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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Herowarz

[최강의군단] 흙투성이 파티 - 몽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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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520년 위치타운 마녀들과의 전투 중에 열린 
슈퍼스타P의 마무리 행사 - 선수단 파티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을 각 선수들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실제 기록입니다.





[ 흙투성이 파티 ]


몽영은 너무 일찍 도착했다. 


파티장은 한창 준비 중이어서 일곱 명짜리 조그만 교향악단들은 피아노의 음계를 조율하고 첼로의 활을 다듬고 예진 언니는 어울리는 새빨간 드레스를 몸에 꼭 맞게 입고 바쁘게 이리저리 다닌다. 


“드레스 너무 예뻐요! 와아- 저예산 파티라더니 본격적이네요? 저분들은 어떻게 불렀어요?” 


몽영은 지나가는 예진을 붙잡고 말을 건다. 


“싼 맛에 불렀지. 중요한 파티잖니. 선수들 간의 다툼은 막아야 해. 안 그래도 헤드헌터들 때문에 자꾸… 죽어 없어지는데.”
“무슨 음악을 연주한대요? 클래식? 클래식은 지루한데

“영화음악이라던데… 지금 나오네, 들어보렴.” 


느린 첼로 선율에 비올라가 더해지고 있다. 


“넌 아니?”
“글쎄요. 모르는 노래에요. 여긴 어떻게 빌린 거에요?”
“친구 펜트하우스야.”
“이야, 친구가 부잔가 봐요? 부러워라”
“그렇지 뭐. 내가 부자는 아니잖니.”
“60층짜리 빌딩의 꼭대기라니. 멋지네요. 야외공간도 크고.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죠?”
“그건 아니야 얘. 걔 얼굴이 시커메서 스트레스 과다에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너 내 말 듣고는 있니?”
“이리 와 봐요. 언니.”


몽영은 예진의 손목을 잡아끌며 난간에 몸을 기대고 빌딩 너머의 경치를 감상한다. 

이렇게 멀리 볼 때는 냄새와 소리가 시각에 섞이지 않아 누구나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역시 공감각은 너무 과해. 

음식도 그렇듯이 정갈한 맛의 풍경처럼. 

바람이 불긴 했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해의 열기와 합쳐져 적당히 시원했다. 


“곧 추워질 거야. 해가 떨어지면.” 


예진도 난간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너 왜 맨날 그 옷이니. 교복에 빨간 가디건에. 학교 안 간 지도 꽤 됐잖아?”
“히스토릭 서비스에서 옷을 좀 주시던가요. 이거밖에 없는데 언니, 어쩌겠어요.”
“빨아는 입니? 너 속옷 뒤집어 입고 그러지?”
“어머, 언니 내가 냄새에 얼마나 민감한데요.”
“흠, 정말 내가 옷 한 벌 사줘야 하겠다. 정말이지 우리 첫 파티니까 멋지게 좀 차려입고들 오라니까 말을 통 듣지를 않아요. 칼잡이들 봤지? 누가 보면 싸우러 온 줄 알겠더라. 때가 덕지덕지 묻은 옷 하며, 칼도 안 놓는 걸 겨우 빼앗았어.”
“그래도 아까 낮에 보니까 여신님들은 장난 아니게 준비하고 있더라구요”
“베누스?”
“랑 헤이디어즈랑요. 엄청 예뻐요.”
“그러니? 나도 좀 더 차려입고 올 걸 그랬나?” 
“그 정도면 됐어요.” 


몽영은 웃었다. 


“먹을 건 뭐예요? 오늘 배 좀 가득 채울 수 있을려나?”
“그럼! 돈을 다 먹는 거에 썼단다. 파인애플에 복숭아에

“과일 말구요.”
“과일이 다이어트에 얼마나 좋은데.”
“난 다이어트 안 해도 되는데?”
“조금 있으면 하게 될 거야. 게다가 비싼 에클레르에 파르페에 빙수에 종류별로 빵도 많아. 바비큐 고기도 잔뜩 준비했고, 덩치 큰 선수들이 워낙 많아야지. 야외 테이블에 있으니까 비만 안 오면 거기서 구워 먹으면 돼.”
“엘리야랑 백골단이 바비큐 쪽은 다 점령하고 있던데요? 무슨 타도하라! 어쩌구 구호를 합창하면서 말이에요.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내 이것들을 정말. 해산시킬 테니 걱정 마.”
“무리하지 말아요. 언니. 차라리 저들은 선수들과 섞여 있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평화를 위한 파티잖아요.”
“그러네. 분리수거 같은 거구나.”
“그렇죠.” 

