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맞췄던데?”
“응 살짝 비껴서.”
“노린 거란 말이지. 반동이 심했을 건데, 대단한데.”
“별로 어렵지 않던데. 감시하고 있었어?”
“응. 죽이기라도 하면 뒤처리를 해야 하니까.”
“실탄을 가져간 것도 알았어?”
“음. 개수가 안 맞으니까.”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3장
거울에 멍든 눈가를 비추어 보았다.
얼굴을 건드린 적은 없었는데.
폭력의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무표정하게 맞고 있으니까 더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아픈 표정을 연기하는 게 도움이 될까.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핸드폰을 청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고 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가 되돌아와서 1204호 앞에 섰다.
옆집 남자가 총을 갖고 있었지.
문을 톡톡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탕탕.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문이 빼꼼 열렸다.
들고 있던 총을 바지 뒤 춤에 찔러 넣는 게 보인다.
“너였구나. 깜짝 놀랐네.”
그녀의 눈을 보며 물었다.
“또 때렸어?”
“총을 빌리러 왔어.”
“그건…”
말 하다 말고 문을 붙잡고 있던 팔이 미끄러졌다.
“일단 들어와 봐. 알려줄 게 있으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눈에는 동정이 있다.
여섯 살, 부모를 잃었을 때 담당 형사에게 봤던 그 눈빛이다.
그 후에 누군가에게 그런 눈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왠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담당 형사는 사건 현장에서 죽기 전까지 나를 종종 찾아 왔었다.
매번 같은 질문들을 했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몇 푼 정도의 돈도 주고 갔다.
그런 그가 죽었을 때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애도의 감정 없음.
커다란 거실에 가구라고는 달랑 소파와 테이블뿐이었다.
심지어 발소리가 울렸다.
테이블 위에서 술병들이 리모컨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재떨이가 위태롭게 모서리에 걸려 있었다.
커튼은 짙은 회색.
천장에 매달린 전등은 둥글고 작은 장식들 사이에 전구가 수도 없이 붙어있는 샹들리에였다.
기묘한 조합이다.
바로크와 미니멀리즘을 한 방에서 볼 수 있다.
“그건 같이 살던 사람의 취향이야.
혼자 살면서 가구들은 다 버렸는데 전등은 떼기가 힘들어서.”
“전처야? 이혼한 건가?”
“죽었어. 이복 누나야. 그보다,”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총은 복잡한 도구야.”
아디다스 스포츠 백을 하나 들고 나왔다.
지퍼를 여니 총과 탄약으로 보이는 네모난 상자들이 가득했다.
“총은 빌려줄 수 있지만 실탄은 안돼.
경찰들도 오발사고로 허벅지가 나가거든.
무거운 건 팔이 가늘어서 들기 힘들 테고.
뭐가 좋을까…”
그는 하나하나 손으로 총 더미를 가르며 중얼거렸다.
“물 좀 줄래?”
“물은 없고 커피는 있는데.”
“그것도 좋아.”
그가 부엌에 간 틈에 탄약을 하나 집어 핸드백에 넣었다.
상자의 글을 보고 총의 모델명을 확인했다.
그가 돌아와서 캔 커피를 하나 건넸다.
“자동권총이 한 자루 있었는데… 여기 있군.”
작은 까만 색 총을 건넸다.
“콜트야. 가볍고 쓰기 편해. 숨기기도 좋고.
20발까지 연속으로 쏠 수 있지만 뭐 그런 건 상관없겠지.”
총을 받아 쥐고 모델명을 확인했다.
다르다.
“S&W가 필요해.”
“흠. 정확하게 지정할 줄은 몰랐는데.”
다시 가방을 뒤적이더니 실린더가 달린 6연발 총을 꺼냈다.
총신이 더 길고 묵직해 보였다.
“이거야. 괜찮겠어?”
두 손으로 총을 쥐고 앞으로 뻗어 보았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쥐었더니 자세가 불편했다.
왼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오른손은 왼손을 받쳐 보았다.
앞에 남편이 있다고 상상한다.
호흡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탁!
고리모양의 쇠가 앞으로 나가서 부딪쳤다.
그를 보니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는 건 분노, 놀람, 성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중 하나.
어느 쪽일까?
“위버 스탠스로군. 총 쏴 본 적 있지?”
“아니. 전혀.”
“흠. 이상한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 소리에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돌렸다.
그녀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뽑아들었다.
“누구세요?”
“나 휘트먼이야.”
“누구요?”
“니 남편 보스. 어제 파티에서 봤잖아.”
“아.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식사나 같이 하자고.”
“무슨 일로요?”
“무슨 일은. 니가 마음에 들어서. 뭐 친해져 보자는 거지.”
갸우뚱하면서 남자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친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나 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럼 당신 남편에 관한 얘기라고 하자고.
내일 저녁 8시에 힐튼 호텔 입구로 나와.”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그의 담배를 하나 입에 물면서 말했다.
“남편 보스가 나보고 친해지고 싶다네.”
“웃기는 회사군.”
“이런 게 웃긴 건가?”
“너도 웃겨. 다른 여자와는 많이 달라.
뭐, 부유층 마나님들이란 다 그런 건지도 모르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가볼게. 이건 잘 쓸게.”
