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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자연&환경

[설정 참고] '전기(electricity)' 굴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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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펑크라는 단어를 너무 써서 그런지, 머리가 좀 이상해진 느낌이다. 당분간 다른 주제를 좀 이야기해볼 생각인데... 그래도 기왕이면 '기술'이라는 범위 안에서 움직여볼까 싶다. 한참동안 기술 관련 이야기를 하다보니, 바로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로 넘어가기에는 좀 어색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먹이(?)가 될 글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중, 괜찮은 단어가 포착됐다. TV를 보다가 화면에 잡힌 전깃줄을 보고, '기술로서의 전기'를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쓰고 있지만, 사실상 전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세기 즈음부터 일상생활에 사용됐다고 했으니 기껏해야 200년 정도?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에서 전기는 핵심 자원이자, 기술적 집합체의 산물이다. 꽤 좋은 글감이다. 전기라는 주제로 어느 정도 글이 나올 수 있을지는 써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해본다.

전기의 본질과 '설정'에서의 활용 방향

전기(電氣, electricity)는 일단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전자(electron)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에너지의 한 형태'다. 사실 사전적 정의 같은 게 궁금한 건 아니다. 한때 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책을 뒤적거렸던 적이 있는지라, 겉핥기 정도로 알고는 있다. 다만 그걸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뿐.

 

그렇다면 위의 '한 마디 정리'는 왜 했느냐? '에너지(energy)'라는 단어 때문이다. 일단 전기는 에너지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이 녀석을 '설정'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판타지 장르를 채운 다양한 이야기들을 짚어보면 비슷한 개념은 여러 가지가 나온다. 그중 두 가지를 콕 짚을 수 있다. 바로 '기(氣)' 그리고 '마나(Mana)'다.

 

사실 둘 다 비슷한 개념이다. 보통 기는 판타지보다는 무협에 어울린다고 하지만, 장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무협도 판타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장르라 할 수 있다. 그 색채와 규칙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별도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을 뿐. 다분히 논쟁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어차피 이 글의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한다.

 

기와 마나의 공통점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판타지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소드마스터들은 마나를 검에 담아 사용하고, 마법사들은 마나를 직접 사용해 마법을 쓴다. 꼭 싸움에 쓰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기와 마나는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에너지의 일종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기의 개념을 판타지에 도입하더라도 활용 방향은 명확해진다. 다만, 판타지에서 설정상 차이를 둘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기의 발생 방법'이다. 현실에서는 지극히 과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전기의 생산 방법이 다소 한정적이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그것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전기의 도입, 그 전과 후

전기가 에너지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상 세계에서 어떤 존재로 다뤄질지를 설정하는 접근 방법은 간단하다. 현실 세계에서 전기가 도입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된다. 전기의 도입 전과 후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굵직한 차이가 있으니까.

 

가장 대표적으로, 전기가 없을 때는 자연광이 있을 때 대부분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밤에도 활동이 가능하긴 했지만, 달빛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대부분 눈에 안 띄어야 하는 일이 밤에 이루어졌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불을 피워야 했는데, 알다시피 불은 공짜가 아니다. 불에게 바칠 제물(=연료)이 필요하다. 나무를 태우든지, 기름을 태우든지, 아니면 정말 불을 피울 목적으로 만든 양초 정도가 최선이었다. 불이 타는 시간만큼 실시간으로 자원이 소모되는 방식.

 

전기를 사용하는 전등 역시 자원을 소모하는 것은 맞지만, 일단 효율이 말도 못하게 차이가 난다. 전등 하나로 촛불 수백 개를 쌈싸먹는 밝기를 낼 수 있으니까. 게다가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전기는 딱히 자원 소모 없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의 혁신은 문명의 발전에 있어 엄청난 기회다. 익히 볼 수 있는 양산형 판타지의 배경 세계만 두고 봐도 그렇지 않은가. '마나'라는 희대의 에너지 공급 수단이 존재함으로써, 매우 다채로운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가능해지지 않았던가.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도 어지간한 범위에서는 '마법으로 구현했다'라고 하면 얼추 통한다.

 

마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중세 판타지가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을까? 글쎄...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만큼 대중화되지는 못했을 거라 확신한다. 일단 중세라는 콘셉트에 맞게 엄청난 고증이 필요했을 테니까. 마법이 없는 중세 문명은... 굳이 따지자면 대하 사극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마니아층은 분명 있지만 대중성은 다소 떨어지는.

 

요즘은 사극도 판타지스러운 게 더 재밌다. 나만 그런가? / 이미지 출처 : '스브스' 유튜브 캡처

 

이야기가 잠시 딴길로 샜는데, 아무튼 말하고자 한 핵심은 전기가 도입됨으로써 문명의 발전이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것이다.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라, 발전의 방향도 다채로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기가 있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수많은 기기들이 널려있지 않던가.

 

단순히 에너지원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문명의 전반적 구조와 방향성을 바꿔놓은 요소. 그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였던 셈이다. 판타지 세계의 기와 마나가 그랬듯이, 전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상상을 현실로 불러왔고, 그에 따른 기술적 발전을 이끌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에너지원이 등장할 수 있을까? 일반 사람들은 쉬이 상상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이미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전기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차근차근 준비해 현실로 그것을 불러왔듯이.

 

전기와 판타지의 만남, 어떻게?

전기라는 개념을 판타지 가상 세계 설정에 불러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좁은 의미에서 활용하는 것. 이는 '전기'라는 개념을 판타지 세계관에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 세계관에서 아예 마나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써도 좋을 것이고, 마나와 함께 공존하는 또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써도 좋을 것이다. 전기와 마나가 공존한다면 각각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설정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넓은 의미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전기라는 개념 자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거대한 의의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미 마나라는 에너지원에 기반해 구축된 세상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혁신적인 에너지원 자체가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과 기존의 문명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에 가졌던 것을 내려놓지 못해 주저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개연성이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에 매달리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좁은 의미는 나쁘고, 넓은 의미는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둘 다 의미있는 접근법이고, 애당초 설정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이야기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끌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오늘은 다소 붕 뜨는 이야기만 건드려보았다. 전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좀 더 굴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한 편의 포스트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또 어떤 썰을 풀어볼 수 있을지,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 뤼튼(wrtn)에서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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