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무슨 능력이지.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멍하고 뒤죽박죽이다.
파편이야.
파편을 심장에 박아 넣은 거야.
인형이 속삭인다.
[ 까마귀의 고해 ]
2부 10장 경찰
“이봐. 빨리 나와 봐. 왔어! 경찰 놈들이 왔어.”
마을 남자 하나가 헬래벌떡 감옥에 뛰어든다.
이곳은 빛이 거의 없어 날이 밝지 않은 것 같다.
피곤이 채 가시지 않아 졸린 눈을 부빈다.
케이는 이미 모습을 감춘 듯했고 여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더니 아- 소리를 낸다.
“케이. 넌 여기서 숨어 있어.”
그는 속삭인다.
말을 해 놓았지만 케이가 여기 있는지 확신은 없다.
삐그덕 거리는 몸을 끌고 감옥을 나선다.
촌장을 둘러싸고 몇 명의 남자들이 윽박지르고 있다.
경찰복을 입은 사내가 눈에 띈다.
기다랗고 녹이 까맣게 낀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끝이 약간 휘어 있는 게 저걸로 사람 꽤 잡았겠다 싶다.
어제 상대였던 권투 선수와 노인 모양의 인형이 간수 녀석을 붙들고 있다.
그 외에도 종이봉투 같은 걸 뒤집어쓴 몇 명이 뒤쪽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며 겁을 주고 있다.
“저 자식이에요. 그 마법사.”
사라졌다던 간수녀석이 삿대질을 한다.
경찰이 가늘게 뜬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여자도 있어요. 무척 예뻐요. 마음에 드실 거에요.”
“데려와.”
노인 인형이 간수에게 말한다.
간수는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너희는 식량을 찾아와라.”
졸개들에게도 지시한다.
“아이고. 이렇게 다 가져가시면 저희는 어쩝니까?”
촌장이 말한다.
“여자랑 마법사를 숨겨두고 우릴 엿먹인 벌이야.”
노인이 대답한다.
“저놈은 어쩔까요?”
고개를 뒤로 돌려 경찰에게 묻는다.
경찰은 가만히 그를 가늠한다.
“우리도 투기장이나 한번 열어보지. 성주 녀석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거 없잖아.”
그러더니 낄낄 웃는다.
다른 녀석들도 뒤늦게 따라 웃는다.
“찾았어요.”
뒤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슬로 묶인 여자가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나온다.
입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가 다가가려 발을 떼자 경찰이 쇠막대기로 가슴을 툭 막으며 말한다.
“워워. 넌 가만히 있어.”
여자를 보더니 말한다.
“할렐루야. 이놈의 썩은 세상에 이런 여자가 강림하실 줄이야. 우리 동네 스트리퍼인 줄 알았네.”
그러더니 또 졸개들을 보며 웃는다.
이번에는 졸개들도 타이밍을 잘 맞춰 따라 웃는다.
그러면서도 다들 여자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경찰이 막대기를 치우며 졸개 한 명에게 손짓한다.
“얘는 니가 상대해봐라. 아이코. 재밌겠다야.”
온몸이 근육 덩어리인 대머리 동양인이 한 걸음 나선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뭐라 뭐라 말한다.
억양이 오르락내리락 해서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방정맞다.
무슨 소리지- 하고 노인을 쳐다봤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우리도 몰라. 우린 그냥 촌놈이라 부르네.”
노인이 짧은 팔을 흔들며 말한다.
“촌놈 대 갈가마귀의 전투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그의 신경을 긁고 있다.
이곳은 폭력 없이는 시계가 똑딱이지 않는 것 같다.
노인의 얼굴도, 경찰의 쇠막대기도, 머리가 풀어헤쳐지고 바닥에 쓰러져 사내들의 눈빛에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여자도, 겁에 질린 촌장도, 입이 더러운 간수 녀석도.
어제 힘을 너무 썼는지 싸우기도 전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깃발이랑 버저는 없으니까 니가 신호다.”
그러면서 경찰이 촌장을 쇠막대기로 후려 팬다.