캔 커피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오면서 보니 그는 리볼버를 빙글 빙글 돌리며 가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침대에 누워 총에 실탄을 재워 넣었다.
그의 말과는 달리 복잡할 게 없었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면 남편은 죽는다.
수없이 쏴본 것처럼 손에 감기는 차가운 금속.
빙글 빙글 돌려 보다가 핸드백에 넣었다.
자정이 넘도록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내일 당신 상사가 보자고 했어.
답장은 없었다.
금방 잠이 들었다.
꿈은 꾸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꿈이 없었다.
흰색 실크 드레스의 지퍼를 채웠다.
팔이 온통 멍들어 있어서 등에 있는 지퍼를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화장대에서 샤넬의 향수를 들어 칙 뿌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문을 나섰다.
호텔에 도착해 보니 휘트먼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리 늦어.”
그가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남들이 늦는다고 뭐라 하지도 않았다.
사회성이 부족해.
남편이 말했었다.
휘트먼은 그녀를 호텔 2층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가격이 정말 비싸고 맛이 아주 훌륭하다 어쩌다 했지만 그녀에게는 똑같은 고기였다.
썰고 찍어 입에 넣고 배를 채운다.
그는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비우면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부하직원이 얼마나 많은지,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벌었으며 차가 몇 대고 주절 주절 주절.
“결혼하셨죠?”
그녀가 물었다.
“했지.”
그가 또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는요?”
“다 먹었으면 방으로 가지.”
방으로 가는 중에는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침만 꼴깍 꼴깍 넘기고 있더니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돌변했다.
키스를 하려 했으나 키 차이가 나서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시체처럼 가만히 있었다.
뭐 길어야 10분이면 되겠지.
거칠게 숨을 쉬던 그가 헤헤 하고 웃었다.
그 소리가 그녀의 뭔가를 건드렸다.
지저분한 구레나룻이 얼굴을 스친다.
머리가 키잉 하고 울렸다.
누군가의 비명이 귀를 때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눈을 후벼 파고 있었다.
눈물샘 쪽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아기처럼 비명을 질렀다.
손을 거두고 주위를 살펴봤다.
아까 그 방이다.
손끝에 통증이 심하다.
길게 기른 손톱들이 거의 다 부러졌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백을 집어 들었다.
비명이 가득한 현관에서 힐의 버클을 하나씩 천천히 감고 방을 나왔다.
집에 와서 손톱을 손질하고 있는데 남편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대뜸 후려 패기 시작했다.
“이 등신 같은 년.”
뒤통수다.
이제 부위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오르느라.”
옆구리에 발길질을 맞고 나뒹굴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가 씩씩거리는 사이 핸드백을 놔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 그만 해.”
총을 꺼내며 말했다.
손가락으로 안전장치를 풀었다.
“어이고 이거 완전 미쳤네. 그건 어디서 난 장난감이냐.”
그가 눈을 부릅뜨고 다가왔다.
방아쇠를 사르륵 당겼다.
쾅.
생각보다 소리도 반동도 컸다.
귀가 멍멍했다.
그의 뺨에 빨간 선이 그어졌다.
현관 유리장이 와장창 깨졌다.
그는 걸음을 뚝 멈췄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이 벌어져 있다.
저건 명확하게 놀란 표정이다.
“내 몸에 다시 한번 손대면.”
반동으로 올라간 팔의 위치를 다시 바로잡으며 말했다.
“머리를 쏠게.”
그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쏘지 마.”
새된 목소리였다.
어깨가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문이 쾅하고 닫혔다.
잠시 후 그녀는 총을 핸드백에 넣었다.
리볼버의 안전장치를 잠그는 걸 잊지 않았다.
“죽여버리겠어. 얼마나 잘해줬는데 은혜도 모르고.”
혼자 중얼대며 잭이 복도에 한참을 서 있었다.
분노가 가라앉지를 않았다.
다시 돌아가서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총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일단 물러나자.
회사 쪽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
휘트먼 그 개새끼.
남의 여자나 넘보더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내 탓을 해?
씩씩대고 있는데 한 남자가 복도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그를 쳐다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뭘 봐 병신새끼야!”
“널 본다.”
그 남자는 폭언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바로 달려들어 분풀이나 할까 했지만 목소리나 태도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도어폰이 울렸다.
그녀는 총을 꺼내 들고 밖을 확인했다.
옆집 남자였다.
문을 열자 즉시 미끄러져 들어온다.
“얼굴을 맞췄던데?”
“응 살짝 비껴서.”
“노린 거란 말이지. 반동이 심했을 건데, 대단한데.”
“별로 어렵지 않던데. 감시하고 있었어?”
“응. 죽이기라도 하면 뒤처리를 해야 하니까.”
“실탄을 가져간 것도 알았어?”
“음. 개수가 안 맞으니까.”
찌그러진 총알을 바닥에서 주우며 말했다.
“소음기도 챙겨가지 그랬어.
뭐, 총소리라고는 생각은 못 할 테니 괜찮겠지만.”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내렸다.
“잘 썼어. 고마워.”
총을 건넸다.
“그런 거 같네.”
그는 총을 허리춤에 넣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