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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Herowarz

[최강의군단] 열여섯 살의 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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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에서 나쁜 생각을 하면 안 되시오."

찐눈이 당부합니다.

'왜 안 되는 거지? 꿈일 뿐인데.'

그녀는 찐눈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 열여섯 살의 꿈 ]


7장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초여름 밤, 그녀는 책상에 앉아 SF소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친한 친구는 여전히 니플 뿐이지만 다른 동급생들과도 잘 지냅니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 아이들이 마야를 좋아해 줘서 먼저 말을 걸어오거든요. 
TV에 나오는 보니 언니도 마야에게 말을 걸 정도입니다.
 
그동안 그녀는 다양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적고 나중에 그 내용을 소설에 옮기면 니플이 홀랑 가져가 버립니다.
언제 다음 이야기가 완성되느냐며 스케줄 표까지 만드는 품새가 마치 출판사 직원 같습니다.


요즘 니플은 마야가 쓴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소설’에 푹 빠져 여주인공 대사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설이 출간된 것도 믿기 어려운데 니플은 정말 여배우가 되려는 모양이에요.


학교에서 로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로즈를 기억하는 아이가 있긴 있었어요.
그녀는 잘 있어- 라고 말해 주려다가 

꿈 이야기를 해서 뭐할까- 싶어 관뒀습니다.


문득 로즈가 코코랑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서랍을 뒤져서 작은 하얀 목마를 찾아냅니다.
이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훨씬 더 커다랗고 말도 할 줄 아는, 하얀 목마를 탄 기억이 납니다.


다시 한 번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열장 안의 인형들은 거의 사라져 버렸어요. 

다락을 통해 모두 가 버린 모양입니다.
그녀는 오늘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알 것 같았습니다.
 
노란 벽돌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벽돌이 많이 망가져 있습니다. 

덤프트럭이라도 지나간 모양입니다.


양들이 갈아놓은 밭은 제법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노란색 곡식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대규모 농장 같습니다.


군데군데 마야의 인형과 닮은 아이들이 까마귀를 쫓고 있습니다. 

코쟁이가 자신의 머리를 쪼고 있는 까마귀와 사투를 벌입니다. 

울보는 방울을 딸랑거리며 코쟁이를 돕고 있네요. 

두 팔을 다 쓰는 걸로 봐서 다친 곳은 나았나 봅니다.


69번은 보이지 않지만 양이 워낙 많아서 번호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마야는 분수대를 지나 들판에 있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책상과 의자가 있지만 너무 커서 앉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키보다 몇 배는 되어 보입니다.


“모든 게 엄청나게 크네.” 


그녀는 감탄했습니다. 

옆에서 멍멍- 하고 짖는 소리가 납니다. 

톰톰입니다.


“너는 언제 따라왔니?” 


반가워서 꼬옥 안아줍니다. 

톰톰과 육각형의 연필에 올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즐겁게 놉니다.


콤파스의 뾰족한 끝이 커다란 송곳 같아서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침대며 커튼이며 어디선가 많이 본 것들입니다.
진열장 안에 찐눈이 혼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찐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여긴 살 만하니?”
“아. 그럭저럭 살 만하다오.”
“여긴 내 방이 생각나는데?”
“당연하지.” 


찐눈은 동양의 여인처럼 도도하게 대답합니다.
좋아하는 손거울이 벽에 세워져 있습니다. 

물론 마야가 가진 손거울보다 훨씬 커서 손으로 들 수는 없겠네요.


습관처럼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화장이 밀리지는 않았는지, 입가에 음식이 묻어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다 또 그걸’ 봅니다. 
그녀의 행동보다 조금씩 늦게 움직이는 그걸’ 봅니다. 

저번의 기억이 떠올라 무서워집니다. 

톰톰도 거울을 보며 으르렁댑니다.


거울 속의 마야가 개를 보고 무서운 얼굴을 합니다. 

마야는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찐눈이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그만 보는 게 좋소. 자꾸 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오.” 


성격답지 않게 걱정해주는 모양입니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 거울에 눈이 갑니다. 

이 방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꿈에서 나쁜 생각을 하면 안 되시오.” 


찐눈이 당부합니다.


‘왜 안되는 거지? 꿈일 뿐인데.’ 


그녀는 찐눈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방의 반대편으로 나와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잔디가 높게 자라있어서 미끄러져 내려가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데굴데굴 구르니까 너무 신이 납니다. 


‘이곳에 오면 마치 어린애가 되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한참 구르다 언덕이 끝나는 곳에 멈추었더니 늑대의 발이 보입니다. 

