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 Room _ 창작 작업/사회&문화

[설정]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728x90
반응형

우리는 인간을 제외한 지적 존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생존 경쟁을 해야 할 다른 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생존 경쟁이 생긴다. 물론 생존 문제가 걸려 있지는 않지만, 그 못지 않게 치열한 경쟁과 갈등도 무수히 생긴다.

 

여기서 말하는 경쟁과 갈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말싸움이나 몸싸움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정도의 심각한 갈등을 말한다. 또한, 단지 생각의 차이 정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이른바 '신념' 차원의 심각한 대립이다.

 

이런 종류의 갈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개념이 국가, 민족, 혈통 같은 것들이다. 한동안 국가에 관한 포스트를 좀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민족'에 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흔히 단일 민족, 다민족 같은 표현을 쓴다. 지금은 추세가 달라지고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덕분에 '민족성', '민족의 번영'과 같은 개념이 잘 먹히는 사회구조였달까.

 

한편,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태생부터 다민족 국가가 될 가능성이 보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다민족 국가가 훨씬 많으니 딱히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민족의 개념이 크게 의미가 없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민족보다 국가의 정체성을 더 앞에 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중심으로 한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퍼져 있는 같은 민족끼리 동질감을 갖거나 의기투합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대인이다. (이하 자세한 이야기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때로는 국가를 뛰어넘는 동질감을 만들기도 하는 개념,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인류학이나 유전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반인의 시각에서 떠올려본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를 조합해서 풀어놓아볼까 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자식을 낳으면 양쪽의 유전자가 50%씩 섞이게 된다. 물론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서 50%'라는 개념은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총 46개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2개씩 짝을 이뤄 23쌍으로 구성된다. 소위 말하는 '이중 나선 구조'다.

 

23개 각각의 짝에서 둘 중 하나씩이 선택돼, 그 조합을 자식이 물려받는 형태다. 수학의 대략적인 개념만 알더라도 조합의 가짓수는 무수히 많아질 수 있다는 건 감이 올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모 양측에서 50%씩 물려받는다는 것 자체는 맞다. 돌연변이나 염색체 이상 등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면 누군가를 만나 짝을 이루고 또 자식을 낳을 것이다. 짝으로 만난 사람도 부모에게서 50%씩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두 사람 또한 자신의 유전자 50%씩을 자식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이른바 '가족 계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만 봐도 '혈통'이라는 개념은 다소 희박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유전적 요인 중에서 '이것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라는 확정 항목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할 것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 '확정 유전자'라는 개념을 종족 설정 아이디어로 쓸 수는 있겠다) 하지만 모든 유전자가 무작위로 결정되는 거라면, 대를 이어서 계속 전승되는 혈통이라는 개념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제 정리를 해본다. 과학적인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한 지루하고 아리송한 이야기를 왜 했을까? 민족이란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집합이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지만, 몇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혈통상 조상'임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공통점이 사라져 갈 가능성이 높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조상이 있는 집이라면, 그 분의 사진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보라. 닮았다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개인과 개인의 집합은 사실상 '무작위'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혈통 외에 민족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같은 민족'의 의미

어떤 민족은 보기만 해도 같은 민족임을 아는 경우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김새만 봐도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냥 그렇게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하나의 민족'임을 규정할 수 있을까?

 

여기서 꺼낼 수 있는 답이 '문화(Culture)'라는 게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문화라는 건 사실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난해한 개념이다 보니, 매번 설명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곤 하니까. 하지만 몇 번 고민해봤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답이 최선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글자 그대로 같은 민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요소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언어'를 예로 들 수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지, 그 언어를 얼마나 유창하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신조어 같은 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 '이름을 짓는 방식'에서도 특색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어떤 게임을 즐기다가, "맥마나만이면 아일랜드식 이름이네요?"라는 대사를 본 적이 있다. 한때 재미있게 봤던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 역시 아일랜드식 성씨라는 이야기도 보았다. 물론 이름과 국적은 무관해진 시대지만, 이름을 짓는 방식 그 자체는 특정 민족의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언어 외에도 문화를 이루는 요인은 무척 많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점이라든가 종교적 요소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관습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축의금' 액수를 고민하는 것을 두고 "저 사람 한국인이네"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옷을 입는 방식도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어떤 민족은 외모적인 특징도 있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실제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알게 되는 정보, 그리고 느끼게 되는 '총체적인 감각'을 토대로 민족이 정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리는 됐지만, 마땅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민족'을 정의하는 방법은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니까.

 

민족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민족을 정의하는 기준과 방법에 집착했던 이유는 역시 세계관 설정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민족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특히 '종족'을 나누는 작업 다음으로 민족을 나누는 일은 거의 필수로 따라온다고 볼 수 있다. 범위를 확장해보면 WoW의 오크나 트롤에 존재하는 '부족' 개념도 여기에 해당한다.

 

민족이나 부족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같은 종족이라고 모두가 같은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걸 체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른 것''틀린 것'을 혼동해서 쓰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이미 엿보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갈등 구조를 설정할 때, 민족이라는 개념을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종족 차원에서 결정된 어떤 중대한 사안에 대해, 민족이나 부족 단위로 반발하거나 반대 행동을 하는 식의 갈등 구조를 그릴 수 있는 식이다. (어차피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 전개가 어려우니까)

 

민족을 정의하고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과정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을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확정적으로 유전되는 요인'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종교나 종족적 관습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의 세계이기에 할 수 있는 범위도 자유롭다.

 

이미지 출처 : 프리픽 (freepik.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