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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캐릭터 설정

[설정] 인물/캐릭터를 만들 때 필요한 것 - 일관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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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일관성을 주제로 다루고 나서, 막상 포스팅하고 나니 몇 가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생각났다. 바로 '디테일(Detail)'에 관한 부분이다. 인물 설정에는 굵직하게 다뤄지는 부분도 있지만, 살짝살짝 드러나는 세부적인 부분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디테일에서도 자칫 일관성이 흔들리거나 깨질 수도 있다.

사실 꼭 일관성이 아니더라도 디테일이 중요하다. 대부분 인물이 갖는 어떤 '특성'이라는 건, 비교적 큼직한 부분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큼직한 부분이라는 건, 예를 들어 신분이나 직업, 전체적인 성격처럼 상시, 혹은 자주 드러나게 되는 것들을 말한다. 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대사 등을 통해 자주 언급되는 요소들이 해당된다.

창작자 입장에서 봤을 때,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은 상당히 신경을 써가며 설정하게 된다. 이야기를 많이 써본 적이 없는 창작자일지라도, 시간과 공을 들이면 제법 탄탄하게 인물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만약 이런 눈에 띄는 부분들마저 허술하게 만들면, 그 작품이 좋은 평을 받기란 어려워질 것이다.

'명품은 디테일이 결정한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정확히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들었던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 말에 열 번, 백 번 공감한다. 이야기도 하나의 상품(Product)이며,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캐릭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일관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볼까 한다. 일관성이 드러날 수도, 깨질 수도 있는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다.

 

언어적 습관 (말투)

크게 보면 방언(사투리)이 여기에 해당한다. 간단한 예로, 시종일관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던 인물이 갑작스럽게 서울말을 쓰면 일관성이 깨진다는 뜻이다. 물론, 소설이나 만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건 방언의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억양(Intonation)이나 강세(Accent)는 아무래도 글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고로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라면,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지역별 방언 특유의 말버릇 정도다. 특별히 어떤 말투라고 예를 들지 않아도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쓰자니 뭔가 오글거려서...)

 

물론 장점은 있다. 설명식 묘사 대신 인물 간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어떤 대사를 누가 한 것인지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등장한다. (가끔은 쓰는 사람도 헷갈린다) 이럴 때 말투가 특이한 인물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한참 대화를 읽어내려가다가도, 어떤 말을 어떤 인물이 했는지 방향을 잡기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개그컷(?)은 예외다 / 출처 : <탈(TAL)> 65화 캡처

 

이밖에 창작된 세계라면, 해당 인물의 출신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단어나 표현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혹은 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라든가.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은 가급적 넣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이야기를 쓰는데 한껏 몰입하다 보면 종종 이런 디테일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작가가 놓치는 디테일이, 독자들의 눈에는 잘 보인다. 고로, 이런 설정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해당 인물의 대사를 쓸 때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행동적 습관 (버릇)

결국 '습관'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항목이다. 하지만 언어와 비언어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소제목으로 나눠서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습관은 언어에 비해 좀 더 무의식적인 경향이 있다. 언어적 습관도 때때로 의식하지 못한 채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행동은 분명히 말보다 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긴장하면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인물이 있다고 해보자. 사실 이 정도는 그리 특이한 습관도 아니지만, 유독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는 묘사를 자주 보여준다면, 이것이 해당 인물의 습관이라고 캐치하는 독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는 특정한 감정을 표현할 때도 쓰일 수 있다. 화가 나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인물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화가 날 때면 입을 열지 않고 일부러 옅은 미소를 짓는 습관이 있다. 이런 장면을 의도적으로 몇 번 보여주면, 그것이 이 인물의 습관 중 하나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 (물론 모르는 독자도 있겠지만)

 

행동적 습관을 활용하는 것 중,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습관이다.

 

 

이런 식의 서술이다. 인물의 행동적 습관을 작가가 직접 설명해주는 것도 창작의 스타일일 수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우선 굳이 몰라도 되는 인물의 습관을 알려주는 건 TMI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렇게 행동적 습관을 못박듯이 서술해놓으면, 앞서 말했던 '언어적 습관'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된다. 그 인물의 행동을 묘사할 때 불필요하게 신경써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깊은 생각'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다. 누군가는 깊은 생각을 할 때마다 이마를 톡톡 두드리는 습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은 '삶의 모든 순간에, 깊은 생각을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릴까?' 자칫하면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동적 습관은 사용하기에 따라 '복선'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수단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몇 번 보여준 버릇들이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복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의 행동적 습관이 있다고 해보자.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런 습관을 설정한 다음, 이야기 속에서 몇 차례 보여준다면, 어떤 독자는 그것을 캐치할 수 있고, 또 어떤 독자는 캐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상태에서 이후에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슬그머니 등장시킨다면, 그 장면의 서사적 전개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려니 엄청 어렵다)

 

그러니까, 결국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이거다. "습관은 섣부르게 설정하거나 일부러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게 더 좋다는 것."

 

습관처럼 나타나는 표정 같은 건 그림으로 보여주면 편하지만, 말로 설명하려면 환장한다 / 출처 : 뤼튼(wrtn)에서 생성

 

사고방식, 판단기준, 취향 등

어떤 면에서는 '성격'이나 '가치관'과 비슷한 영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태여 구분하자면, 그것들보다 좀 더 '사소한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볼 수 있겠다. 비유하자면 '자유주의'는 가치관이고, '내성적'인 것은 성격에 해당한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 새로운 메뉴를 잘 고르지 않는 것'은 판단기준이나 취향의 영역에 해당한다. (물론 성격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거나 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런 것들 역시 일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 디테일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인물의 사고방식이나 판단기준, 취향을 대놓고 광고하듯 서술하는 것은 보통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이 영역에서의 일관성은 성격이나 가치관에 비하면 다소 유연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보자.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어떤 대목에서 누군가의 권위를 당연하다는 듯 수용하는 것은 일관적이지 못하다. 이는 삶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는 '가치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 숨쉬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한 척 하는 장면도 일관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새로운 메뉴를 고르지 않던 인물이, 갑자기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는 것은 어떤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 문제를 가지고 '일관성이 깨졌다'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또,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것을 즐기던 인물이, 어쩌다 한 번씩 찬물을 끼얹으며 고함을 지르는 것도 굳이 일관성을 논할 필요는 없는 대목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유연성이 있다'라는 것이지,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뜻은 아니다. 어느 정도 패턴이 정해질 정도로 반복됐다면, 가급적 그 방향대로 따라가도록 서술하는 것이 일관성을 해치지 않는 길이다. 소설을 읽다가 어떤 장면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면, 이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일관성이 깨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봄으로써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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