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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군단] 까마귀의 고해 2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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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의 사소한 허물은 용서하라.”
“그건 누구요?”
“공자님 말씀이지. 고대 중국의 성인이라네.”
“일본 출신이라면서?”
“그건 성주가 착각한 걸세. 

원래 주인은 나를 찐눈이라고 불렀지. 

난 중국 인형이 맞아.”




[ 까마귀의 고해 ]


2부 8장 두 번째 전투


감옥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눈이 떠진다.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아침이 된 듯하다. 


케이가 그의 등을 꼭 껴안고 잠들어 있다. 

빗방울이 창가에 부딪혀 안쪽으로 조금씩 떨어진다.


‘오늘은 그림자 쇼를 할 수 없겠군.’ 


아쉬워하며 몸을 일으킨다. 

케이가 움직임을 느끼고 졸린 눈을 비빈다. 

몇 번인가 젖은기침을 한다.


“어디 가, 오빠?”


입술이 하얗다. 

기침이 심하다. 

걱정된다. 


그 전염병과 증상이 동일하다. 

약을 몇 알이라도 가져왔더라면. 

그는 후회한다. 

그렇게 많은 약을 챙기고도 이 여자애에게 먹일 약이 없다. 

제발 그 병이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한 감기라 해도 이곳에서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아이에겐 영양이 부족하다. 

음식이 더 많이 필요하다.


“오늘도 싸우러 가야 해. 멋진 성이 있는데 같이 갈래?”
“…아니. 오빠 맞는 거 보기 싫어.”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지 못한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조건 반사처럼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는 감옥 밖으로 나선다. 

촌장이 두리번거리며 누굴 찾고 있다.


“이놈 자식 일은 안 하고 어딜 간 거지. 야! 네 형 어디 갔냐?”


촌장이 간수랑 똑같이 생긴 아이를 붙잡고 묻는다.


“몰라요. 어제 집에 안 들어왔는데.”
“일도 영 게을러서 간수라도 시켜줬더니 쓸데없는 놈이야.” 


그를 바라보더니 말한다. 


“준비됐소? 오늘은 좀 힘들 거요. 상대가 몇 연승인가 한 챔피언이야. 복싱을 좀 한 거 같더라고.”
“누구든 상관없소.”
“그래. 그래야지. 먹을 건 많을수록 좋으니까. 자, 서두르세.”
 



“이봐. 니 덕분에 오랜만에 싸움하게 됐어. 너무 빨리 뻗지는 말라고” 


투기장에 들어온 녀석이 함성 사이로 말을 건넨다. 


둘째 날의 상대는 그가 장담했던 것처럼 상관없는 정도는 아닌 거 같다. 

그의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고 호흡이 침착하다. 

심지어 경기 전에 그에게 말을 걸 정도다. 

어제의 탱크와는 확실히 다르다. 

뭐랄까, 사뭇 여유가 있다.


버저가 울리고 사내의 외침과 함께 깃발이 흔들린다. 

비가 와서 횃불이 힘이 없었고 그림자도 그만큼 흐릿해져 있다. 


이 녀석은 권투 자세를 제대로 잡고 있는데 거리 조절을 아주 잘한다. 

그가 어제했던 것만큼, 팔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서 확실히 적중할 거 같은 경우만 주먹을 날린다. 

몇 번 피하니까 어깨를 이용해 속임수를 쓴다. 

예측이 틀려서 펀치를 허용한다. 


머리로 오는 건 가까스로 막을 수 있지만, 옆구리나 복부로 들어오는 게 꽤 묵직하다. 

주먹이 몸에 꽂힐 때마다 관중들이 ‘이에-’ 하면서 환호한다. 

상대는 탱크처럼 헉헉거리거나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복부에 충격이 쌓여 그의 움직임만 점점 느려진다.


능력을 감춰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는 몸을 곧추세우고 양 팔을 들어 상대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공격을 시작한다.


주먹을 뻗으면서 그림자로 자신의 주먹을 잡아 상대 쪽으로 홱 당긴다. 

주먹의 속력에 당기는 힘이 더해져 피할 수 없는 스트레이트가 된다. 

그래도 상대는 몸을 숙이거나 뒤로 흔들며 피한다. 


그는 피하지 못할 때까지 점점 더 빠르게 뽑는다. 

가끔은 피한 주먹을 상대 머리로 당겨 목덜미를 강타하기도 한다. 

싸움 시작부터 머물러 있던 여유 있는 웃음이 느끼한 얼굴에서 사라진다.


