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랗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얼굴의 웃음기도 없어졌다.
이런 급작스런 표정의 변화는 TV와 비슷했다.
어쨌든 그녀의 역할은 말을 적게 하는 거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 그녀가 세상을 보는 법 ]
2장
노란색 미니 드레스를 골랐다.
불가리 로고 모양의 두 개의 링이 그녀의 가슴 일부를 드러내 주었다.
색을 맞추려고 새로 산 힐을 신었더니 뒤꿈치가 아팠다.
팔의 멍은 옅어지긴 했지만 화장으로 감췄다.
티파니 링 귀걸이를 걸고 늘 하던 대로 에르메스 클러치백을 들었다.
“입도 뻥긋하지 말고 구석에 박혀 있어.”
남편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그러면서 표정은 웃는다.
파티장은 생각보다 컸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잘난 남자들과 그들의 부인들과 명사들이란 사람들이 모여 세트로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말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다들 지루한 표정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웨이터들만이 무표정하게 쟁반을 들고 그들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온갖 종류의 향수가 섞여 코를 찔렀다.
이래서야 비싼 향수를 뿌린 의미가 없다.
지나가는 쟁반에서 주스를 하나 낚아서 답답한 목을 축였다.
홀 중앙에서 멍하니 서 있으니 눈만 마주치면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려 했다.
자리를 옮겼다.
무대에서 몇 명의 연주자들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음 곡은 제니퍼 로페즈의 브레이브가 나갑니다.”
그 소리에 맞춰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춘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변하잖아.
그에 맞춰 몸을 흔드는 거 아니겠어.’
누군가 말했었다.
흥겨운 감정 없음.
나무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 곳을 찾아 숨어들었다.
다들 그러는 것처럼 손에 와인 잔을 들었다.
마시지는 않는다.
재수 없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보였다가 재빨리 고민에 잠기는 표정으로 넘어간다.
파티장은 그녀에게 아주 곤란한 장소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갖은 표정을 짓고 해독 불가능한 말을 한다.
올 초 블랙시티에서 열린 파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자꾸 춤추자고 들러붙는 대사에게 ‘저기 당신 아내와 추세요.’ 라고 했다가 남편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 후로는 같이 출장을 가더라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호텔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파티장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이렇게 고생 중이고.
“이봐 잭.”
시끌벅적한 소리가 다가왔다.
“포럼에서 보고 처음 보지? 자네 내 직원 맞나?”
남편의 어깨에 힘들게 팔을 두른 조그만 털 복숭이 남자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아름답다고 소문난 부인을 소개해 줘야지!”
낄낄대며 나무 사이로 두리번거렸다.
남편이 그녀를 발견하더니 눈짓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걸어 나왔다.
“이분이 새로 모실 내 보스야.”
그래서 그녀가 필요한 거였다.
보스라는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지도 않고 침을 삼키지도 않은 채 눈만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이건 또 무슨 표정이지.
피로가 몰려왔다.
“꽤 키가 크시네.”
커다랗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얼굴의 웃음기도 없어졌다.
이런 급작스런 표정의 변화는 TV와 비슷했다.
어쨌든 그녀의 역할은 말을 적게 하는 거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그녀를 보고 있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또 무슨 실수를 한 건가?
남편을 바라봤다.
그는 눈을 한번 부라리고 상사를 열심히 따라갔다.
돌아오는 길에 큰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울해한다지만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산을 챙기면 된다.
미처 준비를 못 했으면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 들곤 했다.
“네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남편이 차를 뒤로 뽑으면서 말했다.
“누가?”
“보스.”
씩씩거리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줬어?”
“전화 오면 잘 받아.”
지금 상황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려 했지만 몇 시간 동안 버티느라 너무 피곤했다.
발뒤꿈치는 완전히 까져서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