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엄 넘치는 갈가마귀.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고
잠시도 멈추거나 주저치 않고
- 에드거 앨런 포
[ 까마귀의 고해 ]
1부 2장 둥지 (1)
직원들이 퇴근한 후 그는 책의 숲을 천천히 산책한다.
책의 냄새는 모두 다르다.
두꺼운 사전과 얇은 잡지는 가장 특별하다.
신간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새 책의 냄새는 막 찍은 잉크의 잔잔한 냄새와 신선한 종이의 냄새가 난다.
몇 달에 한 번 정도의 선택을 받는 장르 코너의 책에서는 약간의 습기와 부드러운 종이의 냄새가 있다.
그는 서점 일을 좋아했다.
이 일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을 자주 중얼거린다.
오늘처럼 까마귀가 날아야 할 때는 특히.
실제 일은 따로 있다.
서점의 벽시계가 뻐꾹-하며 10시를 알린다.
그는 손목시계를 차지 않는다.
손목에 드리우는 시계의 그림자가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초침이 움직이는 그림자 역시 그의 눈을 방해한다.
활동할 때는 몸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제거한다.
머리는 진작 짧게 밀었다.
목걸이나 모자도 안된다.
그는 책 준비실로 들어가 슈트를 벗고 5층 스포츠몰의 데상트에서 구입한 까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제 사이즈보다 하나 작은 치수를 선택해 몸에 꼭 맞췄다.
역시 까만 백팩을 메고 얼굴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 어두운색 염료를 얇게 바른다.
거울을 보니 눈동자만 하얀 게 정말 까마귀 같다.
까악 까악.
새처럼 입을 벌려본다.
다른 살 부위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서 얼핏 보면 흑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머리털이 종려나무 같아 까마귀같이 검구나.”
그는 혼잣말하며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는다.
별 모양의 로고조차 까만 커스텀 제품이다.
어디선가 킥-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코가 발달한 대가인지 눈과 귀는 좋지 않다.
비틀의 뒷좌석에 슈트를 던져 넣고 차에 기대 아이팟과 그의 귀를 연결한다.
칸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온다.
장엄하고 경건한 성모에 대한 찬가.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
도둑질하지만 불쌍한 아이들의 생명을 위한 일입니다.
주여.
몇 달 전부터 팬도린이라는 이름의 유행성 열병이 돌았다.
생존율 50%.
걸리면 반이 죽는다.
더구나 잘 먹지도 못하고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쇠약한 아이들은 거의 살아나지 못 했다.
한때는 전 인구의 10%가 넘는 감염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치료약이 나온 후 지금은 5%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통계의 오류였다.
걸린 사람들이 죽어버렸고 부자들은 살아남았으니까.
지나치게 비싼 약 값이 문제다.
지금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치료약을 얻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그 제약회사 건물, 어번 7의 플루오르가 오늘 그가 검은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야 할 곳이다.
합시코드의 마지막 잔영이 귀를 떠나자 아이팟을 차 서랍에 넣는다.
시동을 걸고 보니 뒷좌석이 닫혀있지 않다는 경고등이 뜬다.
차에서 나와 문을 밀어 닫는다.
슈트를 넣을 때 문을 열어뒀던가.
오늘은 뭔가 평소와는 좀 다르다.
차도 좀 묵직하다.
분노를 두 번이나 참았더니 운전이 잘 안 되고 있는 모양이다.
고해를 해야 하는데.
창문을 조금 내리고 시원한 밤의 공기를 코와 입으로 들이마신다.
공공 주차장에 비틀을 몰아넣고 백 미터 정도를 걸어서 제약회사 건물 앞에 선다.
옆 건물의 창에서 나온 불빛들이 제약회사 건물에 그림자의 계단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는 그걸 붙잡고 올라간다.
조금씩만 늘리고 약간의 강도를 부여해 주면 훌륭한 발 디딤대가 된다.
적어도 암벽등반보다는 쉽다.
목표 지점인 7층에 도착, 창을 밖에서 당겨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제약회사는 아폴로의 강제 계약으로 감지 능력자들에게 관리를 전담시키고 있어서 건물 자체의 보안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그들의 공백이 발생하는 날이다.
창고 문을 찾아 들어가 당당하게 불을 켠다.
진열대 안쪽에 치료약 상자가 쭉 쌓여있다.
상자를 하나하나 뜯어 알약만 백팩에 쓸어 담는다.
도둑질의 흔적이 남긴 하겠지만, 최대한 많이 담으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백팩의 옆 주머니까지 가득 차서 트레이닝복의 호주머니에도 넣는다.
진열대 끝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 [세계관] 까마귀의 고해 1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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