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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 Game _ 게임 이야기/최강의군단(Herowarz)

[최강의군단] 반 미터의 아이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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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줄 아는구나? 

목소리가 듣기 좋네."


“난 소음기 같은 거군요."


“바로 그거야. 

똑똑하기까지 하구나.”





[ 반 미터의 아이 ]


3. 바빌로니아, 일 차누이 호텔



“윌슨이 내게 심한 말을 했던 건 맞지만, 지금은 다 잊었어요. 

험한 세계잖아요, 거기.” 

– 에단, 맥에게



널 뭐라고 부를까?”

나는 여자의 입술을 읽는다. 

오랜만에 호출되어 간 이데아의 사무실에는 시계를 맡기던 신사 말고도 키 작은 귀여운 여자가 있다. 


난 수화로 대답한다. 

알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쪽에서는 알아는 듣는다는 표시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귀머거리인 줄 아니까. 


“에단.” 


신사의 입술도 읽는다. 

그가 여자에게 내 이름을 대신 말해준다. 


난 둘 사이에 오가는 입술을 바라본다. 

신사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고 가끔 자신도 모르게 침을 바른다. 

여자의 입술은 붉고 - 아마도 뭔가를 바른 거 같다. - 촉촉하다. 


같은 단어를 얘기할 때조차 다양한 크기로 입술이 열리고 혀가 살짝 나왔다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입술의 말투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났을 때, 소리를 지를 때, 비밀 이야기를 할 때도 입술이 복화술을 하는 사람처럼 무미건조하다. 

이 여자의 입술은 플라밍고처럼 춤을 춘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크게 벌어지기도 하고, 맘에 안 들면 비틀어지기도 한다. 

입술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사람이 있었네.


여자가 주머니에서 금속 라이터를 꺼내더니 내 발밑으로 던진다. 

땡강 하고 바닥에 부딪쳐 내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 


“정말이네.”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본다. 


“그거 말고는 도움이 별로 안 될 텐데. 

전투 요원 훈련에는 낙제했어. 

소리를 못 들으니 쓸모가 없어.”


“이것만으로도 괜찮아요.”  


“아무튼, 계약금의 20%는 공제하겠네. 

우리 쪽에서 한 명 지원하는 거니까.”


“말도 안 돼. 

별 도움 안 될 거라고 했으면서. 

커뮤니케이션도 힘들고.”


“괜찮다며? 그럼 15%로 해.”


“10%. 요즘 시장이 어려워요.”


“알았어. 

대신 먹이고 재우는 건 당신이 알아서 해. 

그거까지 지원할 여유는 없으니까.”


대화가 끝나자 여자는 나에게 또각또각 다가온다. 

키가 작은 여자인데 위압감이 느껴진다. 

눈이 빙글빙글 웃고 있지만 입은 억척스럽게 앙다물고 있다. 


“가자. 넌 당분간 내 거야.” 


그녀의 입술이 내 귓가에서 말한다. 

목소리가 엄마랑은 다르다. 

당연하지. 

사람들은 목소리가 다 달라. 


나는 구석에 세워놓은 모신나강을 둘러메고 힘없이 일어선다. 

신사가 저게 뭔가 하고 쳐다봤지만, 총을 놓고 가라는 말은 없었다. 
그게 그녀와의 일을 하는 시작이었다. 


그녀는 수화를 읽지 못했고 나는 바짝 다가가지 않고서 목소리를 그녀의 귀까지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엔 그녀가 필요한 걸 알려주거나 지시하고 난 말없이 그걸 따랐다. 


“여기가 네 방이야. 

짐은 그거밖에 없니?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 먹으면 돼. 

가까이 와 봐. 

이렇게 내가 엎드려 있을 거야. 

그럼 바로 옆에 누워 보렴. 

그래 그 정도.”  


그녀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총 앞에 엎드려 방아쇠에 손을 얹고 있다. 

난 그녀의 옆에 엎드린다. 

목소리가 닿는 반 미터의 거리. 


“아냐 엎드리면 쳐다보는 방향이 같잖아. 

뒤집어야지. 

그래. 

그렇게 뒤쪽이나 옆에서 누가 오는지 살펴보고 있어. 

누가 오면 신호를 보내." 


그리고는 엄청난 굉음이 귀를 때린다. 

머리가 찌잉 하고 울려서 양손으로 귀를 꾹 누르며 괴로워했다.

 
“어머. 놀랬니? 

익숙해 져야 할 거야." 


그녀는 방아쇠를 몇 번 더 당기며 1m 밖에 둔 계측기를 살핀다.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넌 아주 쓸모 있구나. 

생각보다 더 활용처가 많아."

“누굴 죽이는 건가요?” 


난 수화를 하지 않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목소리가 듣기 좋네."


“난 소음기 같은 거군요."


“바로 그거야. 

똑똑하기까지 하구나.”


“이름이 뭐예요?”


“슈타이어. 

슈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녀는 총에서 손을 떼고 돌아누우며 말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렴. 

그보다 총 쏠 줄은 알아?”


“네, 하지만 낙제였어요." 


당신 이름을 물어본 건데. 

그 말은 삼켰다. 


“싸우는 건?”


“그거 역시.”


“흠. 이렇게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적이 방에 뛰어들어오면 넌 뭘 할 수 있니?”


“이런 거 할 줄 알아요." 


나는 오랜만의 대화가 즐거웠다. 

귀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들… 

난 총을 집으러 가면서 미소를 짓는다. 


소총을 들고 총검술의 기본동작을 몇 가지 펼쳐 보인다. 

최대한 빠르게. 

그녀에게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겠지. 

아쉬운 일이다. 

이렇게 멋진 탁, 덜커덕하는 리듬인데. 


그녀는 소리 없는 박수를 친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귓가에 속삭인다. 

힐을 신지 않을 때는 그녀의 턱이 어깨에 스친다.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가 난다. 


“그건 아주 도움이 될 거야.”


나는 기뻤다.

누군가 칭찬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목소리로 얘기하니까 훨씬 일하기가 편하긴 한데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다간 정들겠어.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 

내 이름은 윌슨 페이. 

이제부터 날 윌슨이라고 불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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