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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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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끔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말할 때 입술의 움직임. 

손의 동작. 

모든 게 기억이 생생했다. 


그리고 그 표정.
처음 만난 날의 단 한 번의 표정. 

그게 시작이었다. 

그것도 꾸민 거였을까. 

마음이 아팠다.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11장

경관들이 시끌벅적하게 사무소를 들어 엎었다. 

증거품이라고 냉장고를 통째로 끙끙 짊어지고 갔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한 보따리 싸가지고 돌아갔다.


“멀리 가지는 마세요. 마담. 또 보고 싶어질 테니.” 


루이스가 말했다.


“전화기 항상 켜놓으셔야 합니다.” 


클락이 말하고 둘이서 또 킬킬거리며 나갔다.

백에서 약을 꺼내 삼키며 문틈으로 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구경 나와 있었다. 

전에 골목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빼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멀쩡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흩어지기를 기다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잠시 얘기하더니 어느새 다 사라졌다. 

바쁜 도시다.


소녀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전처럼 혼자서 돌멩이들을 뒤집어 가며 놀고 있었다.


“얘.” 


소녀를 손짓하면서 불렀다. 

아이는 흠칫 하고 쳐다보더니 멍한 눈으로 다시 돌을 만지작거렸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좀 이상한 아이인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어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가 돌멩이를 더 찾으려 할 때마다 근처에 있는 걸 집어서 던져주었다.
냉큼 받아서 잘도 써먹는다.

이제 사무소에서 지내는 것도 곤란해졌다. 

살인범-우 형사가 얼마든지 침입할 수도 있고.
루이스와 클락이 다시 찾아오는 것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대충 일하는 형사들이라도 다음엔 경고 정도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현금은 좀 있으니 일단 모텔에 머물면서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우 형사도 모텔에 묵고 있다고 했는데. 

어느 모텔이었더라. 


그래 나인스게이트.
그건 체인일 텐데, 주변에 멕시칸 음식점이 같이 있는 지점일 테니 찾는 건 어렵지 않겠군.


그녀는 어느새 주변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백에서 총을 꺼내 장전된 실탄을 확인했다.


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닥에 가득한 돌멩이를 쌓고 있었다.
오드리도 콧노래를 따라 부르며 리볼버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우 형사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담배를 한참 동안 찾았다.
라이터가 없어서-양복 바깥 주머니에 있었는데 그가 자주 그러듯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가스레인지로 불을 붙이다가 앞머리가 그을렸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머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텔방은 최근 잠만 자는 통에 엉망이었다.
땀에 절은 셔츠가 침대에 이불과 한데 엉켜 뒹굴고 있다.
그동안 입고 빨지도 않은 속옷이 TV 바로 아래의 장에 겹겹이 쌓여 있는 게 꼴불견이었다.


일단 빨래부터 할까 하고 집어 들었다가 술잔에 술을 따르려고 냉장고 문을 열면서 그 위에 속옷을 놓고 잊어버렸다.
담배 끝이 1~2센티로 길어질 때 마다 빨갛고 까만 재가 바닥에 떨어져 장판을 태웠다.

2년간 혼자 추적하던 범인을 찾아서 기뻐야 하는데 실제로는 엉망이었다. 

범인을 보면 한눈에 바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잔인한 연쇄 살인범.

며칠 동안 밥도 같이 먹고 얘기도 많이 했는데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 냉장고를 스쳐 지나간 횟수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그녀를 좋아했던 건가. 

여자에게 빠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것일 수 있었다.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본사 자료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했었지.
그녀가 가끔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말할 때 입술의 움직임. 

손의 동작. 

모든 게 기억이 생생했다. 


그리고 그 표정.
처음 만난 날의 단 한 번의 표정. 

그게 시작이었다. 

그것도 꾸민 거였을까. 

마음이 아팠다.
 
그는 비좁은 책상에 자료들을 늘어놓고 모든 사건을 하나씩 조립해 보기 시작했다. 

재작년의 사건부터 타당성을 맞춰 보았다.
뭔가 빼먹은 게 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까 흥신소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뭘 하고 있었더라.


담뱃갑을 집으려고 몸을 기울이는데 딸깍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정전이 아니다. 

스위치 소리가 났다. 


뭔가 움직였다. 

아무것도 움직일 게 없는 작은 모텔방이다. 

누군가 있다.


들어오자마자 총을 벨트 채로 침대에 던져 놓았다.

빌어먹을.
침대로 몸을 날리려고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나는데 머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바닥으로 후르륵 쓰러졌다.


계속되는 칼질.
전화벨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 형사는 죽어가고 있었다. 

뒤통수를 딱딱한 금속으로 맞아 움푹 패여 피가 철철 흘렀다.
자신이 흘린 피 웅덩이에 누워 보이지 않는 천장을 게슴츠레 올려다보았다. 

입에 피가 흘러들어 오는데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내내 더웠었는데, 지금은 한기가 느껴졌다. 

춥다.
그는 눈을 감았다.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집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발만 보며 걷는 레인코트를 뒤집어쓴 여자가 기운 좋게 수박을 흔들며 걷는 50대 아저씨를 스쳐 갔다.


가로등이 연달아 서 있었지만 세 개 중 하나꼴로 꺼져있거나 깜박거렸다.
도시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이런 도시 외곽까지 예산이 잘 닿지 않는다.
멕시칸 음식점 앞에서 라틴계열의 남자가 커다란 칼로 둥글게 말린 고기를 베어내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오드리는 백을 들고 성큼성큼 걸었다. 

앞을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 눈에 초점이 없다. 

양손의 손톱이 망가져 피가 맺혀 있었다.


똑같은 콧노래를 계속 흥얼거린다. 

그러다가 음식점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타코 냄새. 

우 형사. 

모텔. 


그는 뭐 하고 있을까? 

초점이 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본다. 

밤이다. 

최소 6시간이 지났다.


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잃어버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그 다음날 저녁일 수도 있다.


벽에 기대어 백 안으로 총의 실린더를 확인했다. 

실탄은 그대로지만 다 쏘고 채워 넣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벽에 기대 찌익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티셔츠가 벽에 말려 올라가면서 등에 상처가 났지만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백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양 손을 보았다. 

손이 축축했다. 

건물 너머 나인스게이트 모텔의 불빛이 보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떨어지는 머리를 받치는 양, 손을 이마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그를 죽였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또 잘랐을까. 

그녀는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걸면서 길가로 나갔다.


“네 지금 바로 부탁드려요.”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들면서 누군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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