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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척 아름답구료. 마치 여신처럼.”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도 도망쳐 왔소. 잘못을 좀 저질렀지.
여기 집이 있구료. 이곳에서 추위를 좀 피하겠소?”
“그러시군요. 저는… 음…”
“눈이 안 보이는군. 내가 안내하지.”
[ 영원의 숲 ]
신록의 여신 (5) | 깍지 낀 손
- 여인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
눈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숲도 함께 슬픔에 잠겼다.
한 사내가 도망치듯 숲으로 급히 뛰어들어온다.
나는 숲을 흔들어 겁을 줘 봤지만 소용이 없다.
그에게는 움직이는 나무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 듯하다.
허리춤에 있는 단도를 보고 그를 위한 길은 트지 않는다.
한동안 헤매다가 나가도록.
또 다른 여인이 반대편 경계로부터 들어온다.
그녀는 들어오는 내내 여기저기 부딪혀 넘어지고 구른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다가오는 모양새가 눈이 안 보이는 듯 하다.
나는 그녀에게 더 친절히 대해준다.
그래도 그녀는 숲을 헤맨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들은 숲을 빠져나가지 않는다.
숲을 나갈 때마다 또르르 다시 돌아오는 걸 보니 여길 나가려는 의지가 없는 듯 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통나무 집 까지 길을 내어 준다.
남자는 그 앞에서 여자를 발견한다.
“여긴 신의 숲이라던데, 당신은 이 숲의 여신입니까?”
단도를 꺼내 든 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아닙니다. 저는 도망친 노예입니다. 저를 잡아가지 마세요.”
여자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칼소리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간청한다.
“…당신은 무척 아름답구료. 마치 여신처럼.”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도 도망쳐 왔소. 잘못을 좀 저질렀지. 여기 집이 있구료. 이곳에서 추위를 좀 피하겠소?”
“그러시군요. 저는… 음…”
“눈이 안 보이는군. 내가 안내하지.”
사내는 여인의 손을 잡아 통나무 집으로 이끈다.
여자는 처음엔 소극적으로 팔을 내밀다가 걸음이 빨라지자 남자의 손에 깍지를 껴서 꼭 잡는다.
여자를 집에 들이고 나더니 남자는 주위를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서 여인과 나누어 먹는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오랫동안 배를 곪았답니다.”
“어르신이라고 부를 거 없어.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날 거 같은데.”
남자는 허허 웃는다.
“그렇습니까. 얼굴을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남자는 장난스럽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남자의 코와 눈과 입술을 만진다.
사내의 얼굴에 욕망이 잠시 서렸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통나무 집에 둥지를 튼다.
젊은 두 남녀는 서로 껴안기도 하고 얼굴을 맞대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남자는 주로 얘기하고 여자는 자주 웃는다.
그들의 웃음이 한동안 숲에 가득하다.
눈이 내렸다가 꽃잎이 날리고 태풍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게 몇 차례 지나자 여인의 얼굴에 수심이 어린다.
나는 궁금하다.
- 왜 그러느냐. 왜 요즘은 웃지 않느냐?
“아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 언젠가는 생기겠지.
“아뇨. 저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한 번 가진 적이 있었는데, 옛 주인이 제 뱃속에 든 아이를 죽였거든요.”
- 그랬었구나.
“남편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알면 크게 실망할 거에요.”
나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장님 여자는 말을 돌린다.
“그이는 정말 미남이지요?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다른 인간 사내와 같다. 눈과 코와 입이 있지.
“아이. 참. 여신님도. 그런 거 말구요. 잘생긴 거에 대한 거랍니다.”
- 나는 잘생겼는지 그런 거는 잘 모른다.
호호 웃던 얼굴이 이내 시들고 아까의 시무룩한 목소리로 돌아가서 간청한다.
“아아. 제게 아이를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 내겐 그런 능력이 없다.
오래전 같은 걸 원했던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가감 없이 말한다.
여인은 슬퍼하며 보이지 않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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