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랑 신발.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왜 이곳까지 오신 거죠?”
“얘기가 좀 긴데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7장
잘린 머리를 어쩔까 생각하고 있는데 형사가 문을 두드렸다.
예상과는 달리 짧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문을 열어주려 일어난 내 키와 비슷했다.
힐을 신었으니 10센티 정도 더 큰 거군.
뚱뚱하거나 근육질이거나 둘 중 하나인 형사들과는 달리 적당한 체형이다.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다.
수염이 없어서인가.
동양인의 나이는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잭 부인 되십니까?”
물어보는 형사의 표정과 눈을 살폈다.
처음 봤을 때의 표정에서 이후의 기준이 맞춰진다.
초반이 중요하다.
“전 부인이에요. 지난주에 이혼했어요.”
“아 그렇군요. 전 남편은 어디 계신가요?”
“몰라요. 연락하지 않는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형사에게 어제 총을 겨눈 후 기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제 말씀드렸던 휘트먼이 살해당했습니다.”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분명 방을 나오기 전엔 살아 있었는데.
어쩌다 죽었을까.
형사가 수첩을 보며 말을 이었다.
“부인 전화번호가 통화 기록에 찍혀 있었습니다. 28일 저녁에요. 그 다음날 저녁 식당과 호텔방을 예약했던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날 같이 식사했죠. 방에도 갔어요.”
“그를…”
형사는 여러 가지 질문 중에 선택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죽였습니까?”
“눈을 찌르기는 했는데 방을 나올 때는 살아있었어요.”
그렇게 된 거로군.
왼쪽 눈의 상처는 이 여자가 만든 거였다.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심문하기엔 편한 타입이었다.
대답에 주저하는 게 없다.
반응이 일관적이고 항상 일정한 시간 후에 나온다.
하지만 그래서 어느 게 거짓말인지 알 수도 없다.
“그 다음날 저녁에는 어디 계셨습니까? 29일요.”
“집에서 자고 있었어요.”
“혼자서요?”
“네.”
대답이 너무 빨라서 심문자가 오히려 말리고 있다.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물을 좀 주시겠습니까? 아. 시원한 걸로요.”
그녀는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고 생수병을 꺼냈다.
종이컵에 물을 가득 부어 주었다.
형사는 받아서 한 모금에 쭉 들이켰다.
“이 도시는 해가 안 보여도 덥군요.”
들고 있던 파일로 부채질하며 그녀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팔에 상처가 많네요.”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멍이 여러 개였는데 진하기가 전부 달랐다.
여러 번에 걸쳐 생긴 상처다.
“남편에게 자주 맞았어요”
“아… 죄송합니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니 사과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혼한 건가요?”
“그보다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겠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한 사실이다.
형사는 이마를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땀이 배어 몸에 붙은 셔츠의 가슴께를 집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땀을 식혔다.
셔츠의 로고가 특이했다.
구두는 그녀가 본 적이 있는 거였다.
재작년 여행에서 남편이 몇 켤레 샀다가 세관에서 죄다 뺏긴 거다.
“형사님은 이곳 소속이 아니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가 움찔했다.
“옷이랑 신발.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왜 이곳까지 오신 거죠?”
“얘기가 좀 긴데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그녀도 담배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를 데리고 사무실 뒤쪽 공조실로 갔다.
사무실 안팎에서는 피지 않았다.
사장은 여자가 무신 담배질이냐아- 라고 타박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죽었잖아.
발걸음을 멈췄다.
따라오던 그가 그녀의 등 뒤에 부딪혔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그녀를 붙잡지 않으려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이어 공조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