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페이퍼 펑크 사회에서도 4개의 포스트를 발행했으니, 구색을 맞출 겸해서 이번에도 4개 포스트로 맞춰보려고 한다. 사실 굳이 구색을 맞추려는 아니더라도, 라인 펑크 사회에서도 갈등의 씨앗이 될만한 요소들은 있을 테지만.
즉, 이번 포스트는 앞선 3편에서 다뤘던 내용들을 토대로 한 라인 펑크 사회의 '한계'와 '쟁점 요소'들이다. 처음 본문을 작성할 때부터 예상했던 쟁점 요소들이 있긴 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가물가물해지긴 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은 남아있다. 그것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끄적여볼까 한다.
현실감 있는 설정의 어려움
특정 건물 등 벽으로 구분된 공간 안에서는 온라인, 개방돼 있는 외부 환경에서는 오프라인이라는 발상은 지극히 단순해보인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이상적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이분법적 생활, 혹은 과도한 이중생활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겠지만, 온라인에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의 삶을 불편해하거나 괴리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아예 오프라인에서의 삶을 거부하는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삶을 살거나, 철저히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정체성의 괴리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온라인의 삶'이라는 게 따로 없었다.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에도, 온라인에서 '삶을 보낸다'라는 개념이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그냥 현실에서의 삶을 보조하는 수단이었을 뿐.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의 삶과 오프라인의 삶이 따로 구분되는 사회는 생소하다.
또 한편으로, 5G 기반의 현실을 이미 경험하고 있는 입장에서, '유선 통신은 빠르고 안정적이다'라는 것은 딱히 장점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단서로 제안했던 것이 2G나 3G 시절의 무선 통신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선 통신이 느리고 불안정했던 시기를 생각한다면, 유선 통신의 속도와 안정성은 충분히 부각될 만하니까.
문제는, 어쨌거나 그것이 '지나간 과거'라는 점이다. "인간은 하향 적응을 몹시 괴로워한다."라는 말이 있다. 더 나아진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빠르지만, 그것에 익숙해진 다음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다. 익숙하지 않았던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무엇이든 괴롭지만, 그것이 이미 경험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거라면 한층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즉, 이것은 배경이 되는 라인 펑크 사회의 쟁점이라기보다는, 설정 작업을 해야 하는 창작자 입장에서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기억난다고 해도 "그때 그 느린 속도로 어떻게 살았나 몰라"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던 시절을 떠올리며, 현실감 있는 설정을 만드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테니까.
공용 장비 접속에서의 보안 취약성
이 주제에 관한 쟁점은 비교적 뚜렷하다. 바로 '보안성'이다. 대개 유선 통신 기반의 네트워크는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와 신호가 '유선'을 통해 전송되기 때문에, 중간에 정보를 가로챌 위험이 낮다는 의미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장비 자체에 침투함으로써 발생하는 보안성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첫 번째. 공용 공간에 존재하는 공용 하드웨어에는 반드시 보안성 문제가 남는다. 가장 간단한 예로, PC방 컴퓨터에 자신의 로그인 기록이 남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지금의 PC방은 사용을 종료하면 다시 초기 상태로 돌아가면서, 사용자 개인이 설치했던 프로그램부터 이용했던 기록까지 사라지게끔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 관점에서의 이야기고, 전문적인 컴퓨터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게까지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즉, 공용 장비에 남은 개인 사용자의 활동 기록이 유출될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개인용 하드웨어를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유선 연결'을 원칙으로 하는 라인 펑크 사회에서,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단말기는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전용'이다. 따라서 자신의 집에 있는 개인용 회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있을 것이므로, 공용 공간에 있는 유선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공용 공간의 인프라에 연결하는 것부터 이미 '공용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용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든 공용 공간에서의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 개방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유선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긴 할 것이다. 라인 펑크라는 아이디어로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한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자원 집중과 불평등
지난 글에서 유선 기술의 발전은 필히 하드웨어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명확하다. 하드웨어의 '스펙(spec)'을 기준으로 한 계층화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이 또한 좀 오래 전에 해당할 수 있는 예시인데, '성공적인 티켓팅'을 위해 속도가 빠르기로 알려진 PC방을 찾아다니던 것과 비슷하다. 한 번 소문이 좋은 방향으로 나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리게 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벤트처럼 발생하는 티켓팅에 비유했지만, 실제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더 빠른', '더 스펙이 좋은' 하드웨어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길 것은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더 빠르고 더 좋은 장비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양극화가 발생하는 원인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느 사회나 빈부 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격차가 발생하는 것 자체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돈'이라는 객관적 가치로 인해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고작 하드웨어 따위로 발생하는 격차 정도는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거야 개인의 관점 차이니까.
다만, 이미 돈으로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하드웨어로 인한 격차가 더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무선 통신 쪽에서는 재벌이나 일반인이나 똑같은 플래그십 모바일 기기를 쓸 수 있으니 큰 차이가 없다. (돈이 많으면 맘대로 부수고 새로 사도 된다는 차이는 있지만.)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PC 하드웨어 쪽에서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30~40만 원 수준의 보급형 PC에서 수백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커스텀 PC까지 격차가 엄청나니까. 지금이야 그냥 개인 만족의 영역에 속하겠지만... 유선 기반 사회에서는 하드웨어 스펙이 곧 사회적 경쟁력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계하는 셈이다.
'라인 펑크 사회'에 대한 상상도 이번 포스트를 마지막으로 잠시 접어두려 한다. 또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며 떠오른 소재를 쓸 수도 있고, 다시 뒤로 돌아가서 남겨두고 왔던 소재를 당겨올 수도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블로그 상상놀이를 즐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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