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뭔지 아냐?”
“뱀!”
“뱀은 어디에나 있구나.”
꼬마가 웃음을 짓자 그는 안심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땅에 던지라 하시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 까마귀의 고해 ]
2부 4장 감옥
그는 감옥을 둘러본다.
흙을 파서 만든 조악한 공간이었지만 철컥- 하고 닫힌 문은 튼튼해 보인다.
거친 끈에 쓸린 손목을 비비적거리며 흐린 빛이 들어오는 조그만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창살은 없지만 몸을 빼내기에는 너무 좁다.
한 손을 밀어 넣어 빗방울을 모아 마신다.
갈증이 해결되니 허기가 진다.
오는 길에 이 부락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허기진 얼굴이었다.
아이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지만 젊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
그는 혼잣말처럼 낮게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마을에 다다를 즈음 냄새가 떠나서 없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허전하다.
“이봐.”
그는 감옥의 문에 대고 소리를 질러 간수를 부른다.
조금 지나 발소리가 들리더니 비쩍 마른 젊은이가 삐뚜름한 얼굴을 들이댄다.
“뭐야?”
“먹을 건 없나?”
“병신 새끼. 감옥에서 뭔 먹을 걸 바래.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녀석이다.
이놈과 얘기하다가 마귀가 될 수는 없지.
그러기엔 너무 싸가지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대화 상대를 바꾸기로 한다.
“촌장을 불러.”
“웃기고 있네.”
간수 녀석의 얼굴에 문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운 게 보인다.
그는 그걸 붙잡는다.
간수는 감옥 문에서 얼굴을 떼지 못한다.
“어. 씨앙. 이거 왜 이래.”
“촌장을 불러.”
그는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젊은이는 팔로 문을 붙잡고 용을 쓰더니 두 다리로 어둥버둥댄다.
“소용 없을 거야.”
“알았어. 이거 좀 놔줘.”
그는 그림자를 풀어 준다.
젊은이가 그를 노려보더니 자리를 뜬다.
“안 데려오면 얼굴이 또 문에 붙을 거야.”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았지만 겁을 준다.
그러는 사이 비가 그쳤다.
창에서 약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손을 내밀어 그림자를 본다.
여우 모양으로 손가락을 잡고 그 그림자를 더 여우처럼 만져 다듬는다.
독수리 모양으로 두 손을 겹치고 그림자를 흔들어 실제와 같은 날갯짓을 만든다.
그에겐 시간을 보내는 데, 배고픔을 잊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몇 분인가를 그러고 있는데 가늘고 조그만 두 다리가 보인다.
어린애다.
다 떨어진 가죽신 같은 걸 신고 있어서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와 있다.
그림자를 멈춘다.
아이가 말한다.
“더 보여주세요.”
“이게 재밌냐?”
“네, 너무 신기해요. 난 그렇게 안 되던데?”
“아저씨는 많이 연습해서 되는 거란다.”
주여, 용서하소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랑 토끼랑 여우랑 또 뭐 있어요?”
“더 많지. 조금만 옆으로 비켜볼래?”
꼬마가 비켜서자 그 자리에 두 팔을 뻗어 기린을 만든다.
그가 봐도 걸작이다.
“와. 그건 무슨 동물이에요?”
“기린이야. 본 적 없어?”
“네, 목이 이렇게 길어요?”
“넌 어디서 왔냐?”
“우리 집요.”
“거기가 어딘데.”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이가 울상을 짓는다.
그는 급하게 기린의 다리를 다다다다 움직인다.
팔을 풀었다가 다시 꼬아 뱀을 만든다.
“이건 뭔지 아냐?”
“뱀!”
“뱀은 어디에나 있구나.”
꼬마가 웃음을 짓자 그는 안심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땅에 던지라 하시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감옥 바깥쪽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젊은 간수 녀석과 촌장이 들어선다.
그림자를 구경하던 아이에게 뭐라 소리쳐서 쫓아낸다.
“성경 말씀이구만. 전직 목사신가?”
“서점 주인이었지.”
“저 녀석 말로는 이상한 마법을 쓴다던데? 난 권투 코치였소. 여기서는 촌장이고.”
“먹을 게 필요해.”
“먹을 건 없어.”
“마을 사람들은 뭔가를 먹고 있을 거 아니오.”
“그건 노동과 교환한 대가야. 넌 노동을 하지 않았잖아.”
“필요하다면 노동인가 그걸 하지. 여기서 나가겠소.”
“아직 경찰 패거리인지 확인이 안 됐어.”
“그럼 이대로 굶겨 죽일 셈이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얘기해 보시오.”
그는 뜸을 들여서 말하는 촌장의 방식이 짜증난다.
처음부터 얘기할 것이지.
“성주가 투기장을 여는데 이기면 먹을 걸 꽤 준다네.”
촌장의 눈이 기대심으로 커져 있다.
“저놈 말대로 얼굴을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때리기 좋겠지.”
그가 어쩔까 하는데 촌장이 덧붙인다.
“특별히 5:5로 해주겠네.”
“무엇을?”
“식량을 받으면 나눠야 하지 않겠나.”
그는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한다.
