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토리와의 연관성'을 세부 주제로 한 글을 쓸 때, 소제목 중 하나로 인물/캐릭터의 성장&변화를 다룬 적이 있었다. 오늘 글은 그때 그 내용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하게 풀어보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주제에 대해서도 약간 할 말이 좀 있는 편이라... 쉽게 매듭지을 수는 없을 듯하다. 일단 오늘은 첫 번째.
인물/캐릭터에 성장 가능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야기 속 '성장'의 의미
여기에 답을 하려면 먼저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통 사전적 의미의 성장은 '물리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대략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캐릭터의 성장은 이것과 다르다. 해당 인물이 어린이에서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을 이야기로 그려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리적 성장, 정신적인 성장을 다루는 일이 더 많다. (실제로 그 편이 더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는 생각이다)
이야기에서 인물의 성장이라 하면 가치관이나 신념의 변화, 혹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바로 성장의 '객관성' 때문이다.
물리적인 성장과 심리적인 성장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어쨌거나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더 나은 모습이 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데 있다.
가치관, 신념, 깨달음에 '더 나은 것'이라는 꾸밈에 적절한가? 음... 100%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 지금 시대에 통용되는 가치관, 신념, 사상 중에는 분명 '과거의 것보다는 더 나은' 것들이 있다. 아니, 꽤 많다.
물론,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것이 과거의 것보다 무조건 더 발전한 것, 더 나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물건이나 서비스 중에는 과거의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분명 있다. 가치관이나 신념이라고 예외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잘난 체하며 글을 쓰고는 있지만, 결국은 나 역시 21세기를 살아가는 미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이 시대의 '대세(다수)'가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상이라면 설령 개인적으로는 탐탁치 않더라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태생부터 수없이 거쳐온 '사회화' 과정 덕분에, '이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거다. 이야기 속 인물/캐릭터에 담아내고자 하는 '가치관의 변화', '신념의 변화'는 과연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성장'이라 할 수 있는가? 푹 빠져들어 즐겨왔던 이야기들만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았다.
주인공과 대적하게 되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들이나 악역을 맡은 빌런 중에는 무척 많았고, 때로는 주인공의 변화마저도 '이건 성장이 아니라 퇴보 아닐까?'라고 의심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이야기 속 인물/캐릭터의 성장은 매우 너그러운 관점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의미의 성장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 시대를 기준으로 소수의견에 해당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라든가, 일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주관적인 성장임을 부각시킨다면 아무래도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례를 가리켜 '이 작품의 인물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라고 매도할 수도 없다. 성장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듯, '성장하지 않음'의 의미 또한 객관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주제의식 또는 메시지의 전달
이런 심오한 질문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성장 방향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정말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작가 혼자만의 주관적 생각이라고 해도,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제시돼 있어야 한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오직 돈만을 좇는 주인공을 설정하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주인공은 점점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자기확신에 빠진 나머지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추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돈이 있으면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다'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계속 돈을 버는 데 집착한다. 결국 그는 대륙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됐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곁에 두지 않으려 한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됐다.
짤막하게 설정한 이 가상의 인물은, 우리가 배웠던 세상의 상식에 비춰보면 '성장'과 거리가 먼 케이스다. 하지만 세상 사람 누군가는 황금만능주의를 신봉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적당한 수준의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지만, 그 적당한 수준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생각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내용에 개개인이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가 아니다. 위에 설정한 가상의 인물은 분명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명확한 방향이 정해져 있는 사례다.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닌,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로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이 거창하고 중구난방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 본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밑밥'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조건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라면, 외로워도 좋으니 그냥 무조건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인물 설정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호불호의 문제와 표현의 문제는 별개다. 그 작가의 메시지에서, 설정한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작품의 의미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투영하기 위해 인물을 그렇게 설정하고 이야기를 짠 것이니까.
너무 극단적인 방향으로 예를 들어서 그렇지, 보편적인 경우로 예를 들어보면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쓴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스토리텔링이라는 수단을 빌어 녹여내는 것이다. 내 생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정해둬야 하는 장면들이 있고, 그곳을 목표점으로 향해 가는 인물/캐릭터(주인공)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 속 '성장'의 뿌리는 결국 작가 자신의 목소리다.
'캐릭터 아크' 형성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았으니, 마무리는 비교적 명확한 소재로 해볼까 한다.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다. 인물/캐릭터의 성장(변화)을 하나의 궤적으로 그려놓은 것을 말한다.
방법은 딱히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는 않다.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면, x축과 y축이 있는 그래프로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x축에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을 넣고, y축에는 '전투 능력'이라는 기준을 세우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인물의 전투 능력이 어떻게 성장(변화)했는지 궤적을 그릴 수 있는 식이다.
물론 그보다 더 의미 있는 방법으로 쓰려면, 인물의 심리적 성장을 궤적으로 그리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캐릭터 아크가 꼭 어떻게 그려져야 좋은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공식은 없다고 본다. 창작을 전공한 분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난 야매(?)니까. 그저 순간순간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진진하게 연결되면 충분하다는 생각.
다음 글은 아마...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인물 프로필을 설정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대략 이틀에 한 편 정도 쓰는 걸로 조금 템포를 늦추고 있다. 매일 하나씩 쓰는 걸 두세 달 정도 했더니 너무 부담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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