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1일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 전문
빛이 드는 창가에 화분을 내다놓고
여느 때와 같이 돌아서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화사해보이는 꽃잎이 발걸음을 붙잡았던 탓일까요.
결국 잠시 그 자리에서 서서
멍하니 화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 없는 시간. (하긴, 화분을 보고 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새삼스레 침묵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초보 글쟁이의 습관인가 봅니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제가 말이 별로 없다고들 평하곤 합니다.
저는 그런 그들에게 "말하는 게 귀찮다"라는 어색한 핑계를 대며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도 보통 수다쟁이라 불리는 사람들 못지 않게 말이 많은 편이에요.
다만 화제에 편승하여 따라가는 일에 서툰 탓에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며 듣는 입장을 취할 뿐이죠.
"침묵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로 표현을 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고,
원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진리라는 엄격한 범주에 포함시키기에는 부족한 감이 많습니다.
침묵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대신 귀를 열어둘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어렵죠.
내가 말을 멈춰야 다른 사람이 말을 시작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하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그룹으로 나눠지기 일쑤인 술자리에서,
말을 하면서 동시에 옆 그룹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누군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어렴풋이 같이 듣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나요?
침묵은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시작점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다보면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고,
그때 하고 싶은 수다를 거리낌없이 풀어놓으면 됩니다.
언젠가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말이 없다는 편견을 깨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전에 그들은 제가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제게 더 많은 말을 해야 하겠죠.
저의 말은, 제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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