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이브라힘 이야기 (2)

반응형





"새가 아니라 익룡입니다. 

정확하게는 테라노돈이죠."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1년 전 나스카의 그림들 사이에 축구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지우느라 애를 먹었죠."


"이 건은 사실 자유의 여신상 사건과도 비슷합니다. 

횃불을 아이스크림으로 바꿔 놓은 일요."






[ 나를 이브라힘이라 불러 주시오.]


제 2장


2011년 봄_ 뉴욕

샘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로버트 인더스트리 빌딩으로 걸어 들어갔다.

"왔니? 저기서 잠깐 기다려. 10분쯤 걸릴 거래." 


최고층 입구에서 금발의 여비서가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경험상 10분은 보통 한 시간이 넘어간다는 얘기였다.

"와 소파가 멋지네요. 피피!"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새 소파가 그를 맞이했다.
뒤판에 비닐도 채 벗기지 않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걸 뜯으려 했다.

"아, 조심. 아직 커버를 벗기면 안 돼. 삼천 달러나 하는 거야." 


마지막 말은 누가 들을까 싶어 나직하게 말했다.

'내 월급보다도 비싸잖아.'

그는 잡지를 뒤적여 보려다 그만두고 소파에서 일어나 커다란 회의실로 들어갔다.
벽을 둘러싼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다. 

열람실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손이 닿는 대로 꺼내 보았지만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경제가 어떻고 분석이 어떻고 2011년 시장 변화가 그와 무슨 상관이랴.
벽 너머로 여자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제니의 목소리였다.
함께 돌아다닌 지 몇 년 째라 그녀의 숨소리조차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세계 제2차대전'이라는 제목의 묵직한 책을 당기고 기울였다. 

달칵 소리가 나며 책장 하나가 드르륵 열렸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원래 자리에 꽂으려 했지만 너무 빽빽해서 실패했다.
위쪽에 대충 얹어놓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조명이 약했다. 

유리 진열장 같은 사각형의 공간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과학박물관 같았다. 

각 격자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방 끝에 사람이 보였다. 
베이지 슈트에 은색에 가까운 밝은 머리를 한 여자가 고개를 숙여 여러 색깔의 결정들을 들여보고 있었다.

지금 지나치는 노란색 마노는 고든의 것이다. 

고든은 서른 세 살 때 손에 닿는 모든 걸 액체로 만들 수 있게 되어 버렸다. 

너무나 위험한 능력이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인도로 떠날 결심을 했다.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먹으며, 동물처럼 입으로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그렇게 삶을 연명해나갔다.
그는 고든을 찾아냈고 제니와 함께 찾아갔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40킬로그램도 안 되어 보였다.

제니는 그의 능력을 봉인했다. 

그녀는 결정의 가문에서 태어난 봉인 능력자였다.
대상의 능력을 제거하고 그걸 결정에 밀어 넣는다. 

고든의 경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었다.
고든이 강력하게 원해서 그녀가 처음 시도한 것이긴 해도 그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까지 다 뽑아버렸다.
넌 최선을 다했어. 

-라고 로버트 경은 말했지만 그녀는 여기 올 때마다 저렇게 결정 하나하나를 보며 그 순간들을 되새기곤 했다.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아. 

어떤 능력들은 감정에 뿌리 깊게 얽혀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뇌 깊숙이 잠겨있기도 해. 

그래도 고든은 행복하리라 믿었다. 

몸도 건강하고 잘 웃는다. 

지능이 낮아도 포크와 나이프도 쓸 수 있다.

"이반을 끝낸 거야?" 


제니의 얼굴이 불에 그슬려 있다. 

이반은 불의 마녀의 자손답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성격이 고든같지 않으니 무력이 필요했을 터였다. 

그녀는 까맣게 재가 묻은 손을 뻗어 진홍색의 루비를 이반의 자리에 넣었다. 

불과 잘 어울리는 결정이다. 

웅 소리와 함께 유리가 닫힌다.


'2082번 파이어버너. 능력이 봉인되었습니다.'


기계적으로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제 기계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잘 됐어?" 

"응."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인격은 놔뒀군. 

이반은 능력만 빼앗으면 걱정할 필요는 없는 녀석이었다. 

예전처럼 나쁜 일에 가담한다 해도 잡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찰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이제 그녀는 보라색으로 점멸하는 자수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힐러리 톰슨. 

그녀 역시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힐러리는 선대와는 달리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을 원할 때 사용할 수 없었다. 

몇 번의 엉망진창의 삶을 겪은 후 힐러리는 스스로 제니를 찾아왔다. 


-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어.

제니는 주저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일을 했고 힐러리는 그 과정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능력만을 저 보라색 결정에 남기고. 

어디로 갔을지는 모르겠지만 능력이 봉인되었으니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이게 점멸하는 건 심장이 뛰고 있는 거야. 

죽지는 않았을 거야. 

제니는 결정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었다. 

제니는 봉인 대상에게 늘 지나친 연민의 마음을 가졌다.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구둣발소리가 방까지 울렸다.


"둘 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로버트 경이 말했다. 

로버트 경은 항상 저런 말투다. 

일이 잘 끝나면 가끔 칭찬하기도 하지만 잘했어, 고생했어- 정도로 그쳤다.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건 알까?
그는 로버트 경이 이끄는 이지스를 위해 능력자를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탐지견 같은 거다. 

로버트 경이 냄새 맡아봐- 킁킁- 어디 있어- 뛰어 하면 그의 능력으로 냄새를 찾아내는 일이다.
사실 후각으로 찾는 건 아니지만 그의 육감 같은 게 방향과 거리를 알려줬다. 

