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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군단] 영원의 숲 - 신록의 여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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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고 있거든요. 

당신은 이 숲만 바라보고 있으니 알 리가 없죠. 

바르바토스가 죽었어요."


- 뭐라고?


나도 모르게 숲의 목소리를 낸다. 

나뭇잎이 푸드득 떨어져 흩어지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뭐라고? 그가 죽을 리가 없잖아.” 






[ 영원의 숲 ]


신록의 여신 (7) |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저 멀리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자연스럽지 않다. 

봄의 산들바람도 여름의 폭풍을 알리는 습기 가득한 바람도 겨울의 북풍과도 다르다. 

그런 것들보다는 작고 매우 빠르다.


그가 달려온다. 

신들의 전령.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소식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자.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란 없으니. 

항상, 슬프고 힘든 이야기를 가지고 달려오는 에르메스. 

힘겹게 피어나는 나무의 눈을 매섭게 말려 죽이는 초봄의 날카로운 바람처럼.


“미리어드" 


그는 숲의 경계에 서서 날 부른다. 

목소리는 작지만 바람을 타고 또렷하게 들려온다.


- 오랜만이군. 무슨 일이야.


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숲의 목소리로 대답한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 하. 자네가 아무 소식 없는데 여길 왔을 리가.


나는 숲을 떨어 웃음을 날린다.


“저한테까지 그런 식으로 말할 건가요? 

대화는 서로 눈을 마주 보며 해야죠."
- 일단 안으로 들어오거라.


그를 위해 길을 연다. 

에르메스는 숫자가 새겨진 떡갈나무를 흘깃 본다. 


오래되어 썩고 쓰러져가는 통나무집이 보이는 공터에 멈춰 서서 잿빛 슈트의 옷매무새를 만진다. 

나는 그의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인간이 아니기에, 내 모습 그대로 덩굴도 이파리도 덮지 않은 살색의  몸으로 나무 사이를 빠져나온다. 

그는 뚫어지도록 나를 보더니 빙긋 웃는다.


“그것도 좀 이상하네요."
“사람들 사이에 있더니 그들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군 그래."


난 바닥에서 덩굴을 뽑아 몸을 감고 일부를 가린다. 

그는 살짝 미소 지으며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러는 넌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그런 옷은 불편하지 않나?”
“할 수 없죠. 제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입고 있던 거라서."
“옷에 네 이름도 새겼구나.”
“아뇨. 이건 상표 같은 건가 봐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온 거야?”
“…그냥요. 당신도 가끔 지칠 때가 있지 않나요."
“넌 안 지치는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전령이 아닌가?"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시대가 바뀌고 있거든요. 

당신은 이 숲만 바라보고 있으니 알 리가 없죠. 

바르바토스가 죽었어요."


- 뭐라고?


나도 모르게 숲의 목소리를 낸다. 

나뭇잎이 푸드득 떨어져 흩어지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뭐라고? 그가 죽을 리가 없잖아.” 


나는 다시 내 목소리로 말한다.  


이 세계에 전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제가 뛰어다닐 일도 많고. 

가만히 있으면 당신에게도 곤란한 일이 있을 겁니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전령이 스스로 메시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나.” 


나는 코웃음치며 말한다. 


“난 세상 일에 관심 없어. 이곳에서 조용히 살아가면 되는 거야."
“가끔은… 그렇게 아무런 변화 없는 삶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덩굴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그의 말을 곱씹는다. 

그러게. 우리는 왜 존재하는 걸까. 

그보다. 더 궁금한 건.


누가 우릴 만든 건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는 내 생각을 말한다.


“너도 그런 걸 궁금해하는구나 "

“저뿐만 아닙니다. 바르바토스도, 베누스도, 갈리아노도. 

헤이디어스도 모두 이런 얘길 물어본 적이 있어요.”

“난 신경 쓰지 않아. 이 숲에는 변화가 충분히 많아. 

나뭇잎의 색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모를 거야."


“그래 봐야 계절을 타고 변하는 거죠. 

몇 십 년 살아가는 인간이 항상 비슷하게 변하는 것처럼. 

이봐요. 미리어드. 지겹지 않아요?”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러다 고개를 거의 끄덕일 뻔한다. 

동의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난 덩굴 안으로 들어가 숨어 버린다. 

이제 숲의 목소리로 말한다.


- 전달할 게 더없으면 이제 돌아가. 여긴 나의 숲이야.


“지금 세상은 뭔가 전과 달라요. 

나와서 좀 볼 필요가 있어요.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돌아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뽑은 다음 달릴 준비를 한다. 


숲을 벗어나 남쪽으로.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멀어진다.
바람이 한 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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