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 Room _ 창작 작업/캐릭터 설정

[설정] 인물/캐릭터를 만들 때 필요한 것 - 일관성 (1)

728x90
반응형

요 며칠 저녁마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내리 며칠을 쉬어버렸다. 덕분에 매일 하나씩 쓰도록 해보자는 다짐이 크게 깨졌다. 일전에도 한두 번 정도 빠진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며칠을 내리 쉬어버린 적은 없었던지라 상당히 자괴감(?)이 드는 중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 어울리지도 않는 완벽주의 따위는 집어치우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지난번에 썼던 [ 인물/캐릭터 - 기본 프로필 ] 편에 이어서 준비해뒀던 원고부터 시작해본다.

 

이야기에는 입체적인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입체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주요 인물은 입체적이어야 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입체적 인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인물의 프로필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물을 만든 이후다. 인물/캐릭터를 만든 뒤,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때 고려해야 할 점을 정리해본다.

 

'일관성' 유지

'일관성(Consistency)'이란, 하나의 대상이 여러 관점(부분)에서 서로 모순이 없도록 연결돼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단어들이 그렇듯, 사전적 의미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

 

'여러 관점(부분)'이라는 대목을 보자. 보통 어떤 인간을 바라볼 때는 한 가지 면만 보지 않는다. 얼굴 생김새나 체형 같은 외모적 요소는 물론, 말투나 목소리, 감정 표현이나 행동양식까지 총체적으로 보게 된다. 이야기 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야기 속 인물/캐릭터를 '소개'하는 입장이다. 독자가 그 인물/캐릭터를 실제로 바라보고 대면하는 것처럼 묘사해줄 필요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겉모습과 첫인상에 대해 말해주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에는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통해 "이 인물/캐릭터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관성'이 드러난다. 단, 일관성에도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정지 상태의 일관성', 다른 하나는 '시간선 위의 일관성'이다. 이 둘은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내가 지어낸 용어다.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인 만큼, 따로 소제목을 나누어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정지 상태의 일관성

정지 상태의 일관성이란, 어느 한 장면에서의 인물/캐릭터를 바라볼 때의 일관성이다. 맨 앞에 이야기한 사전적 의미의 일관성과 같다. 인간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부분)에서 '모순'이 없도록 하는 것 말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설정상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는 스토리상 성장기 내내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온 탓에 다소 비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트라우마로 인해 잠을 설칠 때가 많아 신경이 예민하고, 그걸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탓에 사람들과 교류를 잘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과묵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가지게 됐다.

 

사람들과 교류를 잘 하지 않아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뭔가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 작은 일에 결정을 내리는 데도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고 해보자. 인물 자체가 매력적인지 평가하는 것은 미뤄두자. 여기서 핵심은 '일관성'에 관한 부분이니까.

 

여기까지의 설정이 제법 일관성이 있다고 느끼는가? 생각나는대로 급하게 만든 설정이기에, 누군가는 허술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꽤 괜찮은 인물 설정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지 상태의 일관성'이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처음에는 매우 흔한 설정으로 등장하셨던 천 모 공자님. 지금은... ㅎㄷㄷ / 출처 : <나노마신> 2화 캡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등장하는 인물/캐릭터가 매력적이도록 설정하면 된다. 매력적인 인물/캐릭터란, 읽는 사람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을 말한다. 표현이 좀 추상적이니까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현실에도 저런 인간은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인물이다. 아니면 '내 주위에 쟤랑 비슷한 사람이 있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거나.

 

인물의 기본 프로필을 설정한다는 것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언행을 하는지를 정해주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배경과 성격, 그리고 성격과 언행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 인물/캐릭터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런 경우, 운명은 거의 뻔하다. 운이 좋으면 초반에 잠깐 "어, 신기한 캐릭터다"라고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잊히는 수순으로 간다. 중요한 인물이 독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잊히면? 이야기의 운명도 뻔해질 수밖에.

 

'정지 상태의 일관성'에 있어 요즘의 트렌드를 보면... '외모'는 일관성의 영역에서 다소 떨어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악귀를 연상케 할만큼 험상궂게 생겼는데 사실은 매우 착해서 벌레도 못 죽이는 인물'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일관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외모와 성격이 미스매치라고 해도, 그런 설정 자체가 꾸준히 유지된다면 그것은 일관성이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니까.

 

이 분은 잠시 후 붕어빵을 팔게 됩니다 / 출처 : <호붕빵 아저씨> 1화 캡처

 

 

시간선 위의 일관성

한편, 시간적 일관성은 조금 더 까다롭다. 풀어서 표현하자면, 설정 자체의 일관성이 아닌 이야기 전체에 걸친 일관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보여주는 모습들이 일관되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정지 상태의 일관성과 시간선 위의 일관성으로 나누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일관성이라는 개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고, 나름대로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꼼수를 부려본 것이다.

 

게다가 '입체적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설정상의 일관성과 이야기 속에서의 일관성을 따로 나누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은 대체로 이야기가 흘러가든 말든 잘 변하지 않지만, 그중 어떤 것들은 눈에 띄게 변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변화 자체가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주요 인물의 가치관 변화, 혹은 정신적 성장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선 위의 일관성은 좀 더 섬세한 조율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이야기 초반부에는 처음 제시해두었던 외모나 성격 등과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종잡을 수 없는 언행을 보여주면 몰입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이런 캐릭터라면 일관성이 없는 것이 매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하게 미친 짓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일관적...) / 출처 : <광마회귀> 1화 캡처

 

 

그러다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격이나 가치관이 변해갈 수 있다. 혹은 어떤 계기로 인해 마음가짐이 바뀌거나 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행동양식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는 '입체적 인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입체적 인물은 사실 그 자체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씨앗과 같다. 이런 인물들은 '정지 상태의 일관성' 측면에서 보면 초반 설정과 어긋나는 모습이 되므로 일관적이지 않은 인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선 위의 일관성' 측면에서 보면 이상하지 않다. 내가 일관성이라는 개념을 굳이 둘로 나눠서 이해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이유다.

 

마무리

그리 길지 않은 식견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시야가 넓다고 느꼈다. 뭐... 작가는 혼자고 독자들은 집단지성이라는 본질적 차이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독자들은 훨씬 다양한 유형의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의 포용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즉, 내가 생각하기에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인물 설정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어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물론,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이야기에도 트렌드가 있듯, 인물 설정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다. 잘 먹히는 유형의 인물 포맷이 이미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구태여 일관성을 잃을 위기를 감수해가며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라고 강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또라이 기질이 있으니 계속 시도할 예정이다)

 

일관성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여전히 납득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이야기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끝내 부정하고 있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일관성을 그려내는 방법이 단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