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 나에게 가장 어렵게, 그리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 중 하나다.
언제였더라... 노트에만 쓰던 소설을 처음으로 공개된 공간에 올렸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 기준으로 바라보면 온통 클리셰 덩어리인 몹쓸(?)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마 나름 '각 잡고' 썼을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보건대, 당시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소설 <가즈 나이트>를 진득하게 표절(?)한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습작이라는 말조차도 아까웠던 글이라 날카롭게 찢어발길 수도 있다. 혹은 철딱서니 없는 시절의 불장난 같은 거라고 그냥 피식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그 이후로 내가 '독창성'이라는 말을 집요하게 신경쓰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창작의 영역은 알면 알수록 심오하다. 역사로 기록된 시간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창작은 더 어려워진다. 솔직히 이제는, "가슴에 손을 얹고 100% 내 스스로 썼노라" 선언하더라도, 표절 시비를 피해갈 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세상 어딘가에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독창성은 왜 필요한 걸까? 가끔은 그런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당연한 거 아냐?"라고 스스로 반문했다가도, "그게 왜 당연한 거지?"라고 되묻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 전체의 독창성은 더욱 심오해질 것 같으니, 인물/캐릭터 설정의 독창성에 대해 먼저 생각을 정리해본다.
주인공의 '신선한' 인상, 주의할 점은?
대부분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인공이야말로 독창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 내내 독자와 가장 자주 만나게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속 만나야 할 사람이 뻔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이야기가 재미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독창성이란 '뻔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뭐 그것도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독자의 호기심을 끌게 될 것이고, 이후의 행보에도 관심을 갖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방법은 대략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름이 특이하거나, 외모가 특출나거나, 흥미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뭔가 의아한 언행을 하는 경우. 곧장 생각할 수 있는 케이스는 이 정도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특이한 이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딱히 강하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으로 설정하는 게 좋긴 하겠지만, 매우 특별한 이름을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한국식 이름을 가진 인물을 만든다고 하면, 주위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성씨를 쓴다거나 잘 쓰이지 않는 한자나 순우리말 단어로 된 이름을 쓰는 것 정도가 있겠다. 이 작업이 너무 과하면, 다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너무 뚜렷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경험담이다)
특출난 외모를 설정하는 것은 무난한 방법이긴 하다. 다만, 보통 주인공은 미남/미녀로 설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설 특성상 외모를 이미지로 명확하게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외모 설정에 너무 공을 들이는 것은, 투입 시간 대비 효율이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흥미로운 능력'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비일상적인 언행도 능력과 연관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ex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게 된다)
독창성을 발휘할 것을 적극 권장하지만, 인물 설정부터 독창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아지는 근본적 이유일 것이다. '신선한 주인공'을 만들기가 무척 어려워진 요즘이다.
독창성 - 특별함과 식상함 사이의 줄타기
사실 주인공은 독창성을 발휘하기에 오히려 제한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야기 내내 함께 가야 하는 인물이기에, 너무 튀는 설정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개성이 너무 뚜렷하면 처음에 입맛을 확 사로잡지만, 계속 먹다보면 느끼해질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달까.
이 때문에 보조 인물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단역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자주 등장할 일이 없는 보조 인물이라면, 어지간히 별종이나 또라이로 설정해도 부담이 크지 않다. 이야기가 루즈해지지 않게 유지해주는 감초 같은 역할이랄까.
이들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거나, 괴짜의 성격을 발휘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힘을 갖는다. 물론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하는 순기능도 있다. 이런 인물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이 된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주인공에게도 온갖 특별한 설정을 갖다 붙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사실 작품 전체의 완성도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 편이 훨씬 낫다.
다만, 특별함에는 항상 '역치'가 따라다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처음에는 특별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식상해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초반에 높은 주목을 받았다가, 어느 순간 조회수가 떨어지고, 휴재에 들어갔다가 결국 사라지는 작품을 많이 봤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특별함이 반짝 했다가 이내 역치를 찍어버린 경우라고 본다. 주인공의 독창성은 이야기 전개의 독창성과 맞물려야 오래 살아남는 법인데, 그게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작가 본인의 '철학' 반영
'철학'이라고 하니 뭔가 굉장히 거창해보이지만,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재미있게 봤던 웹툰 <별난 식당>에 나오는 한 장면이 있다.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시무룩해하는 직원들에게, "여러분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창의적인 것과 독창적인 것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애당초 '창의(創意)'라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봤는데, '의미를 만들어낸다'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 가끔 사용하는 '의미부여'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뜻이다.
물론 의미부여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쓸데없이 의미부여 하지 마!" 같은 식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저런 의미부여가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꿔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니까.
어쩌면 독창성이라는 건 작가 본인이 의미부여한 것들이 모이고 모인 결집체일지도 모르겠다. 인물/캐릭터의 이름부터 성격, 배경, 외모, 능력, 행동양식까지, 작가 본인이 바라보는 세계관 또는 가치관을 그대로 담아내는 과정으로 본다면... 너무 거창한 해석일까?
모름지기 창작자라면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스스로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업데이트하고 있다.
철학이 쉬운 분야는 아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내가 가진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어떤 사람은 이해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1만 명의 작가가 있다면 1만 명의 세계관과 철학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법인데.
'전형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으로는, '전형성'을 파고드는 것도 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다른 사람의 작품도 많이 보게 마련일 것이다. (타고난 천재라면 타인의 작품을 보지 않고도 창작을 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주위에서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여러 작품을 보다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자주 쓰이는 인물/캐릭터 설정일 수 있다는 반증이다. 평면적인 악당 캐릭터, 뭐든 척척 해결해내는 조력자 캐릭터를 비롯해, 수많은 '전형적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있다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창작자가 같은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보는 작품이 다르며 생각이 다를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자기자신의 기시감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사람들의 기시감을 함께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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