그 후에는 제니가 처리한다.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야겠어, 내가 소파보다는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해 봐, 이고르." 


로버트 경이 뒤따라 들어온 꺽다리 러시아인에게 말을 시켰다.
이고르는 그의 회계사였다. 

월급이 많을 것 같았다. 

그의 쥐꼬리 같은 월급과 사진찍는 아르바이트 수익으로는 MJ의 공연 의상 맞추기도 벅차다. 

이고르는 머리가 좋아서 계산이 능했다. 

그래도 그는 마음에 들었다.
로버트 경이 가끔 벌이려 하는 말도 안 되는 작업을 냉정하게 자르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고르가 아니었으면 샘과 제니는 아프리카의 오지나 체첸 같은 위험한 곳에서 몇 달씩 뒹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황을 너무 낙관하시는 것 같습니다. 로오오버트으." 


이고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로버트 경은 이고르를 보고 너무 부정적이라 타이르겠지. 

이고르는 러시아 억양이 강한데다 영어를 영국에서 배워서 '오' 발음할 때마다 아주 길게 발음을 끌었다. 

그래서 항상 그 발음을 빨리 마무리해 주고 싶은 욕망을 자극했다. 

그레고오오오리, 독토오오오르에게 보내야겠어. 

이런 식이었다.

"그냥 애들 장난이라면서 우리가 지금 그런 장난에도 대응해 줘야 하나?" 


로버트 경이 물었다.


"10년간 4건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만약 그게 최근 일년 내에 다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놈의 가정. 그렇게 가정만 해서 무슨 일을 시작하겠나."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도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말싸움을 듣다가 제니의 눈을 보았다. 

그녀도 모른다. 

이쯤에서 끼어들 타이밍인 거 같았다.


"무슨 일인데요, 로버트 경?"
"3년 전 네스 호에서 새 하나가 날아오른 거 가지고 이러는 거야." 


로버트 경이 삐죽거렸다.


"그런 거 그냥 루머 아녔어요?"


"사실입니다. 그 전 것들은 루머였을지는 몰라도요. 

그리고 새가 아니라 익룡입니다. 

정확하게는 테라노돈이죠. 

사체를 우리 이지스에서 회수했습니다."


"소환 능력자인가요?" 


제니가 처음 말을 열었다.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1년 전 나스카의 그림들 사이에 축구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지우느라 애를 먹었죠."
"그봐. 그러니까 그냥 장난 아니야." 


로버트 경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나스카에는 그 지역의 그림들을 관리하는 비행기가 있습니다. 

밤에 누군가 작업하고 있으면 금방 알아차립니다. 

게다가 땅을 파낸 깊이나 토층 분석 결과도 아주 오래전 만들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일반인이 한 일이 아닙니다. 

이 건은 사실 자유의 여신상 사건과도 비슷합니다. 

횃불을 아이스크림으로 바꿔 놓은 일요."
"아 그거 웃겼어요." 


그가 끼어들었다.


"정말 웃기는 소리군." 


로버트 경이 말했다.


"심각한 건 없어 보이는데요?" 


제니가 다시 물었다.


"그래, 내 얘기가 그 얘기야. 

피해 본 사람은 없잖아." 


이고르는 잘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잠시 생각한 후 말을 떼었다.


"능력을 한 번 추측해 보세요. 

아주 짧은 시간에 거대한 규모의 그림을 땅에 파 넣거나, 

피사의 사탑을 더 기울이거나, 

거상의 일부를 교체했습니다. 

공룡 같은 걸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각 시점의 입국자 리스트를 전부 대조했는데 공통된 인물은 없었습니다. 

즉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뭔가 상상하는 걸 아주 자유롭게 실체화할 수 있는 능력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이고르는 극적인 효과를 돕기 위해 아주 잠깐 말을 멈췄다.


"이건 기존에 알려진 능력이 아닙니다. 

우린 능력을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버트 경은 반론하지 않았다. 

로버트 경은 능력자를 구분하고 관리하는 일에 집착하는 편이다. 

이고르는 제대로 설득의 포인트를 짚었다.


"우리는 왜 불렀어요, 로버트 경?" 


그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이젠 나도 왜 너희가 필요한지 알겠군. 

샘, 넌 이놈을 찾아. 

제니는 필요하면 발견 즉시 그의 능력을 봉인해라. 

한 달 주겠다."
"무슨 능력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찾으라는 거에요."
"그렇게 아무나 봉인할 수는…" 


둘다 벌떼같이 일어나서 말했다.


"아아. 그럼 반년 줄게. 

최대한 빨리 찾아내 봐. 

능력자 서약 잊었나?"

능력자는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그들이 수백 번은 되뇐 말이었다. 

이고르는 둘의 얼굴을 멀뚱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중요한 일이야. 잘 부타아아악 하네." 

"말이 쉬이이이입지." 


그가 중얼거렸다. 

제니가 웃었다.
로버트 경도 큭 하니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고르를 쳐다봤다. 

이고르는 표정이 없었다. 

농담을 이해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보다 올해 맨유가 우승하겠나? 

FBI 부장이 꼬셔서 돈도 걸었는데 말야."
"바르샤를 넘지는 못할 겁니다." 


이고르의 대답이 돌아왔다. 

축구광답게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이런 제길. 올해도 돈 날리겠군." 

"돈도 많으면서 뭐가 걱정이에요." 


샘은 말했다.
로버트 경이 건 액수가 그의 월급의 몇 배쯤 될지 궁금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