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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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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아무것도 안 하고 5분 정도 앞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건 줄 알았는데 눈동자가 움직이질 않던데요.”


이렇게 순간순간 시간을 잃기도 하는 거구나.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기는 해요. 

남편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8장

맥은 오랜만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이번 건 총을 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 걸리지도 않아서 아직 새벽인데 벌써 퇴근이다. 


여러 명을 죽이고 나면 한 달은 술에 빠져 지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한 명 당 일주일 분량의 알코올이 필요한 거지.

어둑어둑한 지하 주차장에 지프를 대고 걸어 나오는데 부와아앙 하는 차 소리가 덮쳤다. 

뒤도 안 돌아 보고 냅다 앞으로 굴렀다.

등이 뜨끔했다. 

총이 캉 소리를 내며 저만치 날아갔다. 


지나친 차를 보니 빨간색 페라리다.
차창으로 나와 있는 가느다란 팔이 칼을 쥐고 있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회전하더니 다시 속도를 냈다.


등을 만져보니 깊숙하게 살을 파고 들어가려다 총에 걸려 멈춘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 

연속으로 운이 좋지는 않겠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전등 덮개가 떨어져 깨져 있었다. 

적당한 조각을 하나 집어 들고 차량 사이에서 나와 기다렸다.


차가 질주한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그를 바로 칠 수는 없다. 

이쯤 해서 칼을 내밀겠지. 

몸을 뒤로 해서 수평으로 던졌다.


칼이 그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다. 

유리 조각을 꼭 쥐고 팔을 들어 올렸다. 

살을 찢는 느낌이 있었다.
칼을 피하느라 높이를 잘 맞추지 못해서 깊숙이 베지는 못한 것 같았다.


페라리는 그대로 속력을 줄이지 않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몸을 있는 대로 뒤로 눕히느라 뒤통수를 땅에 박아서 어질어질했다.
당분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일도 휴가가 애매하다.
 
오드리는 병원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상담은 이걸로 두 번째다. 

의사의 유도에 따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해 보려 했다.


잘 안됐다. 

특히 6살 주변의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두통이 심해졌다. 

다음에는 잘 될 겁니다. 오호호.
의사는 예의 그 웃음을 지었다. 


약국에서 바로 물을 뽑아 알약을 삼켰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팔에 큰 상처가 나서 물컵을 들기가 어려웠다. 

자다가 이런 상처가 생겼을 리는 없다.
이제 자다가도 돌아다니는 건가. 


정신을 잃는 일이 생겨요 -라고 해도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할 뿐이었다.
마음의 문제를 찾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우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와 타코를 사왔습니다. 이 도시에서 먹을만한 유일한 음식이던데요.”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커피에 담갔다. 

사장의 머리는 비닐에 싸서 냉동실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보기 싫을 건 없지만 음식에 냄새가 배는 건 곤란하다. 


대화가 길어지면 둘은 공조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했다.
협소한 곳이어서 마주 앉은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곳의 남자들과는 좀 달랐다.
타코의 매캐한 향, 약한 땀 냄새, 시트러스 향. 


좁은 공간에서 손이 팔에 스칠 때의 느낌도 부드러웠다.
털이 수북한 남자들과는 다른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 

알고 지낸 남자 중에 동양인이 없었는데.

“작년 8월에 바빌론에서 미해결 살인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거긴 살인사건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죠. 미해결은 더욱 흔하지 않아요. 일 년에 서너 건 정도가 통계인데. 2주 사이에 무려 4건이였죠.” 


그는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피해자 중에 한 명이 눈알이 없었습니다. 살인 방식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도 연쇄살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그녀는 갈라진 손톱을 입술로 떼어내며 듣고 있었다.


“재작년 겨울에 블랙시티에서도 유사한 미해결 살인이 있었습니다. 3건이었는데. 역시 한 주 사이에 발생했어요. 그쪽에도 다녀 왔습니다만 역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더군요.”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래서 설득이 어렵습니다. 뚜렷한 연결점이 없거든요. 신체훼손이라는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디보자 손을 자른 게 한번, 머리를 자른 게 한 번 정도라. 이번에 처음으로 눈을 파낸 게 두 개가 생긴 거죠.“

‘머리를 자른 것도 한 번 더 있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남편분이 그때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녀도 생각하던 질문이었다. 


“두 번 다 거기 있었어요. 그… 세계지식포럼이 열리던 때거든요.”
“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요. 일단 남편분을 찾아야겠습니다. 혹시 연락이 오면 꼭 알려주십시오.”


그가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주변의 공기가 변해 있었다. 

형사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굳어 있다. 

그의 손에 방금 문 담배가 없었다. 

재떨이에 꽁초가 늘었다.

                                           
“혹시 증상을 앓고 계신 거 없으십니까?”
“네. 왜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금 전 아무것도 안 하고 5분 정도 앞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건 줄 알았는데 눈동자가 움직이질 않던데요.”


이렇게 순간순간 시간을 잃기도 하는 거구나.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기는 해요. 남편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거짓말이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겁니다. 힘드시겠군요. 오늘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푹 쉬세요.“ 


표정에 걱정이 묻어났다.
말과 표정이 잘 맞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구걸하는 아이에게 경멸의 표정으로 돈을 주는 사람들,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눈은 웃지 않는 가짜 웃음. 

귀찮아서 눈초리가 멍한 과도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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