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현실화하는 능력자야."
"그래서… 어제는 무슨 꿈을 꿨니?"
"세계가 다 가라앉는 꿈요."
"무슨 꿈이라고?"
"대홍수요. 노아의 방주 이야기 같은 거요."
[ 나를 이브라힘이라 불러 주시오. ]
제 4장
그는 눈을 떴다.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너무 생생한 꿈이어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방이 아니었다.
꿈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 장소였다.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어리둥절해 있는데 커다란 파열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위쪽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헬기가 큰 소리를 내며 앞으로 뒤로 흔들거리며 땅에 내려앉고 있었다.
먼지가 흩날려 안 그래도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더 감기게 만들었다.
잠시 후,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를 한 남자가 다가와 일으켰다.
"이제야 찾았네."
멍하니 그를 보았다.
"능력을 제대로 쓰지 않아서 6년이나 걸렸어. 아니 5년인가."
사파리 재킷을 걸친 백인 남자였다.
"밤새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나 정도는 아니라도 웬만큼 탐지하는 애들이 난리가 났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뒤에 선 여자를 보았다.
햇빛에 바래서인지 옅은 은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밤에 뭘 했니?"
그녀가 물었다.
"밤에는 잤는데요."
"잤다고? 그런 거 말고… 가만있자, 네가 나스카에 낙서하고 피사의 사탑을 밀었지?"
"아 축구장요? 기억나요. 그건 꿈에서 그런 건데."
둘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꿈을 현실화하는 능력자야.
이고르가 어느 정도 맞았던 거군."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어제는 무슨 꿈을 꿨니?"
그녀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눈에 공포가 어려 있었다.
"세계가 다 가라앉는 꿈요."
"무슨 꿈이라고?"
"대홍수요. 노아의 방주 이야기 같은 거요."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하루 늦었네."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통화하고는 남자가 말했다.
"그게 세상의 운명인 거지, 샘."
여자가 속삭였다.
"이미 많은 곳이 물에 잠겼다더구나.
꿈에서는 언제 다 잠기든?"
"오후 정도였던 거 같아요. 구름이 많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았네. 꿈에서 다른 건 없었니?"
"배들이 있었어요. 커다란 방주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어요."
"다행이구나. 배들이라면 몇 대를 만들었니? 어디 어디에 있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이봐 제니. 난 MJ를 데리러 가야곘어."
남자가 끼어들었다.
"조용히 해. 넌 어차피 방주에 타지 못하잖아. 서약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야. 기억해내렴. 중요한 일이야."
그는 꿈에서 방주가 떠 있던 도시들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남자가 휴대폰을 그의 입가에 댔다.
휴대폰 너머에서 떠들썩하고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그의 심장에 손을 댔다.
따뜻한 촉감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너의 능력은 목걸이에 봉인됐다.
이 목걸이를 걸어주마.
원한다면 언제라도 그걸 깨버릴 수 있다.
그럼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다시 또 꿈을 꾸어선 안 돼.
이보다 더 지독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겠지.
이 말을 기억해라 아이야.
앞으로 무수히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절대 죄책감을 가지지는 말거라.
우리가 막지 못한 거다.
만약 네가 책임을 느낀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거라.
최선을 다해서.
그 후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말이 그를 지탱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