몽영은 몸을 돌려 파티장을 바라본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저녁의 연회장을 바삐 누비며 접시와 숟가락을 세팅하고 있다. 
  

“나이프는 안돼요, 포크도 안돼!” 


예진이 웨이터에게 소리친다. 
  

“왜요? 밥은 뭘로 먹어요? 밥은 먹어야지.” 


몽영은 궁금했다. 
  

“여기서 또 시비 붙으면 곤란하잖아. 무기가 될 건 다 치우고 있어. 배고프면 숟가락으로 먹던가 손으로 집어 먹겠지.”
“목소리가 무기인 사람도 있잖아요. 그림자 아저씨도 있고." 


몽영은 음산하게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한다. 
  

“어휴, 그런 것까지 내가 어쩌겠니.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너도 좀 도우렴. 휘장에 색칠도 하고.”
“저한테 색을 칠하라구요? 곤란한데.”
“뭐가 곤란해?”
“아니다. 안대를 끼고 하면 되겠네.” 


몽영은 탄두리 치킨의 진한 황갈색 향료의 색 가루를 연기처럼 흩뿌리며 다가오는 웨이트리스를 본다. 

피아노와 현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느린 협주곡의 색이 리듬에 맞춰 피어오르는 장면을 본다. 
  

“음악이 레몬색이야. 노래가 너무 쳐지는 거 아니에요?” 
“돈 없어 얘.” 


핀잔주듯이 대꾸하고 예진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쥔 채 바쁘게 멀어져 갔다. 

예진의 발걸음을 따라 향수의 음향이 피어오르고, 피아노와 현악과 파티장의 음식의 색채와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진짜 색과 진짜 소리와 진짜 향기가 구분되지 않는 감각 과잉의 세계를 바라본다. 

몽영은 안대를 주섬주섬 찾는다. 

“없네?”

“뭐가 없니?” 


소리 없이 다가온 형체가 웃으며 말을 한다. 

그 여자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언제 또 여기에 스며들었담… 


회색빛의 눈에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오드리의 감정 없는 눈과는 다르다. 

깨끗하게 죽어있다. 


맥의 잿빛과도 다르다. 
피처럼 끈적이며 퍼지는 회색. 
  

“이번 달의 메시지를 들려줄게.” 


회색빛의 여자가 몽영의 귀에 소형 재생기를 가져다 댄다. 
  

“누나… 우리 언제 풀려나는 거야?” 

딸깍. 


겨우 한 마디가 전부야? 

항의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이게 살아있다는 증거는 아니잖아요?”
“날 못 믿니?”
“네.”
“다음에는 동영상으로 찍어올게. 그럼. 의심 많은 애네. 니가 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히 걸렸더라. 한 달 후에 또 보자.” 
  

청초하고 세련된 억양의 귀여운 목소리지만 그녀의 음색이 내는 색채는… 잔인하다. 

입을 열지 마. 

입을 열 때마다 회색 피가 터지잖아. 

회색 여자는 녹아들어올때처럼 사라져 버린다.

“안대는 어딨는 거지…?” 


몽영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하얀 안대를 찾는다. 

하얀색. 하얀색. 파티장에 색이 너무 많잖아. 


눈물이 날 거 같다. 

소리도 향기도 고통도 색으로 번진다. 

물건을 찾는 건 그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탐정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예진이 사회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흩어진다. 

파티는 이제 막 시작이지만 그녀의 기분은 벌써 눅눅하게, 피아노 가장 왼쪽의 무거운 도처럼 가라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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