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봤소!
그들의 어머니와 딸, 할아버지와 손자들…
망연자실한 얼굴들 뿐이었다오.
[ 나를 이브라힘이라 불러 주시오. ]
제 3장
- 2016년 시리아 라디키야
새해를 맞는 집은 북적거리고 분주했다.
아직 집안 여기저기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는데다 번쩍이는 전구 장식을 치우지 않아 정신이 없었다.
이브라힘은 자신이 좋아하는 헬루와를 지겨울 정도로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브라힘의 부모는 따로 그를 위한 생일 잔치를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명절에 모인 일가친척들로부터 용돈과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신이 났다.
케이크나 촛불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 건 아난같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니까.
선물들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올해는 성인식까지 겹쳐서 선물의 질이 높아졌다.
이브라힘은 아버지가 선물로 준 보쉬 공구세트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번쩍거리는 금속의 차갑고 묵직한 느낌이 좋았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앞날이 창창한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자전거는 지금은 그저 그랬다.
밖에 나가서 타기에는 지금 날씨가 너무 춥다.
여름에 사주지 그랬소 라고 아버지가 묻자 어머니는 이럴 때 미리 사주는 거에요 여름에 사주려면 돈이 또 들잖아요 라며 아메리칸 이글을 안겨줬다.
아난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정성이 가득해 보이는 편지를 써줬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몇 번 읽어 줘야지 하며 호주머니에 넣어 뒀다.
삼촌이 준 선물이 특히 마음에 들어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커다란 방주 모형이었다.
그냥 방주 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의 모형까지도 한 쌍씩 담겨 있어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인도코끼리의 크기가 가장 컸고 호랑이와 악어, 원숭이, 종류를 모르는 새들도 다 있었다.
선두에 선 사람이 아마 노아일 것이다.
신이 파괴한 세계를 재건하여 지금의 문명을 건설한 인물.
그는 오후 내내 그 방주를 가지고 놀았다.
방주 안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동물들이 계속 나왔다.
선물을 손에서 놓고 사촌들과 저택을 뛰어다니며 명절을 만끽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지쳐 곯아떨어졌다.
나는 그날 꿈을 꾸었소!
세상이 물에 잠기는 꿈이었지.
검은 바닷물이 미국 서부를 뒤덮었소.
일본이 있던 자리는 가장 먼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소.
새벽하늘은 어두운 구름으로 가득 찼고 천둥이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오.
나는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봤소!
그들의 어머니와 딸, 할아버지와 손자들…
망연자실한 얼굴들 뿐이었다오.
높은 파도가 안데스를 넘어오는 걸 지켜보는 고지대의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손에 잡힐 듯 했소.
티벳의 승려들까지도 물속에서 마지막 한줌의 산소를 들이마시는 걸 보았소.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오.
너무 괴로운 꿈이었다오.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소!
나는 방주도 꿈꿨소.
시드니와 서해, 도버 해협과 뉴욕, 요하네스버그와 지브롤터 해협에도 띄웠지.
블라디보스톡과 산티아고에도 하나씩 보냈던 것 같아.
지중해에는 몇 개인가를 만들었소.
그래서 백인들이 많이 살아남은 거요!
나를 인종 차별주의자라 비난하지 마시오.
그 나이의 남자아이가 알 수 있는 세계는 많지 않다오.
난 세계의 배꼽, 쿠스코에 내려앉았소.
지구를 뒤덮은 바다 위로 그곳에 새로운 작은 땅을 만들고 깼다오.
꿈을 끝까지 꾼 게 다행이오.
날 용서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