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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Herowarz

[최강의군단] 흙투성이 파티 -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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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이 나온다. 

PC방에서 바로 왔나 보군. 

하루 종일 밥을 한 끼는 먹은 건가. 

지금 내가 여신을 걱정하는 건가. 





[ 흙투성이 파티 ]


그는 안경 너머로 세상을 관찰한다. 

말을 믿지 않고 증거를 본다. 

타인의 복장과 상처와 옷이 설명하는 온갖 것들을 연결하고 기억하고 인과관계를 찾는다.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은 답답하다. 

예전 베가스에서 맡았던 일은 대부분 풀어 낼 수 있었는데, 이곳은 그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다 그것 때문이야. 


엇보다 누구나 에르메스의 문을 통해 드나든다. 

그것 때문에 이 고생이지. 


실 살인이라는 게 없다.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쉽다. 

게다가… 다들 능력을 숨기고 있다. 

그 자신도 그렇듯이. 


이래서야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미지수가 너무 많다. 

탐정 일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는 다시 전공 책을 노려보다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서 소음도 증가하자 파티장에서 공부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덮고 고개를 드니 대장장이가 맞은편에 앉아있다. 
  

“언제 왔어요?” 
“아까.”
“볼일 있으면 얘길 하시지?”
“큰일은 아니라서.”
“왜요, 당신도 뭘 또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알았냐?”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걸려버렸다. 

대장장이는 평소 베이스캠프에서 보는 그대로라 장소만 바뀐 기분이다. 

나른한 말투에 다크서클에 작업복 상의와 하의. 고글. 허리띠.
  

“파티장에 오는데 그렇게 왔어요? 예진 누나가 화낼 텐데.”
“난 양복 없는데.”
  

자꾸 바지춤을 만지고 있다. 

벨트에 공구 통도 잘 걸려 있다. 

아, 멜빵이 없다. 
  

“그러시군요… 멜빵을 잃어버렸군요?”
“그렇지! 바지가 내려갈까 봐 일어날 수가 없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니까!”
“당신도 그랜드마켓에서는 유명한 탐정이었다면서요?”
“아냐. 틀려. 유령 사냥꾼이야.”
“비슷한 거 같은데 직접 찾으시지 그래요?”
“바지가 내려가서 안 돼.”
“후우…“
  

전공 책이나 읽고 있을걸… 하고 후회했다. 

뒤에서 누가 등을 팡 친다. 
  

“야! 탐정아! 여깄었구나아 한참 찾아다녔어어” 


하이톤의 씩씩한 목소리가 그의 뒤로부터 나타나 옆을 지나쳐 바이스와 자신의 사이에 턱 걸터앉는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 월급 다 운영비에 가져다 넣어서 돈도 없는데, 이게 또 뭔 일이야. 가난한 여대생 걸 털어가다니,”
  

화장기 없는 얼굴을 살펴본다. 

평소에도 장신구는 하지 않는 여자니 귀걸이나 목걸이는 아닐 테고… 

비정규직 승격 협상 테이블에서 입었던 자라 브랜드의 페이즐리 무늬 민소매 원피스를 또 입고 있다. 

여대생이 돈이 없겠지. 


까만 머리는 평소와 달리 묶지 않고 풀어 내렸는데 딱히 꾸미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느낌이 확 다르다. 

하미레즈가 열을 올릴 만하네. 

그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오는 길에 추웠는지 팔에 소름이 돋아 있다. 

그렇군. 

풀었다. 
  

“점퍼군요”
“맞아! 역시 탐정이네! 어떻게 알았어어?”
“전에 그 드레스에 점퍼를 걸치고 다니는 걸 봤어요”
“비싼 건 아니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건데. 범인을 꼭 잡아 줘. 정의는 내가 실현할 테니!” 


당차게 말하더니 바이스를 한번 쓰윽 째려보고 일어났다. 
  

“비정규직한테는 수리비를 대폭 할인해 달라지 뭐야. 거절했더니 맨날 저래.” 


바이스는 바지를 추켜 올리며 투덜거렸다. 