촌장이 비명을 지른다.
동양인이 달려 나와 다리로 번개같이 그를 후려갈긴다.
언제 다리가 들리고 언제 맞았는지 알 수가 없다.
비틀거리는 그의 발을 휘돌려 걸어 쓰러뜨리더니 머리를 밟는다.
아프다.
고통과 눈물과 흙이 범벅되어 눈을 뜨기도 어렵다.
나는 그림자의 왕.
그는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만큼 분노한다.
이번엔 억제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내려찍는 뒤꿈치를 피해 굴러 일어난다.
나는 그림자의 왕.
왼팔로부터 그림자를 쭉 뽑는다.
날이 흐려 잘 잡히지도 않고 쉽게 늘어나지도 않지만 그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
머리카락이 손가락 길이만큼 솟는다.
그의 그림자는 흐리게 늘어나 꺾인다.
그는 단칼에 상대를 반으로 썩뚝 자른다.
대머리는 아직도 얼굴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곧 상체가 땅으로 떨어진다.
으쌰 으쌰 하던 경찰 패거리들은 피 위에 놓인 두 덩어리의 살을 보며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그는 마지막 저항을 해 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끝장이야.’
이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도 그는 한 조각 성경 어구를 떠올리려 발버둥 친다.
거의 찾았는데.
주여.
그 다음은 뭐였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경을 잇지 못하자 그는 절망한다.
피를 꿈틀대며 빨아들이고 요동치는 검고 붉은 칼을 바라본다.
그 환희에 더 취하고 싶어 한다.
콜록.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들린다.
기침 소리가 그를 막는다.
콜록 콜록.
그는 꼼짝하지 않는다.
“아이고야. 상대를 잘못 만났네.”
경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속삭인다.
“꼬챙이 어여 불러라.”
노인이 조막만 한 두 손을 입에 대고 휘파람을 분다.
창공으로부터 괴성이 내려온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날개 달린 분홍색 살덩어리가 덮는다.
그는 발톱에 할퀴어지고 날개에 얻어맞은 후 쓰러진다.
괴물은 날카로운 송곳 같은 꼬리를 높이 들어 그의 목에 쑤신다.
첫 방은 그가 들고 있는 그림자의 칼에 빗겨 어긋난다.
피가 터져 흐르지만 치명상은 피한다.
괴물이 날개로 힘없이 저항하는 팔을 밀어버리고 다시 조준해 떨어뜨린다.
그의 몸에 닿기 전에 꼬리가 멈춘다.
허공에서 피가 번진다.
붉은 피가 꼬리를 따라 뚝 뚝 떨어지며 케이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괴물의 꼬리에 복부가 꿰여 있다.
괴물은 꼬리를 흔들어 떼어낸다.
경찰은 실실 웃으며 여자에게 다가가서 사슬을 벗긴다.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울부짖는다.
모두가 귀를 막는다.
괴물조차 발광한다.
광야로부터, 하늘로부터 야수들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 와중에도 경찰은 기어이 사슬을 풀어내고 여자의 옷을 끌어 올린다.
여자는 사슬을 놀린다.
양손으로 사슬을 잡고 흔들어 후려친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아주 짧게.
부드럽기가 춤추는 것 같고 패기는 천둥이 치는 듯하다.
쟁그랑 왕그랑 거리는 소리가 경찰의 뒤통수를 갈겨 쓰러뜨린다.
귀를 막고 있던 종이봉투의 사내들이 달려들어 보지만 여자의 사슬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두들겨 맞는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림자가 흔들거린다.
쓰러져 있는 케이에게로 달려가 살핀다.
그녀는 그에게 눈길을 보낸다.
“난 케이야.”
입에서 피가 흐른다.
“피오나가 아니구요.”
그녀가 깜박 깜박 사라진다.
정신을 잃어 간다.
형광등이 점멸하며 꺼지듯 점점 보이지 않더니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양팔에 안고 있던 여자애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만진다.
인형이다.
노인이 아니다.
찢어진 눈.
중국의 여인.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한다.
