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휴대폰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던 게 언제였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나는 또래들보다 꽤 늦게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니던 학교 규정이 빡빡했던 탓에, 고등학교 3학년 중반 즈음에나 휴대폰을 샀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내 삶에 '무선 통신'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그 전까지는 유선 통신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았다는 뜻도 된다. 무선 통신 기술이 있었음에도 내게는 없는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유선과 무선이 섞여 있지만, 일반 대중들의 삶에는 무선 통신이 더 익숙해진 시대. 그 비중이 뒤바뀐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라인 펑크'라는 이름으로 그에 대한 상상력을 끄집어내 본다.
라인 펑크 - 1. 무선 기술이 취약했던 시절
'통신'이라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전화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서비스도 통신의 범위에 들어간다. 좀 더 본질적으로는 '데이터와 정보의 전송 및 교환'이 모두 통신의 영역이다.
일반 개인들은 집에 PC 대신 노트북을 두거나, 그마저도 없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만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유선 인프라는 존재한다.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유선 방식으로 연결된 장비가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인 펑크의 기본 전제는 간단하다. '무선 통신 기술'이 어떤 이유에서건 지금 수준까지 발전하지 못한 사회다. 초창기 무선 인터넷 기술을 떠올려보면, 불안정한 신호로 인해 인터넷이 종종 끊기거나 느렸던 적이 많았다. 이제는 5G의 속도가 너무 익숙해진 탓에 4 G 속도도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때는 4G도 LTE라는 이름으로 혁신적인 기술로 대접받곤 했었다.
그보다 더 이전, 3G나 2G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데이터 전송 속도는 그야말로 속 터지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2G는 주로 음성통화나 단문 메시지(SMS)에 최적화돼 있었고, 이미지 등이 포함된 장문 메시지(MMS)를 보내는 데도 상당한 제약이 존재했다.
게다가 신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동 중에 끊어지는 것, 건물 안에서 끊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인프라가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아 지역 간 격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접속하면 품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고.
추억팔이가 목적은 아니니, 여기까지만 해두겠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무선 통신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해결해왔지만, 여기서 오히려 유선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라인 펑크'의 핵심이니까.
라인 펑크 - 2. 유선 기술 강화
무선 통신이 취약한 상태였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선 기술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편리하게 발달한 기술을 부정하고, 굳이 더 불편한 기술을 발전시킨 모습을 떠올리는 거니 말이다. 뭐, 어디까지나 재미로 해보는 상상이니까.
일단은 전화 문제. 집집마다 유선 전화가 있던 게 당연하던 시절에서, 각자의 방마다 자기 전용의 유선 전화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무선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는 반드시 발현됐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모든 가정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다소 웃긴 아이디어일 수 있는데, 어떤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ARS처럼 안내 음성이 나와, 어느 가족 구성원을 찾는지를 묻는 방식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음... 이건 불필요한 개인정보 노출 문제가 있었으려나... 아무튼.
또, 지금도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개인용 컴퓨터(PC)가 더 빠르게 보급되고 널리 활용되는 시대가 됐을 것이다. 지금은 2025년이지만, 여전히 PC 사용이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많다. 그들에 대한 PC 사용 교육도 더 활성화됐을 것이다.
전화와 PC의 구체적인 사용 모습을 제외하면, 사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이나 집에는 여전히 유선 기반으로 구축된 통신 환경이 갖춰져 있을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 홈이나 IoT 같은 것도 어느 정도는 구현할 수 있을 테니까. '선이 연결돼 있어야 한다'라는 제약 때문에 지금보다는 덜 자유롭긴 하겠지만.
라인 펑크 - 3. 소통 방식의 변화
유선 통신이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 한 가지 긍정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금보다는 대면 소통이 훨씬 강화됐을 점이다. 음... 아닌가? 어쩌면 집에서 화상으로 통신하는 쪽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겠다.
일단 길을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모습은 없어졌을 듯하다. (조석 작가가 그렸던 만화의 '폰딧불이'가 불현듯 떠오른다.) 개인용 단말기도 유선 연결이 돼 있어야 하니, 외부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유선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니까. 개인용 차량 정도면 관련 장비를 설치해서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길거리에 공중전화를 비롯해 공공용 PC가 더 흔하게 존재했을 수도 있고, PC방이 게임에 치중된 공간이 아니라 더욱 폭넓은 용도로 사용되는 문화 공간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성형 AI와 라인 펑크 아이디어를 두고 논의했을 때는 '대면 소통 강화'라는 주제가 나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듯하다. 유선 통신 기술이 주력을 이루고 계속 발전했다고 해서,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 지금보다 유의미하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아서다. 내가 귀차니즘이 심한 집돌이라서 그런 건가......
상상해보자면 끝이 없는 법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분명하다. 지금 시대의 생활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어떤 갈림길에서 한 쪽을 선택한 결과는, 그 갈림길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 고로, '유선 통신 기술이 극도로 발전했다면...'이라는 만약(IF)의 세상을 떠올리는 데는 제한이 너무 뚜렷하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유선 통신 기술의 역사는 더 오래 전부터 시작했으니, 좀 더 이전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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