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전남편입니다.”
주저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형사라고 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느낌이 이상하다.
보통 사람들은 형사와 통화한다고 하면 긴장하게 마련이다.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5장
“아니. 연쇄살인이 맞다니까요.”
동양인 형사가 말했다.
형사 셋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서 있는 위치로 보아 동양인 형사가 한쪽, 루이스와 클락을 닮은 두 형사가 반대쪽을 맡고 있는 듯했다.
“지갑이 없어졌단 말이요. 강도 살인 갖고 왜 힘들게 이 나라까지 와서 이러쇼?”
루이스가 말했다.
“어여 집에 돌아가서 목욕도 좀 하고 자라고. 냄새나잖아.”
클락이 거들었다.
동양인 형사는 물러나지 않았다.
“눈알이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도 그런 경…”
루이스가 말을 끊었다.
“아 그러니까 눈알이 없어지면 다 연쇄살인이냐고.”
“확실하지 않으니까 부검 내용을 보여달라는 거 아닙니까.”
“아 거 디게 끈질기네.
이봐 우 형사. 우리 지금 사건이 너무 많아서 다들 바빠.
쓸데없이 일 더 만들지 말라고.
우리도 집에 못 들어간 지 일주일이나 됐어.”
“이 친구 애가 다른 남자한테 아빠라 부르고 있지.”
둘이서 껄껄 웃어댔다.
동양인 형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수사본부 같은 건 됐구요. 사건 기록이라도 주십쇼.”
우 형사는 오랜 시간의 운전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국가간 이동을 위해 국경 검문소에서도 한참 기다려야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가 뜨기는 했다.
하늘을 떠다니는 커다란 괴물들 때문에 비행기가 몇 개 공중 분해된 후로 항공회사들이 모조리 망해 버렸다.
모텔 방에 짐을 던져 넣다시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피곤했지만 배가 고팠다.
이 도시는 백인 위주라서 차별이 심했다.
황인, 흑인, 라티노들은 슬럼에 조금씩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면 무겁고 탁한 공기가 빨려 들어온다.
비가 오지 않으면 흐려서 이곳 해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초고층 빌딩을 자랑하지만 인간성은 낮아져만 가고 있는 곳이다.
생각에 잠겨 차를 몰다가 타코 체인의 할라피뇨 로고를 발견하고 휙 핸들을 돌려 꺾었다.
뒤쪽에서 차들이 빵빵거리고 난리였다.
그는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씩 웃어주면서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 그래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타코를 고추 소스에 질퍽하게 찍어 먹었다.
커피를 따르던 웨이트리스가 혀를 내두르며 친하게 굴었다.
귀여우시네요. 안 매워요?
금방 안가고 옆에 붙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가 그가 피해자 사진을 펼쳐 들자 질겁하고 도망갔다.
타코 두 개를 허겁지겁 집어넣고 나서야 허기가 조금 가셨다.
바싹 마른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파일을 넘겨봤다.
찐득한 소스가 묻어 물수건으로 연방 닦았다.
대부분은 자신이 끄나풀을 통해 알아낸 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40대 후반의 남성. 투자회사 고위직. 결혼은 했으나 별거 중. 목의 자상으로 인한 동맥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그 외에도 목에 몇 개의 자상이 더 있음. 왼쪽 눈알이 없음. 칼로 파낸 듯함.’
그 다음이 특이했다.
‘다른 쪽 눈에도 비슷한 상처가 있는데 칼이 아니라 긴 손톱으로 파인 것으로 보임. 사망한 시점이 아님. 딱지가 앉아 있었음.’
다행히 이곳 부검의들은 일을 잘하고 있었다.
통화 기록을 역순으로 훑어 올라갔다.
회사 직원들, 회사 직원들.
죽은 날 연속으로 몇 통화를 한 번호가 있어서 기록을 봤더니 잭이라는 이름의 직원이었다.
바로 통화를 시도해 봤으나 전화기가 죽어 있었다.
다시 기록을 찾아 올라가다가 특이한 번호를 발견했다.
사망 전 전날.
좀 전의 잭의 두 번째 번호다.
아내이거나 보호자.
전화를 걸었다.
“누구신가요?”
아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여자 목소리였다.
“수사국의 존 우 형사입니다.”
국가를 밝히지 않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실례지만 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전남편입니다.”
주저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형사라고 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느낌이 이상하다.
보통 사람들은 형사와 통화한다고 하면 긴장하게 마련이다.
“휘트먼씨와 이틀 전에 통화를 하셨던 데요.”
“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사시는 주소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5번가에 있는 페블스 흥신소에 있습니다.”
“직장 말구요. 거주지 주소요.”
“거기서 삽니다.”
끝까지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
이거다 하는 직감이 왔다.
“내일 찾아가겠습니다. 오전에 거기 계십시오.”
“그러세요.”
전화가 끊겼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인 남편과 그 아내가 얽혔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냥 단순한 치정 살인인가?
얘기해 보면 알겠지.
그는 타코를 마저 찍어 먹고 남은 찌꺼기와 함께 커피를 후룩 마셨다.
쓴맛이 입에 잔잔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