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성격'을 살펴보다가, 문득 '입체적 인물'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모든 종류의 '스토리' 매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단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캐릭터(인물)란 이야기 속 세상을 살아내는 주체다.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 또는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비중이 있는 인물일수록 배경 이야기와 성격 설정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다. 가급적 사람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거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하니까.
입체적 인물이 각광받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는 인물은 어필할 수 있는 독자층이 한정적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생긴다. 그것 말고도 필요성은 충분히 있지만... 아직은 내가 "이거다!"라고 짚어낼 만큼 통달한 사람이 아니기에 말을 아끼려 한다.
입체적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체적 인물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입체적 인물의 정의와 이야기에서의 필요성, 그리고 입체적 인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해보았다.
1. 입체적 인물의 정의
'입체'란 무엇인가? 뭐... 수학이나 기하학의 차원에서 설명하자면, '길이와 너비, 높이를 모두 가지는 형태'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체적 인물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법이다.
정육면체나 큐브, 삼각뿔, 원기둥 같은 것들이 입체 도형의 예다. 이들의 특징을 꼽자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라는 것이다. 어떤 입체 도형은 몇 가지 형태로 한정되기도 하고, 어떤 입체 도형은 더 많은 형태를 갖기도 한다. 그 다양함 또한 입체의 특징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개념에서 이해한다면, 입체적 인물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여러 면에서 다양한 감정과 동기를 가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상황에 따라, 혹은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태도나 언행이 달라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혹은 '성격'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 여겨질 정도로 달라질 수도 있다. 그건 작가가 표현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입체적 인물의 반대편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입체적 인물의 반대는 '평면적 인물'이다. 한없이 정의로운 인물, 아무 이유 없이 악행을 반복하는 빌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보를 보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재미를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쉽게 '질려버릴' 우려도 있다.
2. 입체적 인물의 매력 포인트
입체적 인물은 이야기에서 비중이 큰,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있을수록 두드러진다.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이야기에 더 자주 등장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주연급 캐릭터는 거의 필수로 입체성을 띨 필요가 있다. 주연들은 이야기의 거의 모든 부분에 등장하는데, 매번 비슷한 상황에 뻔한 패턴의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 이야기는 어느 순간 식상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작품이 몇 개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입체성을 가진 인물들은 때때로 일관성을 깨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 부분이 매력을 한껏 던질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예를 들면 도덕적이고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공이, 특정 상황에서는 악당 같은 면모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개연성'이 필요해지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입체적 인물은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자신의 내부'에서도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복잡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이를 통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창작자의 포지션에서 입체적 인물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3. 모든 인물은 입체적이어야 하는가?
당연히 "No"다. 선택이야 작가 본인의 자유겠지만, 나는 오히려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라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져 동력을 잃을 거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심리학 교수가 발표했던 '잼 연구'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6종류의 잼을 시식하게 했을 때와, 24종류의 잼으로 시식하게 했을 때를 비교한 연구였다. 24종류가 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드는 경향은 있었지만, 실제 구매하는 비율은 6종류일 때가 훨씬 많았다는 내용이다.
즉,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오히려 결정을 어려워 한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소비심리학에 관한 연구지만,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서도 건질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일종의 '상품'이라고 생각해보자. 독자들이 인물을 선호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독자가 그 인물에 대해 '감정적 비용을 지불한다'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실제 돈 대신 마음을 화폐로 써서 그 인물을 구매하는 셈이다.
입체적 인물을 설정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인물의 매력을 배가시키려는 시도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고, 본질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받고자 하는 노력'이다.
여기까지 정리했으면 이해가 되리라 본다. 입체적 인물이 너무 많으면 위의 연구처럼 '너무 많은 잼'이 제시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쉽겠지만, 그 안에서 누구에게 매력을 느낄 것인가 하는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실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모든 인물을 사랑할 수 있게끔 매력적으로 설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훗......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크든 작든 갈등과 충돌을 전제하게 된다. 인물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는데, 그 두 인물을 다 선호하는 독자라면 어떨까? 둘 사이에서 중립적 균형을 지키려 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면 어느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기울 가능성이 높을까? 나는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인물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게 될 거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입체적 인물이 너무 많다 보면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스토리가 돼 버릴 수 있다.
짧게 쓸 생각으로 시작한 글인데... 역시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입체적 인물'이라는 주제로 내일 포스트 하나를 더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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