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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Herowarz

[최강의군단] 인간의 증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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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를 피해 뒤로 접근한다. 

허리를 감싸 안고 뒤집어 땅에 찍는다. 

땅바닥은 언제나 그녀 편이다. 

중력의 가속을 받은 거대한 땅덩어리는 어떤 다리나 주먹보다 강하다.





[ 인간의 증명 ]



1장

 
가로등은 10미터에 하나씩. 

기둥에 튀어나온 장식은 1.8미터 정도 되는 남자의 머리에 정확하게 닿는다. 

그쪽으로 밀어 박으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바닥 타일의 크기는 0.3미터, 

두 번의 벽돌색 후에 한번의 회색이 반복된다. 

깨진 조각은 땅에 나뒹굴었을 때 주워 던지기 적당하다. 


방금 지나간 노인은 마른 체구에 비해 점퍼가 불룩 튀어나와 있다. 

총일까? 

구겨진 신문에 싸인 양주병이나 훔친 빵일 가능성이 높다. 


남자는 양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꽂고 땅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지만 머리는 쉬지 않고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지금 이 장소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뭐가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누굴 무엇으로 공격할 수 있을지, 

얼마나 다칠지,
그러다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오늘도 잠이 오지 않을 거 같다. 

사람을 쏴야 했던 날이다. 

임무 중에 목을 다친 건 심각하지 않지만 일이 점점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다. 


그는 바의 문을 딸랑거리며 열고 들어가 안쪽 구석 자리 의자에 몸을 싣는다. 

바텐더가 술병을 딱 놓자 마자, 

잔을 휘릭 두 손가락으로 잡아 돌려 내린 후 술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채운다. 

수백 번은 해 본 손놀림이다. 


알싸한 알코올의 향기가 마시기도 전에 그의 뇌를 마비시킨다. 

일정한 간격으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처음 느꼈던 조니워커의 향기와 맛은 점점 무색무취의 물과 같아지고 

그가 느끼던 죄책감도 같이 옅어진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비로소 실체화되어 가고 스스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이제 살아있다는 걸 실감한다. 

위스키만이 그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길쭉한 술병이 조금씩 비어간다.

  
같은 시각, 두 블록 떨어진 번화가에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움직이고 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긴 해도 한밤중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품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길 한복판을 차지하며 걸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피한다. 

한 녀석은 손에서 나이프를 째각 거리며 흔들고 있어서 누가 봐도 위협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30미터 뒤에 그들을 주시하는 여자가 있다. 

다들 그들을 보면 눈을 피하고 다시 쳐다보려 하지 않는데, 

이 여자의 눈은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게 명백하다. 


사내들이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잽싸게 눈을 돌리고 주위의 번쩍번쩍하는 간판을 둘러본다. 

짧은 청치마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어 금요일 밤에 클럽을 찾는 여느 여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워커 대신 힐을 신었다면 더 어울렸겠지만 그걸로는 빠르게 움직이기가 어렵다. 


사내들은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CLUB QUESTION 앞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 몇 마디 통화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가죽 재킷의 여자도 클럽에 놀러 들어가는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벽에서 나온 뿌연 조명이 여자의 하얀 얼굴을 푸르게 비춘다. 


홀에서 터져 나오던 커다란 음악이 한순간 뚝 멈추고 총성이 터진다.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노출이 심한 여자아이들이 복도로 뛰어나온다. 


가죽 재킷의 여자는 미리 봐 둔 배전반으로 총총 들어가서 건물의 전원을 내린다. 

거리에서 싸우면서 터득한 총을 무력화 시키는 기술. 

어둠 속이라면 그녀는 져 본 적이 없다. 

눈을 감은 채 연습했던 대로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오른다.

 
홀에 들어서면서 여자는 눈을 번쩍 뜬다. 

어둠에 익숙해진 홍채로 아까 사내들의 무기와 위치를 파악한다. 

그들은 당황해서 불 켜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다. 


여자는 몸을 낮추고 뱀처럼 유연하게 다가간다.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의 허리를 붙잡으려 한다. 

그대로 뒤로 넘기면 기절시키기 좋겠지만 자신도 땅을 잠깐 굴러야 해서 마음을 바꿔 먹는다. 


상대가 휘두르는 힘을 이용해서 팔목을 잡고 큰 원을 그려 땅바닥에 내려친다. 

조직원들은 싸움 중에 가만히 기다리는 녀석이 없다. 

흥분해서 달려들면 다들 겁을 먹는 것에 익숙하다.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에 어깨가 찍혔다. 

꽈직 하는 소리. 

아마 부러졌겠지. 

왼쪽 손은 던질 때 꺾었고 오른쪽 어깨가 나갔으니 총을 못 쓴다.
하나 끝.


즉시 다음 녀석에게로 속도를 높여 달린다. 

다리 사이를 붙잡고 같이 뛰어 두 사람의 체중 분으로 내려찍는다. 

낙법을 칠 수 없는 상태로 머리부터 떨어지니 이건 백 퍼센트 기절이다. 


마지막 녀석은 총을 꺼내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겨누고 있다. 

총구를 피해 뒤로 접근한다. 

허리를 감싸 안고 뒤집어 땅에 찍는다. 

땅바닥은 언제나 그녀 편이다. 

중력의 가속을 받은 거대한 땅덩어리는 어떤 다리나 주먹보다 강하다. 


일을 끝내는 데 칠 분. 

발목을 구둣발에 긁힌 거 말고는 별다른 부상도 없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꽃 한 송이를 꺼내 기절한 녀석 배에 올려놓는다. 

붙어있는 메모지에는 ‘헤라’ 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아직도 괴성으로 클럽 전체가 시끌벅적하고 사람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빠져나가고 있다. 

그녀도 그 틈에 섞여 비비적대며 클럽을 빠져나온다.
 
원룸으로 들어서서 재킷을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들어간다. 

한바탕 싸우고 나면 바로 땀을 씻어내는 습관이 있다. 

타월로 몸을 닦고 시간을 확인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잠을 잘 시간이 부족해서 안 자고 버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뒷목을 꾹꾹 누르며 졸음을 쫓는다. 

그러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 버린다.
 
누군가 현관을 탕 탕 두드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은 환하다. 

문을 열었다. 


“마리. 마리! 학생회장이 안 오면 어떡해. 집회 시작했을 텐데.” 


학생 하나가 헐떡이며 채근한다. 


“잠시만. 옷 갈아입고 금방 나갈게.” 


마리는 평소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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