세 번을 정확하게 꽂아 넣으니까 상대가 그를 끌어안는다. 

이렇게 붙어서는 주먹을 날릴 수가 없다. 

그 자세로 옆구리와 목에 주먹이 들어온다. 

피하기가 어렵다. 


주먹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뒤이은 팔꿈치가 관자놀이를 강타해서 정신이 아찔해진다. 

상대는 몸을 떼지 않고도 타격을 할 줄 안다.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화가 난다.
아이들에게 빵을 줘야 하는데.   
케이를 먹여야 하는데. 

그 애가 아픈데.


억제를 못 하자 그의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진다. 

그의 그림자가 더 기울어진다. 

나는 그림자의 왕. 


상대는 근접 어퍼컷을 쳤던 자세로 고정된다. 

움직이려고 해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는 몸을 뒤로 빼서 두 주먹으로 엄청난 타격을 날린다. 


상대는 휘청하더니 뒤로 넘어간다. 

발이 그림자에 묶여 완전히 쓰러지지도 못하고 발목이 꺾인다. 

그는 올라타서 다시 주먹을 쳐든다. 

상대의 눈이 뒤집혀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게 보인다. 


사악한 충동과 싸운다. 

목을 꺾고 뽑아 쏟아지는 피에 젖어 두 팔을 들어 관중들에게 환호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림자에 피를 먹이고 고동치는 심장을 적시고 싶다. 

그는 중얼거린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주여.


그는 주먹을 든 채로 한참을 굳어 있다가 겨우 일어난다. 

숨을 헉헉거리며 몰아쉰다. 

정적을 깨고 버저가 울린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까마귀를 외친다. 

갈가마귀란 말이야. 

까마귀가 아니라. 

그는 중얼거린다. 


촌장이 안으로 들어와 희희낙락하며 그를 데리고 나간다. 

울렁거리는 심장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그의 어깨와 등을 두드려 댄다. 
 
계단 위에서 촌장은 어제보다 더 큰 꾸러미를 등에 둘러멘다. 

입에는 말린 과일을 한 움큼 털어 넣고 있다.


“좋으시겠구려. 경찰이 곧 찾아갈 거야.” 


노인 인형이 촌장에게 스치듯 말한다. 

촌장의 얼굴이 급격히 굳더니 먼저 계단을 서둘러 내려간다.  
아스카가 가까이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뭔가 숨겨둔 기술이 있었군.”
“그렇소.”
파편을 박아 넣었나?”
“파편이라니? 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소.” 


그는 연신 숨을 몰아쉰다.


“빨간 유리조각 같은 건데.” 


인형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같으이.”
“악귀가 될 뻔했지.”
“싸우다 보면 정신이 나가는 건가. 머리가 길어지는 걸로 구분할 수 있지 않느냐?”
“눈이 좋군.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소?”
“성주는 장군을 필요로 한다오.”
그대가 와서 우리의 장군이 돼 주어야 우리가 암몬군을 칠 수 있겠소.” 


그는 아직도 얼이 빠져 중얼거린다.


“성경이군.” 


아스카는 말했다. 


부하의 사소한 허물은 용서하라.”
“그건 누구요?”
“공자님 말씀이지. 고대 중국의 성인이라네.”
“일본 출신이라면서?”
“그건 성주가 착각한 
걸세. 원래 주인은 나를 찐눈이라고 불렀지. 난 중국 인형이 맞아.”


인형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느렸다. 

대화는 그에게 평온의 한 조각을 되찾아주는 데 도움이 된다. 

얘기 도중에 머리카락이 줄어들어 거의 원래 길이로 돌아온다. 

맥박도 가라앉고 있다.


“장수를 구하면 어디다 쓸 거요?”
“본토에 적들이 많다오.”
“빵과 과일이 오는 곳인가?”
“이곳 사람들은 거길 헤이븐이라 부르지.”
“헤이븐… 천국이란 뜻인가?”
“천국은 없어. 거기도 한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붉은 피로 물들어 가고 있다오. 갈 거요?”
“여기보다는 낫겠지.” 


그는 검고 푸른 말이 한 얘기를 기억한다. 


“데리고 갈 여자가 있소.”
“다음에 올 때 데려오시오. 또 다른 장수를 찾아보고 있을 테니.” 


아스카는 시선을 막 함성이 시작되는 경기장으로 돌린다. 

그는 먼저 내려간 촌장을 찾아 계단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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