠깐 들러 할리퀸 문고 하나를 사 갔을 때만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나마 평온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신간. 나왔어. 재밌겠다.
왕자님. 같은. 멋진. 남자.
여주인공. 안고. 멀리. 큰 성. 사랑도.
그녀를 바라보며 실실 웃음 짓는다.
그러다 또 케이가 보고 뭐라 할까 봐 깜짝 놀라 표정을 굳히고 정신을 차린다.
어라, 자리에 없다.
케이의 행방을 급히 묻는다.
옆에 있어도 걱정이고 없어도 걱정이다.
“오늘 친구들이랑 술 약속이 있다던데요?”
직원 하나가 알려준다.
“고등학생이 무슨 술이야?”
괜히 더 신경질이 난다.
“요즘 애들은 못 말려요. 담배를 중학교부터 피운다니까요.”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젓는다.
지금부터 밤까지는 마음을 좀 가라앉힐 수 있을 거 같다.
오늘은 늦게 남아서 하지 못한 책 정리도 좀 하고, 신간 주문서도 확인하고 그래야지.
그리고 약을 나눠줄 동선도 짜고.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하지만 그것도 다 착각이었다.
10시 반이 넘어서 케이가 서점 문을 두드린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싸장님. 문 좀 열어주세요. 취했단 말이에요.”
“술에 취했으면 집에 가서 잘 것이지. 여기가 네 집이냐? 아니 그보다 여고생이 술을…”
“에이, 시끄러요. 토할 것 같아요. 빨리 열어줘요.”
그녀는 말을 자르고 짜증을 부린다.
뒷문 열려있는데- 라고 말하려다가 그녀가 입을 막고 우욱 하는 포즈를 취하자 닫았던 셔터를 힘들게 올린다.
서점으로 들어오자마자 술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생전 입에 대지 않는 알코올이 코의 점막을 통해 뇌를 자극한다.
세상에, 취할 거 같다.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여…”
“방탕하긴요. 아아아~니에요. 나이트에 가서 놀긴 했지만요. 싸장님이 그리워서 이렇게 왔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밤에 길에서 쓰러지면 몹쓸 일을 당할 텐데. 요즘 강도도 강도지만 그림자가 사람을 먹어 치운다는 얘기 몰라?”
“그거 혹시 사장님이 하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젊은 처자만 노려서 확!”
그녀는 두 손을 들어 고양이가 할퀴는 동작을 한다.
“글고 나 괜찮아. 자동 방어가 되거든요. 볼래요? 정신이 나가면 이렇게,”
그녀가 사라졌다.
“정신이 돌아오면 이렇게,”
목소리만 들렸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아폴로 빌딩 바로 앞에 둥지를 튼 걸 처음으로 후회한다.
셔터를 올려서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데.
밖을 보니 역시나 누군가 우뚝 서 있다.
'제발 걸어가.'
기도해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머릿속에 소리가 들린다.
능력자! 은신. 여자애. 검은 생머리.
20대 초? 아냐. 화장. 17이나 19사이.
얼굴. 처음 봐.
이렇게. 아무 데서나. 능력. 쓰면. 곤란한데.
‘그게 내 얘기야.’
그렇게 맞장구치고 싶은 심정이다.
피오나가 아까 사간 책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여 서점 안으로 들어온다.
“퇴근하다가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왔어요. 이거 다 읽어서 하권을 살 수 있을까- 하고.”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는 케이를 보고 말한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 혹시 등록되어 있니?”
“당연히 되어 있소.”
케이가 입을 열기 전에 그가 먼저 대답한다.
여기서 바로 끌려가는 건 피해야 한다.
고용주도 조사를 받는다.
“당신에게 물어본 거 아니에요. 너 말해봐. 코드명이 뭐니?”
“아줌마가 뭔 상관야.”
케이는 흐늘거리는 목소리로 버텨보지만 얼굴이 이미 울상이다.
젠장. 술에. 취했어.
이 남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였지?
전화. 확인해 봐야.
“전화해서 확인해 볼 거야.”
피오나는 백을 주섬주섬 뒤적인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고민한다.
역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등록 안한 건 내 잘못이 아니지.’
그는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권을 가져다주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케이가 말한다.
“도와주세요.”
그는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다시 움직인다.
“저도 한 번 도와줬잖아요.”
다시 한 번 케이가 애원한다.
그는 걸음을 멈춘다.
피오나는 그런 그를 본다.
“이봐. 일반인은 능력자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검색 반원 쪽으로 돌려주세요.”
통화를 시작한 것 같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 [세계관] 까마귀의 고해 1부 (7)
'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 > 최강의군단(Herowarz)'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9) (0) | 2019.03.19 |
---|---|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8) (0) | 2019.03.19 |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6) (0) | 2019.03.18 |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5) (0) | 2019.03.17 |
[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1부 (4) (0) | 2019.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