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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사회&문화

[생각] '아날로그 펑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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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punk)'라는 단어는 비주류, 반항이라는 의미를 표상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다행히(?)  체제를 전복시키고 싶어하는 극단주의 성향은 아니다. (사실 쫄보라서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실행은 못 한다.)

 

특히 문화적으로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비주류(Minor)'한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 유행이라고 하면 왠지 거부감이 들고, "요즘 트렌드"를 운운하는 말을 들으면 귀찮아진다. 그런 성격이라 펑크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펑크'는 창작계에서 서브장르로 널리 사용된다. 비주류, 마이너의 "갬성"을 담는다면, 장르 또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더욱 풍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에, 펑크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해보고자 한다. 펑크 장르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을 짚어보자면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시대의 흐름'에 사라져간 무언가, 다른 하나는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고 표현하는 움직임.

 

이 개념에 맞게 이해하려면, 실제로 내가 경험했던 시대적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어릴 적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크게 다르니,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포인트로 '펑크'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아날로그적 요소들

가장 가까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시대'와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수납돼버린 '아날로그 기술'을 떠올릴 수 있겠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불과 20~30년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린 아날로그 문물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밀려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다가왔던 이유를 꼽자면 '품질'이었다. 알다시피 아날로그 신호는 잡음에 민감했고, 그 때문에 결과물의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니까. 나이를 좀 더 먹어서 이제는 그 잡음마저도 '감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품질이 낮게 나온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저장과 전송이 간편하다는 점, 수정·편집·복제에 드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디지털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환경을 타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물론 그에 대한 반작용도 적지 않다.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아날로그 감성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다. 당시의 불편함은 모두 잊고 심리적 만족감만 떠올리는 '추억 보정'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예를 들면 음악에서 LP 레코드나 카세트 테이프가 있겠다. 요즘은 음악 CD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엄밀히 따지면 CD는 디지털 기술에 해당하니 아날로그 대열에 끼기는 어렵겠지만, 최신 기술에 밀려 사장된 입장은 같으니까. 필름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손으로 쓴 편지 등 추억에 남은 아날로그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2. 아날로그 펑크(Analog punk)가 가능할까?

다만, 이런 아날로그 요소들을 '펑크'라는 의미에 걸맞게 표현하려면 꽤 깊은 아이디어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판타지'라는 장르는 한없이 넓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있다. 중세 테마와 봉건제 및 신분제, 검과 마법이 주류를 이루는 그런 이미지.

 

그런 주류적 이미지를 깨는 것이 펑크의 본질이니, 시도 자체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저항의 표현'이다. 그것도 다소 미묘한 게, 저항이라고 해서 아나키스트와 같은 극단적인 모습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사실 펑크에서 지향하는 저항의 '강도'는 매우 완곡한 편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완곡한 저항'이라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는 정도를 뜻한다. 표현하기에 따라서는 아날로그의 특성을 활용해 강력한 저항 세력의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날로그 복고 운동' 같은 것을 벌이는 것에 비하면, 상상을 통한 이야기 정도는 몹시 완곡한 저항이지 않은가.

 

어찌됐든, 현재의 세상의 흐름에 의문을 던지고 반대 의견을 표출하려는 메시지가 담기는 것이 '펑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냥 "맞아, 그 시절엔 그랬지"라는 식의 향수만 자극하는 것은 복고, 혹은 레트로 정도가 어울리지, '아날로그 펑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날로그는 어떤 세상을 만들었을까? 아날로그가 주축을 이룬 세상은 지금에 비해 어떤 장점 혹은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날로그 펑크가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핵심 질문들이다.

 

정답은 없을 것이며, 창작자 개인의 답이 곧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생각만 했을 뿐 딱히 관심을 가져본 영역은 아니라서... 일단은 아이디어만 던져두기로 한다. 언젠가 생각이 닿았을 때, 다시 한 번 깊이 다뤄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3. 그밖의 다른 '펑크'의 가능성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소위 '기성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났다. 20세기 후반 태생인 내 입장에서도 어릴 때와 현재의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내 부모님 세대, 혹은 그보다 더 앞선 세상을 겪어봤던 분들은 체감하는 '다름'의 정도가 훨씬 클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는 말을 얹기가 어렵다. 학교에서, 책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 시절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과 감각에 새겨진 것들을 이해할 도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겪어온 변화들'에 포인트를 둬 볼까 한다.

 

내가 펑크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같은 원리로 접목할 수 있는 펑크의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20세기 이후 세상이 변해왔던 방향으로는 '글로벌화'가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더 서로 연결됐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허물어졌으니까.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내셔널 펑크(National punk)'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화에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각 국가가 자신들만의 영역을 유지하던 시기의 장점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포인트다.

 

비슷한 맥락에서 '에코 펑크(Eco punk)'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주제를 논하려면 산업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대에 이르러 환경의 파괴가 더욱 가속화되고 다채로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펼쳐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자면, 과도한 기술 의존과 편의성 추구 현상을 부정한다는 의미의 '휴먼 펑크(Human punk)'도 괜찮을 것이다. 혹은 너무 빠른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에 저항하는 '슬로우 펑크(Slow punk)'는 어떨까.

 

생각이 너무 많아지다보니,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 <정리하는 뇌>를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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