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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사회&문화

[설정] '라인 펑크' 파고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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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썼던 글이 딱히 장점을 다뤘던 것 같지는 않지만... 순서상으로는 단점과 맹점을 다뤄야 할 타이밍이 맞다. 페이퍼 펑크를 이야기할 때 다뤘던 바와 똑같이 표현하자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유선 통신 기반의 사회의 단점 또는 맹점은 너무도 뚜렷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유선 통신의 한계가 너무 뚜렷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무선 통신 기술이 발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선 통신 기술이 계속 발전해갈 때, 그러면서도 무선 통신으로의 발전을 배제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떤 이슈들이 있을까? 기술적인 안정성 문제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동일하게 존재하는 거니까 제쳐두고, 크게 생각나는 것 위주로만 정리해본다.

 

라인 펑크 - 4. 공간 제한과 지역 격차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공간 제한'이란, 유선망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는 통신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유형의 선으로 연결된 범위 내에서만 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물론 유선으로 연결된 범위 내에서는 속도 지연 없이 무척 빠르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유선 연결 범위를 벗어나면 연결이 제한되거나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선택과 집중' 같은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아이디어는 지금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5G처럼 무선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무선 통신이 불안정하거나 느리다는 게 딱히 실감이 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무선 통신 속도가 비교적 느리고 불안정했던 2G, 아니면 기껏해야 3G 정도와 비교해야 유의미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격차'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전화나 인터넷이 불편하면 사람들은 해당 지역을 덜 왕래하게 된다. 이 역시도 과거를 생각해보면, 인구가 적은 지역에 가면 소위 '전화가 안 터지는' 현상이 흔히 있었다. 이런 식으로 불편함을 느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사람들이 적게 오가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도시의 발달은 유동인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법이다. 이미 편리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곳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현상,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현상 모두 지역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라인 펑크 - 5. 인프라 불평등

위와 같은 문제는 '인프라 구축'으로 해결할 수는 있다. 원론적으로는 말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도 수요가 있는 한 인프라를 설치하면 된다는 심플한 해결책이다.

 

이 단순한 해결책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는 누구나 쉽게 의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누구 돈으로 할 것인가?"다. 민간 사업자는 그만한 수익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야 투자를 한다. 모든 투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를 한다는 건 성립할 수 없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이 사회적 기업, 비영리 단체 등이다. 이들이 어디선가 자금을 조달해 인프라를 구축할 수는 있다. 하지만 통신 기술이란 자기들끼리 선만 이어놓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통신망과도 연결이 돼야만 비로소 '연결됐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론상의 평등주의, 자그마한 봉사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국가 예산과 같은 공적 자금이다. 하지만 공적 자금의 사용에는 언제나 '정치의 문제'가 따라다닌다. 어느 곳에 먼저, 어느 정도의 자금을 쓸 것인가? 이를 결정하기 위해 첨예한 대립이 발생한다.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땅 속으로 선이 매설되든지, 전신주가 세워져서 선을 연결해야 하는데, 이는 비용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정치 문제까지 세세하게 다루기엔 너무 복잡해지니... 그냥 간단하게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인프라를 설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정리하기로 한다. 그렇게 지역 간의 인프라 격차가 생기면, 결국 정보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라인 펑크 - 6. 글로벌 불평등

국가 내에서의 지역 격차를 그대로 확대해보면, 세계 단위의 격차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선으로 연결돼야 한다'라는 규칙을 전제한다면... 이미 국가 간의 연결은 초 거대 규모의 공사와 그에 걸맞는 자본이 필요해진다는 답이 나온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을 유선 인프라로 연결하려면? 얼추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위성과 같은 무선 통신 기술이 사용되는 것이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유선 인프라를 설치했다고 해보자. (서울과 워싱턴 D.C. 사이에 태평양을 가로지르면 직선 거리가 약 1만 킬로미터쯤 되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유선으로 설치된 통신망이 끊어진다면,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전체 유선을 새로 연결하는 것. (오 마이 갓) 아니면 1만 킬로미터 어느 지점에 문제가 생겼는지를 점검해서 고치는 것. (갓뎀) 둘 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기술이 발전해서 문제가 된 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수리를 보내려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즉, 유선으로 글로벌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도 어렵고, 설령 구축한다고 해도 유지&보수까지 고려하면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 된다. 그 정도 일을 감행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이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보면 유선 통신의 한계가 너무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이미 현실화된 무선 통신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닐까? 정말 유선 통신밖에 답이 없었다면, 어떻게든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그런 고로, 일단은 빈약한 상상력을 최대한 굴려볼까 한다. 상상 속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에 치여 상상을 그만두기엔 스스로 용납이 안 되니까.

 

이미지 출처 : 프리픽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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