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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사회&문화

[설정] '페이퍼 펑크' 파고들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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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펑크 사회에서는 '실물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본다. 나는 왜 '실물 기록을 중시하는 세상'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는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신뢰할 수 있는 기록물의 필요성"이라는 답을 떠올렸다.

현대사회에는 당최 누가 썼는지 모를 기록물들이 판을 친다. 또, 누가 썼는지 알 수 있더라도, 그 '근거'가 있는지, 정말 명확한지를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가짜뉴스를 비롯해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누군가는 정보의 바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정보의 홍수'가 더 적절한 표현 같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휩쓸려버리기 십상이니까.

상상 속에서나마 이런 세상에 이정표를 제시하고 싶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상상 속에 존재할 뿐 현실로 나올 수는 없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할까. 페이퍼 펑크라는 이름을 걸고 내가 떠올렸던, 그리고 싶었던 상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정리해본다.

거대한 규모의 기록 보관소

가장 먼저 기록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도서관이나 문서고 같은 공간이라면 될 것이다. 이 공간은 '신뢰할 수 있는 기록물'을 보관하기 위한 곳이며, 해당 기록물들을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이 있는 곳이다. 세부적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모든 종류의 기록이 있어야 하니, 도서관처럼 어떤 규칙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눠야할 것이다. 아니면 누구나 원하는 성격이나 내용의기록을 쉽게 찾아서 열람할 수 있도록 돕는 검색 시스템 같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거나 내 상상력 범위 내에서 '완전무결한 의미의 아날로그'는 불가능해보인다.

이 장소에 보관된 기록물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일반적인 도서관을 생각하면 동시에 여러 사람이 같은 기록을 열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은 반출할 수 없어야 하고, 내용은 동일한 사본만을 반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본에는 당연히 원본과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물 기록의 원본을 보관하는 것에는 분명 공간적 한계가 있겠지만,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해결책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한때 많은 관심을 받았던 '분산원장기술'의 개념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록물을 주류의 위치에 두고, 그것을 보조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것이 꼭 디지털 방식의 기술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술 분야 지식이 일천하므로 다른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생각해보는 재미는 있겠지만.

기록 관리 전문가

기록을 보관하는 공간(편의상 이후로는 '아카이브'라 표기)이 있다면, 어떤 기록을 보관할 것인가도 중요해진다. 사실 기록이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 쓰는 일기도 본질적으로는 기록이니까. 따라서 '기록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아이디어는 일단 보류다. 언론&출판의 자유가 통제되는 국가 정도나 돼야 가능한 아이디어다.

그렇다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기록 중 어떤 것을 보관할 것인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은 기록물에 대한 '인증' 시스템이다. 누구나 기록을 작성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아카이브에 보관하기 위해서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인증이라는 과정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설정하면 어떨까? 정부 차원이든 혹은 다른 방식으로든 기록 인증을 위한 '전문적 자격'을 갖추고, 아카이브에 보관할 기록물을 검토하고 인증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현대로 치면 '특허 관리'에 가까운 느낌이려나.

어떤 기록을 인증한다는 것은 꽤 권위가 있으면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인증된 기록물에는 누가 언제 인증한 것인지 등의 정보가 새겨진다. 기록의 진위 여부나 사회적 필요성 등을 '보증'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사적인 기록물과 공적인 기록물은 달라야 하니까.

공적인 기록물로 인증받은 것은 '원본'으로서 아카이브에 보관되고, 필요에 따라 활용된다. 열람, 인용, 증거로 활용 등 기록물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현재까지는 생각이 막히지 않았다. 제법 흥미로운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소소한 몇 가지 문제가 남긴 한다. '기록 인증 자격'은 어떤 이유로든 '잃을' 수도 있는가? 그렇다면 자격을 잃은 전문가가 과거 인증했던 기록물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의 기록 활용

'신뢰할 수 있는 기록물'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기까지 아이디어를 전개했다. 세부적인 사항들은 좀 더 손을 봐야 한다. 실제 세계관으로 써먹으려면 어떤 문제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큰 틀은 그려진 듯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기록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가'다.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여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원본 반출 불가의 원칙'이다. 인증을 받아 아카이브에 보관된 원본 기록물은 절대 반출이 불가능하다. 그 내용을 활용할 때는 무조건 사본으로 반출해야 한다. 인쇄된 QR 코드라든가 NFC 같은 현대적 기술을 응용한다면 이런 방식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물 기록에 담긴 내용은 사본에도 그대로 담기게 되며, 사본이라는 사실과 누가 요청해서 복제한 것인지도 표기된다. 당연히 아카이브 시스템에도 복제 시점과 복제자의 인적사항 등이 남도록 해야만 악용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열람'만 필요한 경우라면 굳이 복제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런 세상을 '어떤 기술'로 뒷받침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단독으로 어떤 세상을 구축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 새로운 기술의 도움은 필수불가결이다. 어쨌거나 나는 '실물 기록'이 중요성을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오히려 다른 기술적 보조가 들어간다면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예를 들면 판타지에 단골처럼 따라붙는 '마법' 개념을 도입해도 될 테고. 어차피 가상의 세계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이어도 상관은 없다. (만약 현실적 기술로 가능했다면, 아날로그가 그리 허무하게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일단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 당분간 이 아이디어를 붙잡고 생각놀이를 하며 즐겨야겠다.



이미지 출처 : 뤼튼(wrtn)에서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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