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단위로 한 번씩 찾아오는 잡생각 타임
인간은 어느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다. 원시시대의 생활상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니즘'마저도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입장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식량 구하는 일에 써야 할 테니까.
매우 근본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어쨌든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적게 모여 마을을 이루고, 다수가 모여 도시를 이룬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다보니, 가상 세계에서도 그렇게 모여 사는 게 당연하게 묘사된다.
여기에 생각의 전환점을 제공한 종족이 바로 이영도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종족 '레콘(Rekon)'이다. 이 시리즈를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레콘은 닭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거구의 인간형 종족으로 묘사된다. 키는 대략 3m 정도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실감은 안 된다. (스타크래프트의 광전사(질럿)가 설정상 그 정도 신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레콘은 분명 하나의 '종족'이지만, 굳이 무리를 이루어 살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실제로 레콘은 극도의 개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자신이 정한 '숙원'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족속이기도 하다. 최후의 대장간에는 여러 레콘이 모여서 살지만, 이마저도 그들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다름없다.
이런 매력적인 종족을 하나쯤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오늘의 주제를 정했다. 혼자서 살아도 무방하고,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는 종족이 있다면,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협력'해야 할 이유로는 무엇이 있을까?
자원 활용의 효율성
식량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종류의 '자원'은 보통 여러 사람이 협력할 때 더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소비할 수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선사시대의 사냥만 해도 그렇다. 혼자서는 혼자 잡을 수 있는 사냥감만 잡게 될 것이다. 이를 테면 토끼처럼 작은 사냥감이나 기껏해야 사슴처럼 비교적 온순한 사냥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덩치 큰 매머드도 사냥할 수 있다. 당연히 한 사람이 가져가는 몫은 전체에 비해 작겠지만, 애당초 혼자서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무엇보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혼자서 사냥을 할 때는 사냥도구를 만드는 것부터 잡는 것, 손질하고 요리해서 먹는 것까지 혼자서 다 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각자 역할을 분담할 수도 있고, 서로 교대해가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에너지를 아낀다'라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자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현실에서 운영되는 시스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적은 인원이 일하는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는 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 매우 많다. 그러면서도 개인이 가져가는 보상은 대기업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대기업에서는 어떤가? 철저한 분업 시스템 안에서 각자 맡은 일에만 집중하면 되고, 그러면서도 훨씬 큰 규모의 수익이 발생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준다. 그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도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협력'을 필요로 하는 가장 핵심 이유라 할 수 있겠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을 쓰면서 레콘을 다시 떠올렸다.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협력이 필요없는 존재들...... (아래 이어질 내용에서도 계속 레콘을 떠올릴 예정)
위기 대응과 관리
자원 활용이 '이익을 늘리는' 관점이라면, '손해를 줄이는' 관점도 있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내가 자는 동안 누군가에게 기습을 당해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중 하나다. 나 이외의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자는 동안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존재하거나.
현실에서는 잠금장치가 갖춰진 집에서 각자 살아가기 때문에 그다지 실감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그렇다. 인간은 혼자서는 무방비 상태가 되거나 취약해지는 시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나 노약자에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되겠다.
또 다시 레콘의 예를 들어보겠다. 레콘은 실제로 잠을 자는 동안 기습을 받을 일 자체가 거의 없다. 레콘이 등장하는 그 작품 속 세계관에서는, 레콘이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자고 있더라도 다른 종족은 피해를 입힐 수 없다. (도깨비는 예외라고 하지만, 애당초 이들은 누군가를 기습할 일 자체가 없는 종족이다.)
같은 레콘이 기습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족속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로를 적대하거나 공격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다른 레콘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레콘이라면, 아무데서나 드러누워 잠들어도 위험해질 일이 없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혼자 살 수 있는 종족'을 창조하는 데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레콘처럼 신체적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해도, 그들의 심성이 인간과 같다면 혼자서 사는 것은 위험해진다는 이야기다. 대가 다수가 소수를, 큰 것이 작은 것을 핍박하며 살아온 것이 인간의 역사였으니까.
지식과 기술의 발전
레콘 같은 종족에게도 누군가와 협력하고 모여서 살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것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철저한 개인주의에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성격을 가졌다고 하니,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개체는 지식과 기술에 관한 숙원을 가질 수도 있는 거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다른 개체에게 전수하는 능력은 인간이 오랜 시간 살아남으며 지구를 점령(?)하게 한 근본적 능력이다. 그것을 입에서 입으로만 전하다가, '기록'을 사용해서 전파하게 되고, 이제는 네트워크망을 통해 더욱 광범위하고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까지 왔다.
늘 살아가는대로만 살다가 떠날 거라면, 사실 지식과 기술은 별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할 줄 아는 것은 하고, 모르는 것은 안 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보통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지 않던가.
물론 이것도 '인간의 관점'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레콘 같은 종족은 딱히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숙원에 맞춰져 있고, 그 외의 다른 목표라고 해봐야 일부다처제라는 종족 특성상 '신부 탐색'이라는 일 말고는 딱히 없으니까.
이런 종족들이 협력할 만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속성과도 같은 개인주의를 먼저 바꿔야 한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개인주의라는 속성을 바꾸면 다른 것도 너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레콘을 모티브로 해서 나만의 종족을 만들고 싶었는데... '참신함'을 챙기려면 갈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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