“좀도둑이 있는 모양이네. 나랑 마리랑 벌써 둘이나 당한 거지?”
“넷입니다.”
“뭐? 훔쳐 간 물건이 더 있는 거냐?”
“네. 오드리도 아까 왔었고… 이제 저기 IQ가 오고 있으니까요.”
“야! 공대생!” 


빼액 거리는 목소리가 벌써 달려온다. 


“내 컴퓨터가 고장 났다. 빠알리 고쳐라.” 


보라색과 초록색의 아기자기한 잠바를 입은 작은 여자애가 당돌하게 요구한다. 
  

“니 컴퓨터를 왜 내가 고치냐.”
“너 컴공과래매.”
“컴공과라고는 해도 학교는 거의 안 갔어. 그리고 너 천재라면서 니 컴퓨터 정도는 쉽게 고칠 거 아냐?”
“기판이 나간 건 나도 어쩌지 못하지.”
“기판이 나갔으면 사서 갈면 되잖냐.”
“돈이 없어.”
“돈을 달라는 거냐?”
“기판을 달라는 거야.”
“푸헤헤.” 


바이스가 풋 하고 웃었다가 아이큐의 도끼눈과 마주치자 슬금 뒤로 물러났다. 
  

“고추 좀 그만 만져. 확 바지 내려버린다?” 


아이큐는 바이스를 향해 한번 쏘아붙이고 일어났다. 
  

“고추… 가 아니라 바지가 자꾸 내려가서 그런 거야!” 
“넌 뭐 잃어버린 건 없냐?”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있어. 헤드폰. 아무리 찾아도 없어. 없어도 그만이긴 한데. 짜증 나네. 근데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찾아주면 좋고.” 


아이큐는 바이스에게 확 때릴 것처럼 위협하고 일어나 바삐 걸어간다. 


다들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다. 
왜지? 


헤드헌터를 먼저 생각해 본다. 

무기를 훔쳐 간 건 아니다. 

스타킹, 헤드폰, 멜빵, 점퍼… 


그런 것들이 복제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건가? 

그걸로 복제체를 만들어 내는 건가? 

그럼 이건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다. 

심각하다. 

티거와 광대를 찾아야 한다. 
  

“이 음악은 뭐야? 시작할 때부터 네 마디만 계속 반복하는 기분인데…” 


바이스의 질문에 생각의 흐름이 깨진다. 
  

“타임이에요. 인셉션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입니다.”
“설마 저 노래만 계속 연주하는 거야?” 
“4분짜리를 10시간짜리로 편곡했대요.” 
“으아… 마야의 꿈이라고 저런 노래를 선곡한 건가? 예진이 시킨 거지?”
“아뇨. 저들이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저것뿐이라고. 다른 곡을 더 하면 가격이 올라간대요.”
“역시 알뜰하시네.” 


바이스는 끄덕끄덕하며 또 바지춤을 추어올린다. 
  

광대는 여신들과 같이 앉아 있다. 

헤이디어즈, 베누스. 

다들 파티에 어울리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다. 


베누스야 항상 파티복이니까 그렇다 치고 헤이디어즈는 새로 사 입은 건지 새카만 드레스가 사신의 이미지를 더 강조하고 있다. 

미리어드만 그 사이에 앉아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군. 


한숨이 나온다. 

PC방에서 바로 왔나 보군. 

하루 종일 밥을 한 끼는 먹은 건가. 

지금 내가 여신을 걱정하는 건가. 


미리어드를 한참 쳐다보는데 헤이디어즈와 눈이 마주친다. 

헤디가 입 모양으로 말한다. 

이리 와… 

손가락은 포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걸 가지고. 


못 본 체하려 했지만, 미리어드와도 눈이 마주쳤다. 

이건 갈 수밖에 없는 각이다. 

그는 힘없이 일어나 전공 책을 가방에 넣고 테이블 앞에 놓여있는 접시를 들고 최대한 느리게 걸어간다. 

칼잡이가 스쳐 지나가다 그의 접시에서 포도를 집어 들더니 와구와구 먹는다. 

그는 이제 어쩌지 하고는 칼잡이와 여신을 번갈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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