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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반 미터의 아이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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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어서 표정을 읽는 여자와, 

귀가 안 들려서 입술을 읽는 남자. 

이걸 말해주면 웃을지도 모른다. 


따라가서 난 그녀의 귓가에 그걸 속삭인다. 

 
“웃기는 소리 그만하고 니 방탄복이나 잘 챙겨.”





[ 반 미터의 아이 ]



5. 볼스로크 스트리트



“세상엔 죽어도 될 만한 사람도 많단다.” 

– 오드리 레아 벨로바


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린다. 

윌슨은 누군가를 쐈다. 

타깃은 죽었을까? 


난 차가운 슈타이어에 바짝 붙어서 소음기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린 총알 하나 날아오는 일 없이 편하게 위치를 벗어난다. 


“이야, 너 정말 편한데. 

이거 비싸게 먹히겠어.” 


그녀의 표정이 밝다. 


“내 일은 끝났어. 

넌 임무 중에 죽은 거로 할게. 

거기 돌아가는 거보다 나은 데로 보내줄 거야. 

야, 나도 큰 위험을 지는 거다. 

널 위해서 감수하는 거야.”  


난 바빌론을 떠나 메트로 동쪽의 도시로 이동한다.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며 그간 배운 것들을 생각한다. 

실전은 교본과는 다르다. 

윌슨이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난 윌슨과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좋았다. 

둘이 시켜 먹는 중국음식도 좋았다. 

춤추듯 화려하게 움직이는 입술도 좋았다. 

일단 터지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예전 일들과, 경험담을 듣는 것도 좋았다. 


헤어지는 게 아쉽다. 

“또 봐요.” 


난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또 볼일 없을 거야.”

 
그녀는 날 다른 여자에게 넘기며 활짝 웃는다. 

윌슨은 내 몸값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투덜댔다. 


좋은 의도였을 거야. 
난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볼스로크에서는 윌슨과는 성격이 아주 다른 여자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도 윌슨과 같은 용병이었고, 이번에도 저격을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윌슨보다 키가 훌쩍 크고, 긴 다리가 예쁘고, 차가운 얼굴에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말할 때 입술이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수다도 없고, TV도 보지 않는다. 

나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다. 

이름도 물어보지 않아 통성명을 요구해야 한다. 


이름이 오드리군요. 

난 에단이에요. 

전에는 난 총 옆에 누워있으면 됐는데, 이번엔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이 일이 끝나면 난 거기로 돌아가야 하나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 넌 비싸게 샀으니까 제 값을 해야 할 텐데.”
“윌슨은 싸게 팔았다고 하던데요?”
“그 애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저격수는 다 여자인가요?” 


그들은 소파에 앉아 등을 맞대고 얘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마를 대고 얘기하다가 머리를 세게 박은 후 오드리가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용병시장에 여자는 드물어. 

오래 살아남는 여자도 드물지. 

윌슨, 나, 그리고 아일라 정도.”


“아일라는 누구예요? 

일 끝나면 날 그녀에게 팔 거에요?”


“넌 제 값 하려면 오래 일해야 할 거야.”


“잘됐어요. 일해서 다 갚을게요.”


“아일라는 누구랑 같이 일하지 않아. 

미친년이거든. 

용병이라고 해도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애는 없어. 

하지만 걘 달라.”


“와, 듣기만 해도 무섭네요”


“아무튼 난 보통 용병일 뿐이야. 

돈 받고, 총 쏴주고, 다시 돈 받고.”

  
“사격 실력이 좋은가 봐요. 

난 영 안 맞던데.” 


“바람 소리. 빗소리. 

풀이 움직이는 소리. 자동차의 소리.”

 
“네?”


“소리가 중요해. 

저격은 물론이고. 상황판단을 잘하려면 소리를 들어야 해. 

넌 그걸 못 하잖아.” 


“그렇군요.” 


비난하는 얘긴가 싶었는데, 그냥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 같다. 

담담하다. 


“이 일을 하는 거, 나쁜 일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나쁘다 좋다-의 기준이 뭐니?”
“사람 죽이는 거?”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래도 숨 쉬는 한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거잖아요.”


그녀가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너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구나. 

난 감정이 없어서 표정을 잘 읽거든. 

거짓말하는 걸 구별할 줄 알지.”


“죽어도 될 사람은 없어요.”


“넌 세상을 몰라서 그래. 

살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많아.”


“누구?”


“이 사진을 봐. 이 남자 보이니?” 


그녀는 오려낸 신문의 한 페이지를 건네며 묻는다. 


“이 자는 세 번이나 어린 남자아이를… 

괴롭히고도, 돈과 연줄과 비싼 변호사로 감옥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어.” 


그녀의 얼굴은 마치 분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이런 자가 암살리스트에 오르길 기다리지.”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난 사진 속의 남자를 보지만 그렇게 악인처럼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녀는 입을 닫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 후론 그녀는 가끔만 말하고, 꼭 필요한 얘기만 한다. 


저격할 자리를 물색하고, 각도가 좋은 아파트를 임대하고, 밥을 먹고, 조준하고, 일기예보를 찾아보고. 

그렇게 3주를 보낸다. 


“저격은 아무리 봐도 손해야. 

총 한 발 쏘는 데 너무 오래 걸리거든.” 


그러면서 한숨을 포옥 쉬었는데 감정 없는 용병으로 알려진 것치고는 위로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힘내요.”


“방해나 하지 마. 

이 아파트가 좋겠다. 

26층짜리고, 목표 지점 사이에 가리는 것도 없고. 계약…”


말하다 말고 먼저 가 버리는 바람에 뒷말은 읽지 못한다. 

감정이 없어서 표정을 읽는 여자와, 귀가 안 들려서 입술을 읽는 남자. 

이걸 말해주면 웃을지도 모른다. 


따라가서 난 그녀의 귓가에 그걸 속삭인다. 

 
“웃기는 소리 그만하고 니 방탄복이나 잘 챙겨.”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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