“뭐, 자네가 싸우는 거니 그럼 4:6까지는 양보하지.”
“당신이 하는 게 뭐가 있는데?”
“자네는 길을 모르잖나. 투기장까지 가야 싸움이라도 할 거 아닌가.”
“…언제인데?”
“내일. 어차피 배급을 받아야 하니까 내가 직접 가서 세컨도 봐 주지. 한 달 전에도 투기장에 나간 친구가 있는데 그때도 내가 도움이 좀 됐다네.”
“알았어. 배가 고파서는 싸울 수가 없는데.”
“먹을 걸 좀 주지.”
촌장은 젊은이를 시켜 빵을 한 조각 가져오게 한다.
표면에 먼지가 잔뜩 앉아있고 만져보니 돌덩어리 마냥 딱딱하다.
그것조차도 젊은이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의 손에 아쉽게 놓는다.
“내일 아침에 출발이야. 푹 자 두게.”
촌장의 얼굴이 사라지고 바깥쪽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는 간수에게 묻는다.
“한 달 전에 투기장에 나갔던 친구는 어떻게 됐나?”
“맞아 죽었어요.”
대답하고는 섬뜩했는지 한마디 덧붙인다.
“아저씨는 이길 거예요. 마법사니까.”
“난 마법사가 아냐.”
간수 녀석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감옥 문은 열어줘도 되지 않나? 나 하나 지키려고 힘들게 거기 있지 말고. 배도 고플 텐데.”
“감옥에 아저씨만 있는 게 아니에요.”
“또 누가 있는데?”
간수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번뜩이며 입을 헤 벌린다.
배가 고파 저러나 싶어서 딱딱한 빵을 몸 뒤로 감춘다.
옆구리에 눌려도 형체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씹어 먹을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빵이다.
감옥의 제일 끝쪽 방 앞에서 서성이던 간수 놈은 밤이 다 되어서야 사라졌다.
그는 빵을 조금 베어 문다.
이빨이 겨우 들어간다.
삼 일을 굶었으니 위가 잘 작동하지 않을 게 확실하다.
어차피 씹기가 힘들어서 녹여서 먹어야 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빵 반쪽을 입안에서 굴린다.
초저녁에 비가 쏟아졌는데도 바닥에서 조금씩 열기가 올라온다.
덕분에 차가운 습기에 감기 걸릴 걱정은 없다.
여자 냄새가 난다.
익숙해진 향수 냄새도 아주 약하지만 가까워진다.
문 앞에 케이가 서 있다.
그가 얻은 것보다 훨씬 조그만 빵을 들고 있다.
녹슨 열쇠를 꽂아 넣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제법이네. 빵이랑 열쇠를 구해오다니.”
“그러는 오빠도 빵을 구했네? 감옥에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난 마을을 온종일 헤매고 다니면서 겨우 이거 찾았는데잉…”
“내일 할 일과 바꾼 거야. 이거 먹어.”
“오빠 먹어요.”
“사장님이라 부르면 안 되겠냐? 난 먹었어.”
“너무 배고팠어요. 사장님은 너무 멀게 느껴져서 싫은데.”
그녀는 웃는 얼굴로 허겁지겁 빵을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장 노릇 할 가게도 없잖아?”
그게 웃긴지 헤실헤실 웃는다.
어디서 훔쳤는지 가죽으로 된 물통에서 물까지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그을린 얼굴 쪽을 쓰다듬다가 흠칫하고 손을 뺀다.
케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성희롱 얘기도 하지 않는다.
구속할 법원도 없고 게다가 이미 감옥에 갇힌 상태니 뭐라 해도 문제는 없겠다 싶다.
“그것도 마저 먹어라.”
그는 케이가 구해 온 조그만 빵 조각을 가리킨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더니 입에 쏙 넣고 우물우물거린다.
“에일은 무은일을 아는데오?”
“입에 있는 건 다 넘기고 말하지 그러니.”
그녀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우물거렸다.
그래서 미리 대답한다.
“싸우는 거야.”
“우와. 왕입니다요.”
“뭐라고?”
“검은 말이 그랬잖아요. 오빠 그림자인가 뭔가의 왕이라고. 나도 내일 같이 가요.”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 넌 마을 어딘가 사람 없는 곳에 숨어 있어.”
케이는 몇 번 더 칭얼거리며 따라간다고 떼를 썼지만 너무 위험한 일이라 그럴 수 없다고 설득한다.
그녀는 은신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그가 항상 그녀를 보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여긴 젊은 여자가 발견되기에는 최악의 세상이니까.
“어제 그 침대로 돌아가서 자거라.”
“같이 가요.”
“난 이래 봬도 아직 죄수야.”
“이 세상은 위험하다면서요오우.”
목소리를 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음험하게 흉내 낸다.
“여기서 잘래요.”
털썩 눕더니 금방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다.
금속성 비의 냄새와 옅은 향수의 냄새와 여자의 냄새가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이 혼란하면 악마가 머리에서 나올지니”
“시끌우어요. 얼른 자미나 자요.”
졸린 목소리로 케이가 중얼거린다.
▶ [세계관] 까마귀의 고해 2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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