늑대는 비눗방울을 후루룩 불어 대며 마야를 내려다봅니다.


“아, 그때 풍선 아저씨?”
“그건 내 삼촌이야.” 


퉁명스럽게 늑대가 대답합니다. 

삼촌과는 다르게 성격이 못돼 보입니다.


톰톰이 또 으르렁거립니다. 

늑대도 같이 으르렁거리네요. 

어금니가 반짝 빛납니다. 

톰톰을 안고 바쁘게 걸어갑니다.


꿈이 점점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호수로 가봐. 널 찾고 있을 거야.” 


늑대가 마야의 뒷머리에 대고 외칩니다. 

톰톰이가 마야의 품 안에서 꿈틀거립니다.


그녀는 노란 벽돌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호수는 무척 큽니다. 

호수를  빙 둘러싼 산책로만 돌아도 반나절은 걸릴 것 같습니다.


호수 위의 등불들이 알싸한 빛을 뿌리며 동동 떠다닙니다.


‘밤도 아닌데 왜 등을 켰을까?’ 


의아스러워하는데 진짜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급작스러운 전개야. 소설에는 어떻게 써야 할까?’ 


직업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부유등을 가르며 배 한 척이 물가로 다가옵니다. 

남자와 여자가 타고 있습니다.
배가 뭍으로 오르자마자 사내 한 명이 뛰어옵니다.


“마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코코입니다. 

키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입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빠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는 뭐라고 해야 할지 곤란해졌습니다.


“정말 그리웠어. 너 오기만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도 보고 싶었어.” 


정말이었습니다. 

아까 잠깐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꿈을 꾸고 있는 거겠죠.  


뒤따라 예쁜 아가씨가 내렸습니다. 

로즈입니다. 


머리에는 나비모양으로 묶은 리본을 하고 있습니다. 
앳된 얼굴은 사라지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창백한 얼굴은 그대로지만 전처럼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습니다.


“잘 지냈어, 로즈?” 


로즈 쪽이 부르기가 더 쉬웠습니다.  


“그냥저냥.”
“몸은 이제 다 나은 거야?”
“신경 쓸 거 없어.” 


로즈는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마야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건 그녀가 아주 잘하는 일이었거든요.  


“아무튼, 잘 왔어. 배에 타. 밤의 호수는 제법 볼 만해.“
“나한테도 그런 소리 하더니.” 


로즈가 쏘아붙입니다. 

코코는 가만히 웃습니다.


그들은 배에 오릅니다. 

코코가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합니다. 

마야는 학교와 톰톰과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코코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톰톰을 안아보기도 하며 즐거워합니다.
로즈는 말이 없습니다. 

가만히 그녀의 목걸이만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한마디 합니다.


“목걸이 말야.”
“응?”
“나 줄래?”
“...” 


그녀가 어쩔까 하고 있는데 로즈가 다시 물어봅니다.


“안되면 말고. 그럼 잠깐이라도 빌려줘.” 


그건 괜찮을 거 같습니다.
로즈는 목걸이를 받아 자신의 목에 겁니다. 

코코를 바라보며 잘 어울려?- 라고 말합니다. 

코코는 웃고 넘깁니다.


“이 목걸이 이상해.” 


로즈가 혼잣말인지 뭔지 모르게 중얼거립니다.


“맞아. 가끔 빛나는 것 같아. 난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대답합니다. 


“그런 거 말고도 느낌이 좋지 않아. 넌 다 알고 있는 거니?”
“나? 뭐를?” 


그녀는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로즈가 목걸이를 다시 돌려주고 코코의 귀에 뭐라고 속삭입니다.


어른들의 대화는 잘 모르겠어.’ 


그녀는 생각합니다.
셋은 호수 가운데에서 둥둥 떠 있습니다. 

검푸른 물 위로 하얀 등불들이 그녀를 몽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꿈 같아. 아 진짜 꿈이지. 그녀는 웃음이 나옵니다.
 
일어나, 얘야. 지각하겠어.
 
호수 저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모양입니다.


“난 돌아가야겠어.” 


마야가 말합니다.


“뭐라도 줘야 할 텐데... 미처 준비를 못 했어.” 


코코는 항상 그랬듯이 슬퍼합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습니다.


누군가 그녀를 배 밖으로 밀칩니다. 

물에 첨벙 빠져서 가라앉습니다. 

더 깊이 더 깊이 가라앉습니다.


물 밖에서 남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이좋게 지내야 할 텐데...

걱정하며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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