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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군단] 영원의 숲 - 신록의 여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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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또 다른 신. 

혹은 신들의 전령. 

그를 불러 부탁한다. 

그는 바람처럼 뛰어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남자가 숲으로 돌아온다. 

신의 전령이 일을 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의 안색은 까맣다. 






[ 영원의 숲 ]


신록의 여신 (6) | 깍지 낀 손 2


계절이 수차례 지나간 봄의 숲에 또 다른 여자가 들어온다. 

눈이 먼 여자가 숲에 들어올 때쯤의 나이. 


나는 고민했지만 지치고 상처 입은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길을 열어준다. 

부부는 그녀를 발견하고 통나무 집에 옮겨 먹이고 치료한다.


봄이 끝나고 사계절 중 해가 가장 길어질 무렵, 

남자는 더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한밤중에 숲을 떠난다. 

난 막지 않는다. 

혼자 남은 장님 여인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구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여신님. 그이는 어디 갔나요?”
- 그 여자랑 숲을 떠났다.
“왜 절 두고 갔을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여자는 답을 알고 있다. 

나는 버드나무를 늘어뜨려 그녀의 축축한 뺨을 쓰다듬는다.


다음 여름이 되어도 여자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넨다.


- 그만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 너희에겐 아주 긴 시간일 텐데.
“다시 돌아올 거 랍니다.” 


목이 메어서 대답한다.


정말로, 여름이 한 번 더 지나자 남자가 엉거주춤 숲으로 들어온다. 

얼굴에는 부끄러운 미소와 무표정을 오가며 통나무 집에 들어와 털썩 자리에 앉는다. 

장님 여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차를 달이고 음식을 두 사람 분으로 늘려 준비한다. 

얼굴에는 눈물 범벅이 된 채.
 
그들은 다시 몇 년 동안 가끔 다투고, 가끔 사랑하며 지낸다. 

하지만 다시는 예전 같지는 않다. 

서로가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고 마음을 나누며 지내지 못한다. 


여자는 종종 두려워하고, 그의 그림자를 화들짝 놀라며 찾는다. 

남자는 가끔 답답해하고 숲 밖을 멍하니 내다볼 때가 많다. 

그들 사이에 얼룩이 졌고 그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다 여자가 눕는다.
 
눈 먼 여자는 눕는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호흡이 규칙적이지 않다. 

기침할  때마다 피가 솟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를 반년 동안 돌보다가 한 번의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식량을 마련해 두고 사라진다. 

밤이 지나고 해가 떠도 남자가 보이지 않자 그녀가 누운 채로 나에게 말을 건다.


“그이는 떠난 건가요?”
- 그렇다.


“곧 겨울인데 어디로 갔을까요. 잠잘 데는 있어야 할 텐데.”
- 네 몸이나 걱정하렴. 그는 널 버리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 마세요. 돌아올 거랍니다” 그녀는 콜록거린다.
- 너는 참 이상하구나. 왜 그를 포기하지 않느냐.


“그 사람을 사랑했으니까요. 

전 눈이 멀었고 사랑에도 눈이 멀었답니다. 

죽음만이 우릴 갈라 놓을 수 있을 거에요.”


말은 그렇게 해도 눈물과 절망, 그리고 추위가 그녀의 숨을 거의 꺼지게 한다. 

나는 덩굴을 여럿 뽑아 통나무의 틈새를 메워 샛바람이 그녀의 폐 속까지 들어가는 걸 막는다. 

그녀가 다시 돌아다닐 때를 기다리며 숲의 길이 바뀌지 않도록 한다.
 
여자는 겨울을 버틴다. 

남자가 찌른 두 번의 상처와 기침이 지나가자, 

눈에 힘이 돌아오고 다시 나의 숲에 그녀의 손길이 닿는다.


“여신님. 부탁이 있습니다.”
- 왜 그러느냐.


“제가 다 나았습니다. ”
-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렇게 아프면 버티지 못할 거다.


“그이가 남겨둔 식량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꼭 그것 때문 만은 아니지. 나는 생각한 걸 말하지 않는다.


- 부탁이란건 뭐냐.
“제가 다 나았다고… 그이에게 전해주세요.”


- 나는 확실하게 전달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시도해 보겠노라.
“감사합니다. 여신님.”


나는 수없이 퍼지는 벌레와 계절마다 숲을 항해하는 새들에게 말해볼까 했지만 

남자는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에르메스. 또 다른 신. 

혹은 신들의 전령. 

그를 불러 부탁한다. 

그는 바람처럼 뛰어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남자가 숲으로 돌아온다. 

신의 전령이 일을 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의 안색은 까맣다. 

그가 숨을 내쉴 때 마다 사납고 더러운 것 들이 숲의 바닥에 가라앉는다. 


남자는 숲의 경계에서 장님 여인에게 안겨 통나무 집에 들어가 누운 후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여자는 그의 옆에서 하염없이 아픈 얼굴만 바라본다. 

남자의 숨이 잠길 때 마다 여자 역시 숨을 쉬지 못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쯤 남자의 숨도 떨어진다. 

여자의 고개도 떨어진다. 

여자는 하룻밤 내내 남자의 시신 곁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얼굴을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통나무 집을 살짝 흔들어 보기도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말을 걸어 본다.


- 얘야. 그는 죽었다.


여자는 잠시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마침내 여자도 그의 옆으로 쓰러진다. 

넘어지면서 붙잡고 있던 손을 놓친다.


나는 그들의 손을 겹치고 여자의 손을 남자 손가락 마디마디에 낀다.


처음 그들이 잡았던 모양대로. 

죽기 전까지 여자가 잡았던 모양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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