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말없이 담배를 비벼 끄고 붕대를 돌돌 말았다.
"내가 열 번 넘게 치료한 놈은 없어. 왠지 알지?"
말 안 해도 알아요. 아줌마.
다행히 더 이상 잔소리는 없었다.
[ 인간의 증명 ]
6장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의사는 조직에서 고용한 아줌마였는데 병원에서 약을 빼돌리다 감방에서 좀 살았다 했다.
애가 다섯인데 첫째는 학교에서 사고치고 셋째가 아프고 넷째는 놀이터에서 없어져서 찾아다녔고 뭐 그런 변명들을 하면서 오후 늦게서야 출근했다.
환자는 총상을 입고 아프건 말건, 기다리면서 불만을 터트릴 간호사조차 한 명 없었다.
의사는 담배를 하나 물더니 대뜸 임시로 감아둔 붕대를 풀고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상처가 불타는 것같이 아팠다.
의사 자격증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으아 마취도 안 합니까?"
목소리가 끄윽거리면서 나온다.
"시끄러. 니들한테 마취약도 아깝거든."
담배연기를 훅 내뿜는다.
"진료 중에 담배는 또 뭡니까?"
"꼬우면 너도 피워. 스친 거 가지고 엄살은…
그건 그렇고 요즘 자주 오는구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한다.
"그렇게 술을 마셔대다간 니 애비처럼 될 거다."
"술 마셔서 총 맞은 게 아니에요. 경찰이 좀…"
의사는 말없이 담배를 비벼 끄고 붕대를 돌돌 말았다.
"내가 열 번 넘게 치료한 놈은 없어. 왠지 알지?"
말 안 해도 알아요. 아줌마.
다행히 더 이상 잔소리는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서 냉동 만두를 몇 개 샀다.
바는 생각도 못한 채 어느새 지나쳤다.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다.
집에서 만두를 돌려 먹으며 그 여자애를 생각했다.
그녀의 미소를 떠올렸다.
어깨는 욱신거리고 손은 가끔 경련이 오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술이 머리 속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여자애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봤지만 아무런 연락은 없었다.
이런 임무는 질색이다.
마냥 기다려야 한다니.
어제 일로 수배령이 내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도 총을 쏴 댔으니까.
그 경찰. 최소한 정직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TV를 틀어 이리저리 채널 사이를 돌아다녀 봤다.
주식 얘기, 날씨 얘기,
보니라는 아이돌 가수가 예능 프로에 나와 성대모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요즘 여고생은 못하는 게 없어.
그러다 맥주 광고가 나오면 황급히 채널을 넘겼다.
언젠가부터 채널이 더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술 없이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