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허전해집니다.
코코가 마야의 목걸이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넌 여길 떠날 수 없을 거야."
코코는 환한 웃음을 보입니다.
[ 열여섯 살의 꿈 ]
8장
고등학교 1학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끝자락에 접어듭니다.
학교는 축제 준비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도 소설 낭독회-라는 코너가 주어졌습니다.
학교 애들뿐만 아니라 주변 슬럼고 학생들,
독자들도 많이 찾아온다니 부담이 됩니다.
마야는 새로운 소설 - 사실은 꿈 이야기 –을 반복해서 읽으며 낭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방 안에 있던 진열장 속 인형들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곳이 더 좋은 모양이야.’
그녀는 생각합니다.
‘하긴, 나도 이제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는 아니지. 소설도 출간했는데.’
가끔 코코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쪽 꿈을 꾸는 게 왠지 두려워졌습니다.
마야를 바라보는 로즈의 차가운 얼굴도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게다가 그 꿈을 꾸고 나면 늦잠을 자게 됩니다.
내일은 축제 일이라 절대 늦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 꿈을 꾸면 안 돼. 거기 꿈을 꾸면 안 돼.’
속삭이며 잠이 듭니다.
몸을 일으켜 보니 그 꿈입니다.
‘아이, 왜 이렇게 된 거야.’
잠깐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늦기 전에 빨리 돌아가면 될 테니까요.
몸을 일으켜 보니 이번엔 호수 근처에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부유등은 없지만 환한 무지개다리가 호수 반대편까지 걸려 있습니다.
“와 정말 멋진데”
그녀는 감탄합니다.
핏불이 옆에서 컹 컹 거리며 대답합니다.
“너 또 따라왔구나”
톰톰은 이 꿈에만 따라옵니다.
여기가 재밌어서 일까요?
다리에 발을 올려놓자마자 무지개 길을 따라 몸이 날아오릅니다.
총천연색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입니다.
가장 높이 올랐다가 내려갈 때는 몸이 붕 뜹니다.
오줌을 지릴 것만 같습니다.
톰톰도 깨갱거리면서 좋은지 무서운지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립니다.
바닥에 내려서자 높은 탑이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부유등으로 장식해놓은 탑이 형태를 따라 하얗게 점멸하는 게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녀는 문을 밀고 들어갑니다.
남녀가 함께 있습니다.
여자가 아픈 것 같습니다.
인기척이 들리자 남자가 몸을 일으킵니다.
그때보다 좀 더 나이가 든 코코입니다.
이제 스무 살도 넘어 보입니다.
일어나서 상의를 걸치고 마야에게 다가옵니다.
“다신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예전처럼 웃지 않습니다.
눈빛이 흔들립니다.
마야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하러 돌아왔니.”
로즈도 일어나서 한마디 톡 쏩니다.
“우린 잘 지내고 있어.”
“알았어. 이제 다시 오지 않을게.”
마음이 상한 마야가 말합니다.
- 나도 오고 싶었던 게 아니야. 라고 생각합니다.
로즈는 밖으로 휙 나가버립니다.
밖에서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톰톰이 그르렁-거립니다.
“로즈는 요즘 양이랑 늑대랑 말을 보살피는 걸 좋아해.”
정적이 흐르자 어색함을 깨려고 코코가 입을 엽니다.
“따라와. 멋진 야경을 보여줄게.”
둘은 탑의 꼭대기에 오릅니다.
예전처럼 학교생활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난간에 기대어 서서 코코는 마야의 손을 잡으려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팔을 뺍니다.
“이젠 내가 싫은 거니?”
코코는 굳은 얼굴로 말합니다.
코코를 처음 봤을 때 그 귀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난 역시 널 좋아해.”
그가 안을 것처럼 다가옵니다.
마야는 몸을 움츠립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허전해집니다.
코코가 마야의 목걸이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넌 여길 떠날 수 없을 거야.”
코코는 환한 웃음을 보입니다.
“돌려줘. 그거 내 거야.”
마야가 말해보지만 코코는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톰톰이 달려듭니다.
코코의 팔을 물어버립니다.
“아얏.”
그의 팔에서 피가 떨어지고 목걸이를 놓칩니다.
하늘색 목걸이는 탑의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목걸이의 파편은 수천 개의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온 세상으로 날아갑니다.
그중 하나가 코코의 상처 난 팔에 빨려 들어 갑니다.
탑 아래에 있던 로즈의 손톱 사이로 또 다른 파편이 파고듭니다.
로즈가 뽑아내려 할 때마다 더 깊숙이 들어갑니다.
손끝을 뚫고 혈관을 따라 흐르다 심장을 찌릅니다.
그 순간 로즈는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춥니다.
로즈의 감정은 더욱더 진해집니다.
눈이 충혈되어 있습니다.
로즈는 탑 위를 올려다보며 말합니다.
“나쁜 계집애.”
그리고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저 멀리 분수 반대편의 숲으로 떠납니다.
“이 노란 길이 정말 싫어. 가자, 얘들아.”
엉덩이를 흔들며 교태롭게 걸어가는 로즈의 뒤를 1번 양 한 마리와 꼬리를 살랑거리는 늑대, 신경질이 가득한 말 한 마리가 따라갑니다.
마야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엄마가 일하고 돌아오면 밥도 차려드려야 하고 아침 식사도 준비도 해야 합니다.
학교에 가서 소설을 낭독해야 합니다.
니플에게 일정에 맞춰 소설을 건네줘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졸립니다.
눈이 반쯤 감겨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긴 꿈인데. 꿈속에서 또 잠이 오다니 웃기네...’
그렇게 생각하며 마야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영원히 깨지 못할 꿈을 꿉니다.
탑의 꼭대기 층, 침대 안에서 가끔 뒤척이며 끙끙대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진동하고 모든 그림자가 꿈틀거립니다.
코코는 침대 머리에 앉아 그런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