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 전 주말부터 오랜만에 WoW 월정액을 결제해 즐기고 있다. 대략 1년? 아니 2년인가? 아무튼 꽤 오래 쉬었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하니 무척 즐겁다. "돌고돌아 다시 WoW"라는 말이 게이머들 사이에 나돈 적이 있었다는데, 나 역시 그 '돌고돌아 WoW 세대'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쉬기 전 (왠지 WoW는 '접는다'고 표현할 수가 없다) 만들어서 키우던 쿨 티란 전사 캐릭터로 만렙을 찍고 나니 딱히 할일이 없어서 채광을 배우고 광물을 캐러 다녔다. 하릴없이 날아다니며 광물을 캐다보니 금세 지겨워졌고, 또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판타지 세계에는 종종 광물들이 등장해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된다. 이건 비단 WoW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사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작물은 결국 현실의 투영일 테니, 광물이 자원으로 쓰이는 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자원'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그 종류는 상당히 많다. 당장 WoW만 해도 그렇다. 오픈 베타 시절부터 WoW를 즐겼던지라, 그간 캐러 다녔던 광물들을 일일이 떠올리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보고 들을만한 잘 알려진 광물들은 다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창작자의 관점에서 눈길을 끄는 건 현실에 존재하는 광물이 아니다. 그 세계관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광물들이다. 오리지널 시절 최고 레벨 광물에 해당했던 '토륨'부터 시작해 최근 내부전쟁 확장팩에서 캐고 다니는 '아퀴라이트'나 '창연'까지, 온갖 다양한 광물의 향연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오늘의 주제는 '가상의 세계에서 광물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관 구축
현실 세계에서 광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마그마'다. 땅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화산 분출과 함께 지표면으로 올라와 냉각되는 과정에서 '결정'이 만들어진다. 마그마가 머금고 있는 성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까지 들어가면 거의 학술 논문이 돼야 할 거 같으니, 우선 이 정도에서 멈추도록 한다.
이외에도 광물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몇 가지가 더 있다. 물과 같은 액체에 녹아있던 물질들이 침전되면서 서로 뭉쳐서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석회석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기존의 광물이 물리적 또는 화학적 조건을 맞아 변형되면서 또 다른 성질을 가진 광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까지 일일이 설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으로 광물이 생성되는 과정에 '가상 세계의 자연 환경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일반인 입장에서는 '마그마에 존재하는 성분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포함되는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마그마가 만들어지는 개념만 알고 있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광물은 보통 그대로 사용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가공'을 하게 된다. 보통 '제련'이라 불리는 과정이다. 이렇게 광물을 정제해서 활용하는 과정은 '가상 세계의 문명 역사'를 담아낼 수 있다. 현실의 인류가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철기로 넘어갔고, 이후 산업 혁명을 거쳤듯, 자원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에 따라 가상 세계의 문명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창작자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과학적 규명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느 정도의 구체적 설정만 존재하면 된다. '이 세계의 지하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러이러한 광물이 많이 매장돼 있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을 기반으로 가상 세계의 문명이 어떻게 구축됐는지를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자원, 그리고 경제
현실에서 금이나 은을 비롯한 각종 귀금속이나 보석들은 높은 가치를 인정 받는다. 그것이 높은 가치를 갖게 된 데는 '심미적 요인'과 '경제적 논리'가 개입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희토류와 같은 광물들이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문명 사회의 기틀을 이룬다.
이러한 현실을 본떠서 가상 세계에 활용할 수도 있다. '이 세계는 지질학적으로 이런 광물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의 매장량은 어느 정도라서 전 세계적으로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닌다'라는 설정을 만들면 어떨까?
또는 지역에 따라 광물의 차별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역에는 A라는 광물이 풍부하게 나는데, 이는 대륙 전체에 걸쳐 유용하게 사용되는 자원이라는 설정. 반면, 다른 지역에는 A라는 광물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희소성이 있는 B라는 광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식의 설정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은 꼭 광물이 아니어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석유의 경우 광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데다가, 지하나 해저 등에서 캐내서 문명 사회의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광물과 비슷한 특성을 갖는다.
좀 더 판타지스럽게 접근한다면, 특정 광물에 어떤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설정을 활용할 수도 있다. 희귀한 광물에 강한 힘이 깃들어 있는 자원이라면, 그 자체로 세계적인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네랄 두고 피 터지게 싸우는 어느 동네 3종족처럼)
판타지적 설정
위에서 하던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서 해보겠다. 실제로 수많은 가상 세계에서 광물은 '마법'과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다. 마법적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거나, 마나 반응도가 높아서 실험용 촉매로 널리 사용된다거나,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어 마법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식의 설정이다.
혹은 특정 광물에 어떤 '스토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 세계만의 신화나 전설이어도 좋고, 실제 있었던(그렇다고 설정하는) 역사여도 좋다. 평범한 사물이어도 스토리텔링이 가해질 경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현실 세계의 '보석'들이 그러하듯이.
게임에서 주로 활용되는 설정을 빌려보자면, 색깔별 보석이 특정한 마법적 속성을 갖는 경우도 있다. 붉은색으로 대표되는 루비는 화염 속성, 녹색으로 등장하는 에메랄드는 대지 속성이나 독 속성을 갖는 식이다. 이거야 설정하기 나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구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요즘 이야기 시장을 보면 '특별한 힘이 깃든 단 하나의 오브젝트'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플롯은 그다지 인기를 끌 것 같지는 않다. 예로부터 너무 많이 우려먹던 플롯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스토리 자체가 다채로워지기 힘들다는 한계가 분명 있다.
광물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적 설정과 스토리를 짠다면, 차라리 '충분한 매장량이 있지만 한계는 있어서 그것을 두고 다투는 국가들의 경쟁과 갈등'을 그리는 편이 훨씬 다채로운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가 그런 스토리가 취향에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 참... 날탈 타고 날아다니면서 광물 캐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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