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렸나… 죽어버렸나…
염라의 말이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자마자,
온몸에서 감정의 물줄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녀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던 환술도 그 힘에 눌려버렸다.
[ 이자나미 이야기 ]
10장 | 만남
“꼬마야.”
무거운 손이 이자나미의 어깨를 눌렀다.
“너, 참 그 아이와 비슷하게 생겼구나.”
“아저씨. 오빠 알아? 어딨는데?”
“으흐흐흐… 으하하하하…”
누더기 옷. 얼굴을 가릴 정도로 푹 눌러쓴 갓.
근데 엄청난 덩치네… 정신은… 나갔나?
“알지. 알다마다.
참 이상하게도 너희 그 오빠라는 미치광이는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단 말이지.”
“무슨?”
“아니야. 아니다. 이제 다 끝났거든.
모든 것을 잃고 이렇게 도망다니는 생활도 이제 지쳤어.”
“그럼 쉬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나를 해꼬지 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억울했겠어. 안 그래?”
“인생. 원래 그런거야.”
“흐흐. 꼬마가 인생을 좀 아나?
그래서 말인데, 내가 당한 일에도 논리를 좀 부여하자, 이 말이야.”
“점점 재미 없어지고 있어. 나 갈래.”
“잠깐잠깐.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널 죽여버리면, 좀 말이 되는거야. 그렇지?”
덩치의 남자는 마지막 문장을 이야기하면서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그 칼은 휘둘러지지 못하고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드디어 잡았구나. 하데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야.
안 그러냐 이자나기?”
이자나기?
이자나미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있었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거의 걸치지도 않은 더러운 넝마.
감은 눈.
더러운 가슴팍에 몇 번이나 뒤집어 쓴 것 같은 피칠갑.
저게 사람이기나 할까.
악귀같아.
엄마가 말 안듣는다고 겁줄 때마다 이야기해주던.
“야.”
이자나기는 반응이 없었다.
눈앞에 소녀를 보고 잠시 의아해 하던 염라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랬구나. 그랬어.
분명 빠져나올수 없는 곳에다가 가두어 두었다고 했는데.”
염라는 이자나기를 향해 말했다.
“자, 이자나기. 저 녀석도 하데스의 남은 수하란다.
마저 끝내버리려무나.”
이자나기는 눈을 떴다. 온통 시뻘건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는 양손에 칼을 쥐더니 그대로 이자나미에게 달려들었다.
“야, 정신차려.”
이자나기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이자나미는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너, 세상을 구하겠다더니, 결국 이거야?”
가로로 휘두른 이자나기의 칼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자,
이자나미의 앞머리가 잘려 하늘에 흩날렸다.
그러나 이자나미는 이어서 떨어지는 번개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걸 본 이자나기는 양손에 칼을 쥐고 높이 솟구쳤다.
“손!”
챙.
높은 곳으로 부터 깊숙히 꽂힌 칼은 이자나미의 목덜미를 스쳐 비껴나있었다.
“손… 너보다 내 손이 먼저 보였댔잖아……”
이자나기는 칼을 내려 꽂은 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혼란스러워 했다.
염라는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변에 서있는 저승사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순간 사라진 저승사자들의 그림자가 이자나미의 뒤에서 올라오더니,
어느새 나타난 저승사자들의 낫이 일제히 휘둘러졌다.
그러나, 낫은 이자나미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며 바보같이 웃고 있는 이자나기였다.
“살아있었네… 헤헤… 다행이다…”
그의 등에는 저승사자의 낫들이 깊숙히 박혀있었다.
그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신선한 붉은 피가 더러운 피칠갑 위에 새로운 덧칠을 하고 있었다.
그의 미소 띈 입술을 따라 흘러내리는 피는 웃음을 더 선명하게 그렸다.
“야…… 오빠… 일어나…”
“후, 죽어버렸나. 하지만 딱 알맞게 죽어주었군.
이제 필요없으니까 말이야.”
이자나미는 난생 처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터질것 같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죽어버렸나… 죽어버렸나…
염라의 말이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있어서 그 힘을 제대로 발현하지는 못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자마자, 온몸에서 감정의 물줄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녀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던 환술도 그 힘에 눌려버렸다.
“너… 너는…?”
아까의 작은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커다란 낫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녀 뒤에 서있던 저승사자 여럿이 동시에 깨끗하게 잘려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무엇들 하고 있느냐. 저 년을…”
염라의 입은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반으로 갈라졌다.
슬금슬금 도망치려던 저승사자들 앞에 거대한 낫이 꽂히며 가로막았다.
“도망가지 못한다.”
하데스와 염라. 그리고 저승사자들이 한날 한시에 몰살당한 그 날,
저승은 해방되었다.
드디어 저승에도 신이 강림하셨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전설을 만들어내기 바빴다.
황천진대신.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저승의 신을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저승의 신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육중한 낫을 휘둘러 무자비하게 적을 도륙하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 주변에서는 붉은 빛깔 작은 나비들이 흩날렸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베인 자가 흩뿌린 핏물이었는지
그녀의 눈에서 흩어진 눈물이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세계관] 이자나미 이야기 (1) | 전쟁 속의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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