공자님이라고 했던가.
그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성경인가.
고개를 돌린다.
경찰이 쇠막대기로 사슬의 여자를 밀어내고 있다.
사슬의 기세가 꺾인다.
경찰의 가슴에서 빨간빛이 흐른다.
눈에서도 붉은빛이 쏟아진다.
저건 무슨 능력이지.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멍하고 뒤죽박죽이다.
파편이야.
파편을 심장에 박아 넣은 거야.
인형이 속삭인다.
여자가 막대기에 맞아 그의 곁으로 쓰러진다.
경찰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가온다.
마을 뒤편으로 거대한 형체가 솟아오른다.
그의 세상에 존재하던 고층 빌딩에 네 발이 달린 것 같다.
온몸에 털이 부수수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눈 속은 텅 비어있다.
집을 몇 개 차 버리고 감옥을 눌러 부수며 그들에게로 다가온다.
경찰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그대로 있어라잉 하며 쇠막대기를 던진다.
괴물은 경찰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자리에 멈춘다.
놀랍게도 쇠막대기가 20층 높이의 몸통에 가서 꽂힌다.
거대한 형체는 야우우우운 하며 대지를 흔드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 거대한 몸이 마을로 쏟아져 내린다.
경찰은 멈춰 멈춰 명령해 보지만 괴물은 균형을 회복하지 못한다.
경찰이 꽁지가 빠지게 튄다.
아스카는 그의 뺨을 때리고 여자를 일으킨다.
그들은 종종 뛰어가는 인형을 따라 뛴다.
괴물이 쓰러지고 땅이 아주 크게 진동한다.
땅으로 뛰어올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린다.
해안선이 보이고 소금 냄새가 짙어진다.
바닷가의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작은 배를 탄다.
바다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달린다.
뒤돌아 보니 또 다른 야운들의 윤곽선이 안개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마치 도심의 스모그 너머 솟아있는 고층빌딩들처럼 보인다.
육지가 보일락 말락 하는 지점에 도착하자 아스카가 바다 한가운데서 배의 난간을 넘어간다.
물에 잠기지 않는다.
인형의 손짓을 따라 그와 여자도 배에서 내린다.
발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리지만, 더 빠지지 않는다.
딱딱한 걸 밟고 서 있다.
여자가 바닥에 손을 대 보더니 아-하는 소리를 낸다.
“조용히 해. 해왕류야.”
아스카가 말한다.
“온순하긴 하지만 네 목소리는 위험해.”
여자는 인형을 보더니 가만히 앉는다.
그도 따라 앉는다.
여자가 사슬을 들고 그에게 사슬과 그녀의 몸을 번갈아 가리킨다.
그는 다가가 사슬로 그녀를 묶는다.
마지막 매듭을 짓자 여자가 다시 아- 소리를 낸다.
바닥에서 수십 개의 눈이 눈꺼풀을 올린다.
눈 하나하나가 접시만 하다.
그곳에서 빛이 쏘아 올려져 공간에 영상을 만들어 낸다.
찬란한 원색의 이미지가 움직인다.
어떤 눈은 그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다.
또 다른 눈 안에서 S와 그가 다투고 있다.
기억이다.
그의 기억.
그는 다른 눈이 재생하는 장면들도 둘러본다.
쇠사슬로 묶인 여자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가 모르는 세계의 배경도 보인다.
아스카 근처에서는 여러 인형이 보인다.
‘다 모으면 컬렉션이 되겠군.’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
영상 중에 그가 알던 여자애의 모습을 찾는다.
어느 장면에서 케이가 웃는다.
다른 화면에서 케이가 깡총깡총 뛴다.
케이가 그에게 입을 맞춘다.
그것들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케이가 봤으면 와우-했겠어.’
그는 그녀의 냄새를 더이상 맡지 못한다는 게 슬프다.
툭툭 내뱉는 말투도 그립다.
껌 씹는 소리조차도.
까만 바다 위를 천 개의 눈을 가진 해왕류가 유유히 헤엄친다.
그들은 지옥에서 나와 천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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