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잘 봤어. 난 그래.”
“뭐가 그래?”
“감정. 사랑, 분노, 눈물 그런 게 전혀 없어. 그래서 회사에 가면 항상 얼마 못 버티고 잘려.”
“그래서인지 총은 잘 쏘던데.”
“그러네. 나도 네가 하는 일을 시켜주지 않을래?”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데?”
“너무 위험해. 죽어야 은퇴하는 일이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4장
그 다음 날 그녀는 변호사를 통해 이혼장을 받아 들었다.
재산 분할 없음.
다시 결혼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슬프거나 회한에 잠기거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래도 집은 있으니까 옷이랑 가방들을 팔면 당분간은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총을 쏜 것 보다 그 전날 눈을 후벼 파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일, 이분 정도 필름이 끊겼다.
그런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사에게 가봐야 할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부동산에서 나왔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주니 무척 뚱뚱한 남자가 목과 턱의 땀을 닦으며 들어왔다.
“와, 사모님이 엄청난 미인이시네요. 집 내놓으셨죠?”
그는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제 집도 없어졌다.
대책을 빨리 세워야 했다.
부동산 남자를 돌려보내고 옷장에 가서 옷들을 쭈욱 살펴봤다.
가슴이 깊이 파인 흰색 돌체&가바나 티를 찾아 입었다.
브라는 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미니 청 스커트에 다리를 꿰어 입고 옆집 남자가 집에 돌아오는 걸 기다렸다.
오후 늦게야 인기척을 듣고 1024호 문을 두드렸다.
“옷이 그게 뭐야.”
술 냄새가 풍기는 눈으로 가슴을 한참 보더니 그가 말했다.
“갖고 싶어?”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약간 젖은 목소리를 내면 잘 통한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꺼내 물더니 한 모금 훅 빨고 말했다.
“그런 건 그만둬.”
흠 실패인가.
그가 원하는 타입이 아닌지도 모른다.
게이일지도 모르고.
“넌 왜 다른 남자들처럼 날 원하지 않지? 내가 매력적이지 않나?”
“대단히 매력적이지. 그렇지만…”
허공에 연기를 훅 내뿜었다.
“그렇지만?”
“너는 날 전혀 원하지 않잖아?”
얼굴을 바로 쳐다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넌 이상한 여자야.”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떠다니는 담배 연기가 흐릿하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정신이 들어 보니 얼굴이 뜨거워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그의 담배의 길이를 보니 그리 길지는 않은 거 같았다.
“맞아. 잘 봤어. 난 그래.”
“뭐가 그래?”
“감정. 사랑, 분노, 눈물 그런 게 전혀 없어. 그래서 회사에 가면 항상 얼마 못 버티고 잘려.”
“그래서인지 총은 잘 쏘던데.”
“그러네. 나도 네가 하는 일을 시켜주지 않을래?”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데?”
“너무 위험해. 죽어야 은퇴하는 일이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그는 핸드폰을 들어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통화를 했다.
“잠시만.”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목이 시큼했다.
아, 멘솔이네.
담배를 챙겨올걸.
그가 핸드폰을 접으며 말했다.
“마침 자리가 하나 있어. 별로 좋은 일자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법은 아니니까.”
케첩이 묻은 햄버거 포장지 한 귀퉁이를 찢어 주소를 적어 주었다.
“이곳으로 찾아가 봐. 총은 다시 가져가. 필요할 거야.”
그녀는 총을 챙겨 넣고 방을 나섰다.
현관문을 돌리는데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손톱이 쓰라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밤중이다.
분명 해가 지기 전에 그의 방을 나왔는데.
어째서 지금 한밤중이지?
들어와서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이번엔 5시간 정도를 잃었다.
의사에게 가봐야겠어.
그녀는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떼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