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 Room _ 창작 작업/사회&문화

[설정] '문명'에 따른 기본적 생활상

728x90
반응형

자원에 대한 이야기를 좀 끄적이다 보니, 또다른 의문을 품게 됐다. 과연 어디까지를 자원의 범위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하니까.

자원이란 곧 시대상을 반영한다. 청동보다 철이 훨씬 흔하고 우수했음에도 청동기가 먼저였던 이유는, 철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술력이란 그 문명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지만, 어떤 자원을 유용하게 볼 것이냐 하는 관점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판타지에서 흔하게 채택되는 문명 형태를 통해, 어떤 자원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정리해볼까 한다. 주제 자체가 좀 추상적인 경향이 있지만,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세 판타지의 문명과 생활상

중세 판타지는 글자 그대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중세시대는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봉건제 사회로 그려진다. 왕족, 귀족, 기사, 평민, 노예 등 신분이 나눠지는 경직된 사회이면서, 판타지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테마다.

농업사회의 문명이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농업을 통해 곡물과 채소, 과일 등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고 생선을 잡아 식량으로 쓴다. 원재료를 가공하는 기술이 일부 있긴 하지만, 그다지 고도의 기술은 아니다. 곡물을 빻거나 갈고, 반죽을 해서 빵을 만들고, 도축으로 고기를 얻는 정도였을 것이다.

집은 목재나 석재를 사용해 짓는 경우가 많고, 부유한 이들은 철이나 금속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 벽돌을 가공하는 기술 정도는 있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겠다. 식물 등에서 얻게 되는 천연 성분(지금으로 치면 에센셜 오일 같은 것일지도)을 염료나 향료로 쓰는 모습도 연상된다.

철이나 금속은 무기와 도구의 재료로 사용된다. '대장간'이라는 공간,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시대다. 금이나 은, 익히 알려진 보석들도 등장할 수 있지만, 보통 한정된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전유물로 그려진다.

이런 사회는 '자원'이라 부를 만한 것도 한정된다. 사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이 거의 모든 범위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추가되더라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세계관은 내 기준에 다소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읽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피로가 덜하다는 것이다. 배경보다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선보이고자 한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다.)

마법 판타지의 문명과 생활상

나는 정통 중세 판타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는 입장이랄까. 다만, 실제로 대부분의 중세 판타지에는 마법이라는 요소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예 '검과 마법'을 중세 판타지의 요소로 보는 시각도 꽤나 보편성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중세는 현실을 반영하는 테마고, 마법은 상상 속에서 탄생한 테마다. 어쩌다 보니 한몸처럼 다뤄지고 있지만, 사실은 따로 떼어놓고 봐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검이나 창 들고 맞붙어 싸우거나, 성 쌓고 방어하는 시대에 마법이 개입하면 언밸런스일 수밖에 없다.

그걸 커버하기 위해 중세&마법 판타지에서는 마법에 이런저런 제약을 부여하고, 그것들이 공식처럼 사용된다. 또 그 위에 살이 붙어가면서 널리 사용된다. '오러 소드'를 사용하는 초인 검사, 일명 '소드마스터'라는 개념도 이런 변천사를 통해 탄생했을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마법 판타지 역시 기본적인 생활상은 중세와 비슷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쪽은 '마력'에 초점을 둔 자원들이 추가된다. 마력이 잘 통하는 광물이라든가, 반대로 마력을 차단하고 흡수하는 물질 같은 것들 말이다.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에 제법 흥미로운 장르라 할 수 있다.

사실 마법이라는 개념만 사용한다고 하면 굳이 중세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꽤 오래 전 네이버에서 연재됐던 <죽은 마법사의 도시>가 대표적인 예다. 마법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생소한 세계관을 보여줬던 작품이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중세와 오랫동안 찰떡궁합을 이뤄왔지만, 실제로 고정된 생활상과 고정된 자원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 마법 판타지의 진짜 가능성이 아닐까.

기술 판타지의 문명과 생활상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대가 큰 분야다. 현실적일 수도, 상상 기반일 수도 있는 자유자재의 분야. '기술 판타지'라는 표현이 생소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를 포괄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적당히 지어낸 표현이니까.

기술 판타지는 넓은 범위를 모두 담는 개념이다. 흔히 말하는 스팀펑크(steampunk), 혹은 사이버펑크(cyberpunk)를 포함해, 수많은 기술 기반의 문명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했던 산업혁명이나 정보혁명을 모티브로 할 수도 있고,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식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오랜 역사에서 수많은 기술이 등장했고 또 사라져갔다. 그 모든 발전의 역사가 마냥 긍정적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기술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시대를 잘못 만나 일찌감치 사장됐을 수도 있으니까.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상상력을 펼친다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원으로 활용되는 세상을 그려낼 수 있다. 이야기로서 이만큼이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장르가 또 있을까. 광물과 자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다뤘던 이야기처럼, 상상 속의 광물이나 자원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문명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장르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며 찾아다닌다. 무척 드물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고 있지는 못하지만. (I'm still hungry... ) 이유는 잘 알고 있다. 상상의 여지가 넓다는 것은, 창작자가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 설정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어렵기도 하고, 정신적 자원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일일 것이다.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 가득한 문명 세계. 나는 과연 어디까지 그려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프리픽 (freepik.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