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초신성이라오. 자네도 잘 알 텐데."
"저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방금 처음 봤는데요."
"나도 지금 처음 뭔가를 보기 시작했으니 인형 같은 건 몰라"
[ 열여섯 살의 꿈 ]
2장
눈을 번쩍 떴습니다.
저녁으로 먹은 콩 스프가 끄윽 하고 올라옵니다.
‘여자애는 그러면 안 되는데. 예쁘게만 보여야지’.
마야는 혼자 반성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너무나도 졸려서 침대를 끌어 안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완전 쌩쌩합니다.
남자가 물에 잠기는 꿈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입니다.
‘벌써 한밤중이야.’
깜박 잠든 줄 알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오늘은 별로 놀지도 못했는 데 말이죠.
방구석이 환하게 보입니다.
달빛이 들어오고 있는걸까요?
창문을 보니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가만히 누워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고개만 까닥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들려옵니다!
“팔이 너무 아파.”
우는 목소리입니다.
“그래. 그래. 울지마.”
또 다른 목소리입니다.
“빨리 가자. 가면 고쳐 줄 아저씨가 있을 거야”
세 번째 목소리가 재촉합니다.
그러더니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다락문이 활짝 열립니다.
빛이 더 강해집니다.
마야는 슬그머니 바라봅니다.
세상에!
마야의 인형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세 인형은 다락 안으로 쏙 들어갑니다.
울보의 팔이 이상한 각도로 휘어 있습니다.
‘바로잡아 줘야 할텐데.’
마야는 벌떡 일어나 다락문을 엽니다.
그 안에서 환한 빛이 퍼져 나오고 있습니다.
눈이 부셔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서 있습니다.
그새 인형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다락은 오래된 사진을 꺼내러 갔었던 그 공간이 아니었어요.
넓은 계단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 위쪽에 커다란 달이 보여요.
둥글게 호를 그리고 있는 모양이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달의 아래쪽에 문이 있네요.
빛이 쏟아져 내려 바닥에 가루가 되어 흩어집니다.
그녀의 맨발을 간지럽힙니다.
부드럽고 따뜻하네요.
마야는 계단을 올라갑니다.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혼자있으니 무서워서 괜히 혼잣말을 해 봅니다.
“이러다 다리가 두꺼워질 거 같아.”
말소리가 우웅 울립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걱정스러웠습니다.
다행히 다리를 놀릴수록 문이 점점 커집니다.
문 앞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헐떡거렸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힙겹게 당겨봅니다.
달의 문 뒤로 우주가 열렸어요.
‘와 꿈을 꾸고 있나봐. 이 정도면 멋진 꿈이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저 멀리 빛나는 별들이 반짝입니다.
파랗게 투명한 바닥이 한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무게를 싣지 않고 한쪽 발을 디뎌 봅니다.
시원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바닥은 투명한 우주 공간입니다.
별 무리로 빛나는 길이 어디론가 그녀를 손짓하는 것 같았어요.
마야는 은하수를 따라 걸었습니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도시의 야경이 보입니다.
높은 빌딩 사이로 강이 흐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곳입니다.
그녀의 도시입니다.
‘저 아래 우리 학교가 있겠네. 니플에게 이 꿈을 얘기해 줘야지’.
발을 쓰다듬는 조그만 별들의 부스럭거리는 촉감과 그녀를 감싸는 별빛의 따스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공기도 맑고 상쾌합니다.
한겨울인데 차갑지도 않습니다.
밝게 빛나는 둥근 돌에 걸터앉아 생각했습니다.
‘꿈같아. 아참 꿈 맞지’
그녀는 혼자 킥킥거렸습니다.
“뭐가 그렇게 슈우퍼 웃기시오?”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깜짝이야. 누구세요?”
“나는 초신성이오. 이 곳의 슈퍼 스타지.”
“아이. 어디에 있는 거에요. 모습을 보여야 예의지요.”
“그대의 슈우퍼 예쁜 엉덩이 아래에 있다오.”
앉아있던 돌이 흔들거렸습니다.
꺄악 비명을 지르며 튕겨 오르듯 일어났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돌이 쑤욱 바닥에서 올라옵니다.
“말을 했어. 돌이 말을 했어. 입이 있나 봐.”
그 순간 돌의 아랫 부분이 갈라지며 입이 생깁니다.
팔다리도 우드득 완성됩니다.
돌은 눈을 번쩍 뜨고 말했습니다.
“고맙소. 이제 누워만 있지 않아도 되겠구먼.”
“왜 말끝마다 슈퍼 슈퍼 거리는 거에요?”
“글쎄올시다.”
“그보다 슈퍼 아저씨. 인형들 못 보셨어요?
하나는 코가 길고 하나는 눈이 쭉 찢어져 있어요.”
“초신성이라오.”
“뭐라구요?”
“내 이름은 초신성이라오. 자네도 잘 알 텐데.”
“저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방금 처음 봤는데요.”
“나도 지금 처음 뭔가를 보기 시작했으니 인형 같은 건 몰라”
초신성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난 가봐야겠어. 다리도 생겼는데 뛰어봐야지. 여자애를 봐서 그런지 심장이 터질 거 같으이.”
그러면서 커다란 돌은 다리를 쓰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 멀어졌습니다.
“울보를 찾아야겠어. 팔이 많이 아플 텐데.”
그녀는 다시 혼잣말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은하수를 따라 걸어가니 심심해집니다.
바닥에 별들을 늘어 놓아서 별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돌이 북극성입니다.
거기서 일곱 칸 떨어진 곳에 북두칠성을 만들었어요.
국자의 모양으로 보이려고 이렇게 저렇게 놓아 보았습니다.
반대쪽엔 카시오페아입니다.
다섯 개의 돌을 더 가져다가 더블유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더는 모릅니다.
과학시간에 더 잘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내키는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열 걸음쯤 걷고 염소자리를 만듭니다.
염소자리의 별 모양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대애충 염소 모양이면 될 거 같았습니다.
다시 스무 걸음 걷고 물고기를 만들어요.
그 앞에 처녀자리를 만들려다가 돌이 너무 많이 들 거 같아서 천칭을 그리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사자와 쌍둥이를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리는 걸 포기하고 별에 대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은하수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동그란 아이별들이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애들은 마구 뛰어 나가서 우주의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조심해야지 얘들아.”
아이들은 어디로 떨어지는 걸까요?
그녀는 가장자리로 가서 내려다봤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절벽입니다.
바닥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옆을 스쳐가는 별똥별을 붙잡았습니다.
“어디로 가는거니?”
“놔요. 바빠요. 소원이나 비세요.”
그 별은 마야를 뿌리치고 뛰어 내려갔습니다.
빛의 잔상을 남기며 줄을 그리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뛰어내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뭔가가 쿵 부딪칩니다.
몸이 가장자리 밖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큰일이야.”
필사적으로 자신과 부딪친 별을 꽉 안았습니다.
별똥별도 버둥거립니다.
별과 마야는 서로 끌어안고 저 아래로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립니다.
멀리서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작열합니다.
시야가 새하얘졌습니다.
희미하게 슈우퍼어! 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떠 보니 해가 창에 걸려있었습니다.
‘햇빛이었네. 다행이야. 슈퍼 아저씨가 터진 게 아니었어.’
포플러 나무 위의 새들이 속닥거립니다.
마야는 하루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