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메모에 있었던 건 이거였다. 그런데 성격에 관해 쓰다가 MBTI를 한 번 언급했더니, 쓸말이 자꾸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에 어느새 그쪽으로 방향이 잡혀버렸다. 그래서 빅 파이브 이론에 관해서는 부득이 따로 포스트를 잡아 써본다.
빅 파이브 이론(Big Five Theory)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연구가 시작된 건 더 오래된 1930년~1940년대였지만, 본격적으로 이론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1980년대라고 한다. MBTI도 거의 엇비슷한 시기이긴 한데, 194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빅 파이브 이론이 조금 더 앞선 셈이다.
뭐... 어차피 이건 중요한 건 아니고... 빅 파이브 이론의 다섯 가지 요인들을 정리하는 포스트를 하나쯤 써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최근에 읽다가 덮어둔 <이야기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이 이론을 사용해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는 방법에 대해 다뤘던 게 생각난다. 오늘 이 포스트를 통해 기본적인 이론을 정리해두고, 다시 그 책을 펼쳐봐야겠다.
1. 외향성 (Extraversion)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다. 다만 나와 같은 세상을 살지 않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외향성(Extraversion)은 쉽다. 흔히 말하는 "외향 vs 내향"의 그것이다. 캐릭터가 사회적이고 활발한 편인지, 아니면 혼자 있는 걸 즐기고 조용하는 편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외향적인 캐릭터는 흔히 사람들을 앞에서 이끄는 '리더' 포지션으로 그려진다. 리더의 자질이 무조건 외향성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향적인 사람이 리더 역할을 가능성이 높긴 할 것이다.
물론, 리더 중에는 내향적인 사람도 없지 않다. 이 경우는 좀 복잡한 관계가 그려지긴 하겠지만... 일단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거다. 단순하게 보자면, 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외향적 참모'가 있을 수도 있고.
과거에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당연히 외향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내 기준에 주인공은 대개 '리더'였고, 그러려면 외향적인 편이 유리하다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당연히, 나이 좀 먹은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천성이 내향적인 사람이고, 누가 봐도 드러날 만큼 뚜렷한 편이다. 그래서 외향과 내향 양쪽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외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향은 왜 이해하기 어렵냐고? 내향은 결국 '자기자신의 깊은 내면'을 향하는 것인데, 사람은 저마다 천 길로도 부족한 내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2. 친화성 (Agreeableness)
친화성(Agreeableness)은 다른 말로 하면 '친화력',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붙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면에서 보면 외향성과 겹치는 느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화성은 외향성과 어떻게 다른가?'를 명확히 짚어둘 필요가 있겠다.
외향성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얼마나 즐기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반면, 친화성은 그 상호작용 중에서도 '협동'과 '친절'의 정도를 나타낸다. 굳이 표현하자면 친화성은 외향성의 세부 갈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외향성이 높지만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걸지만 다소 삐딱하거나 비협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격파탄인가...?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엔 정말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는 법이라서.
아무튼, 같은 이유로 외향성이 낮은(내향적인) 사람이라도 친화성이 높을 수 있다. 상호작용을 딱히 즐기지는 않지만, 일단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친절하고 협력적인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화성이라는 항목은 맨 아래에서 다룰 '개방성'과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다.
3. 성실성 (Conscientiousness)
쓰기 전에 일단 불만(?) 좀 말하고 시작해야겠다. 성실성(Conscientiousness) 영어 단어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겨먹은 건가? 생긴 게 무지막지(?)한 만큼 발음도 만만치 않다. 컨시언셔스니스...? 난해하다. (어학사전에 넣고 발음까지 들어봤다)
아무튼, 이 성실성이라는 개념은 앞선 두 가지에 비하면 다소 어려운 항목이다. 설명 자체는 심플하게 나온다. '목표지향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캐릭터'라면 성실성이 높다고 본다. 반대로 즉흥적이고 생각이 자주 변하는 경우는 성실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보통은 성실성이 높은 쪽을 선호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들으니 <이야기의 탄생>에서 읽었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어떤 이야기에 등장하는 '집사' 캐릭터인데, 성실성이 너무 높은 나머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집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다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성실성 그 자체는 훌륭한 덕목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의 타협도 없는 성실성이라면, 오래 전부터 널리 쓰이던 시쳇말로 '융통성이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목표지향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것은 좋지만, 그것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어떤 것에 더 책임감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성실성은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할 때 변칙적인 매력을 줄 수 있는 항목이 아닐까 싶다. 내 성격상 아마 주인공으로 삼고자 하는 캐릭터는 성실성이 높은 편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성실성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4. 신경성 (Neuroticism)
신경성(Neuroticism)은 한 마디로 '예민함'이라 할 수 있겠다. 혹은 '까칠함'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에 민감한 캐릭터, 아니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캐릭터들이 '신경성이 높은' 유형에 속한다.
보통 '스트레스에 민감한 캐릭터'라고 하면 특정한 감각이 예민한 캐릭터, 아니면 특정 분야에 대해 천재성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떠올리기 쉽다. 물론,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천재라고 연결하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캐릭터'는 조연으로 흔히 등장하는 포지션이다. 어떤 불행한 경험으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는 설정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혹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향일 경우, 이를 앞서 이야기한 천재형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신경성이 높은 캐릭터는 흔히 내향성이 높은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내적 세계가 심오한 인물들은 종종 '과도한 생각'에 매몰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깊이 몰입한 상념이 누군가에 의해 깨질 경우, 신경질을 부리게 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경성은 '핵심 조연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항목이라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자면, 장편 이야기에서의 조연보다는 단편 에피소드에서의 주요 조연이라고나 할까? 음... 특정 작품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동안 두루 봤던 작품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5. 개방성 (Openness)
개방성(Openness)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오픈 마인드'다. 앞에서 이야기한 '친화성'과 함께, 외향성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친화성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정중하거나 기분 좋은 말을 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뚝뚝하거나 비꼬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한편, 개방성의 관점에서 보면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딴지를 걸거나 묵묵히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여기까지가 친화성의 영역이고, 여기서부터는 개방성의 영역이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다. 하긴... 생각해보면 '성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본래 그런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영역을 딱딱 구분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 빅 파이브 이론은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성격을 영역별로 딱딱 구분지을 수는 없어도, 어떤 인물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그려낼 것인가 하는 쉽지 않은 과정에서 좋은 이정표가 돼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성격 빅 파이브 이론은 캐릭터 성격을 설정하기 위한 '내비게이션'과 같다. 내비게이션이 아무리 정확하다 한들, 결국 실제 그 장소를 가야 하는 건 내 능력이라는 이치와 같다는 의미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 빅 파이브 이론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포스트를 몇 개 더 쓸 것 같다. 관련 글을 쓸 때마다 연결 링크를 이 아래에 붙여둘 예정이다. ('관련 글 모음'을 박스로 만들어 넣는 방법을 예전에 썼던 것 같은데...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
'Work Room _ 창작 작업 > 캐릭터 설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정 참고] 성격의 빅 파이브 이론 - 친화성 (0) | 2025.03.29 |
---|---|
[설정 참고] 성격의 빅 파이브 이론 - 외향성 (0) | 2025.03.28 |
[설정 참고] 캐릭터의 '성격'을 다루는 방법 (0) | 2025.03.26 |
[생각] 강력한 캐릭터 = 이야기의 열쇠 or 목표점,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 (0) | 2024.12.04 |
[생각] 판타지 속 절대자, 신(神)은 과연 필요한가? (0) | 202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