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썼던 글을 바탕으로 한동안 고민을 좀 해봤다. 창작의 과정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게 마련인 포괄적인 딜레마. 이들을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딜레마'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까다로운 문제인 만큼,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면, 무엇이든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비교적 최근 시도하고 있는 창작 작업을 되돌아보며, 3가지 딜레마를 마주쳤을 때가 언제였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딜레마에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정리해본다.
[재미 이론] 재미를 추구할 때의 3가지 딜레마
게임은 부족과 과잉,지나친 질서와 과도한 무질서,침묵과 잡음이라는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길을 찾아야 한다. p.62 몇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은 기본적으로 '게임'을 주제로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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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과 과잉의 딜레마
이야기에는 '완급(緩急)'이라는 개념이 있다. 요즘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므로, 쉽게 풀어서 '느리고 빠름'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나을 듯하다. 사실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춤에도, 운동에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느리고 빠르다는 건 결국 '흐름(flow)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니까.
부족과 과잉의 딜레마에 있어서는 이 느리고 빠름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이론적으로 말할 때는 '점진적 공개가 핵심이다'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곤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지 말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조금씩 공개하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라는 건데, 알다시피 '적당히'라는 말만큼 애매하면서도 어려운 게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새로운 정보의 개수'를 기준으로 접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것도 그리 쉬운 설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적당한 속도'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전개상 필요로 인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여기서부터 선택의 시간이다. 주인공 일행이 별다른 긴장감 없이 쉬고 있는 상황에서 새 캐릭터가 접근해오는 경우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싸우거나 달리고 있는 등 급박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등장하는 타이밍이야 스토리 전개에 따라 작가가 정해야 한다. 다만, 스토리의 완급 조절을 고려한다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새로운 정보의 개수는 다르게 보여줘야 한다.
쉬고 있는 중에 새로운 인물이 접근해온다면, 멀리서 보이는 분위기, 걸음걸이부터 가까이 왔을 때 보이는 옷차림이나 생김새 등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 반대로, 급박한 상황에 어디선가 갑자기 달려든다면? 위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이야기에서 그려낼 수 있는 수많은 장면 중 한두 가지만 짚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려내고자 하는 상황과 장면에 따라 정보 제공의 개수와 그 범위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기본 개념만 캐치해도 적지 않은 실마리가 될 것이다.
질서와 무질서의 딜레마
지난번 글에서도 이 항목에서 다뤘던 '설정'의 영역을 보자. 기본적으로 설정이란 "이 이야기 안에서는 이렇게 하기로 한다"라는 사전 약속이라고 설명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약속이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약속이라고 봐야 한다.
설정이 방대하고 촘촘하게 구성됐을 때, 보통 사람들은 '세계관이 탄탄하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세계의 사전 약속(설정)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전개를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때 등이 그 예다.
독자들은 무섭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설정 덕후'라 불릴 만큼 세부적인 설정을 잘 기억하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독자들이 있다. 설정이 복잡하면 때때로 작가 본인도 헷갈릴 수 있으므로, 명확한 설정집을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설정은 어느 정도까지
정해두어야 하는가?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좀 더 풀어보자면 이런 거다. 어떤 작가는 '대륙과 국가 단위'에서만 설정을 새롭게 짠다. 그 외의 요소는 실제 세계와 똑같이 가져간다. 인간 외의 종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생김새나 생활 양식, 종족적 관습이 다를 뿐 생명으로서 기본적인 요소는 똑같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가는 제도와 상식의 영역까지 건드린다. 일례를 꼽자면, "이 세계의 1년은 360일이고, 각 36일씩 10개월로 나뉜다"라는 설정을 쓰는 것이다. 또는 하루를 측정하는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든지, 일주일이라는 개념을 바꿀 수도 있다.
소위 '딥(Deep)한 영역'까지 건드릴수록, 잘 쓰면 흥미로운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본인도 이미 현실 세계의 제도와 상식에 익숙해진 입장이기 때문에, 쓰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설정을 깨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시도했던 작품에서, '물질의 기본 단위'까지 자의적으로 설정해보려 한 적이 있었다. 아직 해당 내용으로 설정집을 완성하지 못했기에 '실패'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작업이 미친듯이 어렵고 까다로워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말이 좀 길어졌기 때문에, 이쯤에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질서와 무질서의 딜레마는 사실 어떤 선택을 하든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기 위한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스스로 정한 설정을 다 기억할 수 없다면, '설정집'을 반드시 만들 것.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하고 말고 여부를 떠나서 설정집은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분량이 많아지면 어느 대목에 적어뒀는지도 헷갈릴 수 있으니, 검색이 가능한 형태로 나름의 체계를 정해서 정리해둘 것을 추천한다. (아직 한참 작업 중이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준비 중인 작품의 설정집을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둘째. 모든 설정을 '절대 불변의 법칙'처럼 정해두려 하지 말 것. 이건 좀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겠다. 물질의 기본 단위까지 설정해보려고 시도한 입장에서, 모든 설정을 절대 불변의 법칙으로 정한다는 것은 작품을 스스로 죽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현대 인류의 과학 지식조차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아, 연구를 통한 새로운 발견이 거듭되고 있는데… 한낱 인간이 만드는 작품에서 완벽한 세계관과 설정을 추구하는 것은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기존의 진리가 뒤집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여러 모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하시길.
침묵과 잡음의 딜레마
지난번 글에서는 이 대목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핵심으로 삼았다.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어느 정도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이때 모든 정보를 작가의 입으로 술술 설명해버리면, 독자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내는 재미를 일절 느낄 수 없게 된다.
여기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작품의 연재 분량 맨 뒤편에 '설정집(또는 그 일부)'를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작품의 설정이 너무 난해한 경우, 혹은 기존과 다른 요소가 너무 많은 경우는 독자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 없이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파악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정말 필요하다면 작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더 나아가, 작품 연재분 뒤편에 따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작품 내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모두 설명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 또한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건 연재분 뒤편에 배치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 방법이다. 문제 사이에 답안을 공개해버리는 느낌이랄까.
참신함만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다보면, 종종 작품이 어려워지고 난해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 또한 작가의 역량에 달린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상당한 분량을 쓰고 난 뒤에 깨달아버리면, 그걸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이때 독자의 원활한 이해를 돕고자 작품 내에 조금씩 단서를 흘리는 식으로 글을 고칠 수도 있다. 상황 자체를 통으로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방법이라고 본다.
다만, 이 작업이 참으로 미묘한데, 자칫하다가는 잡음(Noise)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에 몰입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설명이든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본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라면,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는 말을 자주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과도하게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이야기는, 그저 작가가 구상한 흐름을 통째로 주입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자들에게 그냥 "시간이나 때우다 가세요"라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긴 글 읽는 능력이 점진적으로 퇴화하고 있다는 요즘 시대다. 어쩌면 작가들의 입장에서 '침묵'을 택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는 독자들의 능력을 믿고 싶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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